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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치의 장지혜 Feb 23. 2022

내가 삼킨 것은

내향치의

사람들은 자극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위험해 보이는 영상들을 스릴이라고 부르고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클릭을 유도하는 것을 후킹이라고 한다고 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과잉 자극의 시대인 것 같다. 돌아다니지 못해서 더 그러는 것일 수 있겠다. 


일상생활의 자극도 너무 과하다고 느껴지는 나는 숨이 좀 막힌다. 

빽빽하게 가시 돋친 액체를 꿀꺽 삼킨 기분이다. 숨 쉴 때마다 찔린다. 집어삼킨 아메바 같은 액체가 가시가 빽빽한 성게로 변이 되면서 가슴팍에서 몸부림치는 그 느낌은 아프면서도 괴롭다. 


아침에 잠깐 눈을 돌려 어떤 책 소개 멘트를 보았다. 너무 읽어 보고 싶은 책이었다. 그런데 또 나에게 너무 과할까 봐 참고 있다. 이렇게 사놓고 모셔두고 있는 책들이 너무 많다. 내가 책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마음의 상태를 내가 기다린다. 


모두들 일부러 결말을 숨겨둔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결말을 알아야 했다. 너무 과한 자극은 분명 몇 날이고 나에게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신중하다. 적당히 충격적이어야 내가 감당한다. 뉴스들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본 책 소개 문구를 읽자마자 그냥 눈물이 났다. 타지에서 엄마를 잃고 엄마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 그냥 눈물이 나서 책을 볼 엄두가 안 난다. 나조차 나를 보호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나를 이해 함으로써 하나씩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고 적용하고 사색하고 종종 억울해한다. 


텔레비전을 안 본 지 오래이지만 금쪽이는 유튜브로 찾아서 보는 편이다. 특히 숨죽여 우는 아이들을 볼 때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이해돼서 아프고 앞으로도 많이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안타깝다. 좋은 말을 해주고 싶지만 어떻게 더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나조차 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마음에 억눌려 다시 혼돈이 된다. 


나조차 나를 감당하지 못하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그 어려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내내 고민하는 것 같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고 자신을 존중하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일단은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잘 살아가 보자 조용히 텔레파시를 보낸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만으로 서로에게 기둥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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