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치의
버석거리며 검게 썩어버린 나를 기어이 그 뾰족한 걸로 찔렀다. 그리고는 안을 벅벅 긁어냈다. 그렇게 나는 죽었다. 죽은 것이 맞는 걸까.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걸 보니 어쩌면 이미 죽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에 아프다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단단해서 별로라고 하더라. 그 한마디가 그렇게 상처를 남겼더랬지. 그렇게 아픔을 견디고 점점 까매질 무렵 어느덧 통증은 무뎌지기 시작했다.
윙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눈이 너무 부셨고 내 머리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의 피와 신경은 이미 사라졌다고 한다. 그럼 나라는 존재는 살아있긴 한 것일까.
"선생님,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치료 중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치료 중이라니. 지금은 없어져 버린 내 안에 있던 신경과 혈관은 나의 실체가 아니었던 걸까. 처음부터 나에게는 피와 살이 필요 없었던 것일까. 껍데기만 남은 나는 혼란스러웠다.
"선생님, 저는 괜찮은 건가요?"
"그럼요. 이제 크라운만 씌우면 제 기능을 할 수 있어요."
너무 단단해서 싫다고 했던 나의 외부가 정작 나의 실체였던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면서 더 이상 아픔을 느낄 필요가 없게끔 나 또한 다시 태어났다. 한 번이라도 죽음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본 이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겠지. 한번 죽고 나면 그 뒤로 다시 사는 것이다. 더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새 삶을 얻은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졌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이후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현실감이 떨어졌다. 나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잠시 빌려온 시간처럼 느껴진다. 어느 순간 눈을 뜨면 또 다른 모르는 세계가 익숙한 듯 다가올 것 같았다. 낯선 익숙함에 잠시 혼란스럽다가 다시 관찰자가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었나 보다. 꿈과 현실의 경계도 이미 이렇게나 모호해져 버린 것을.
꿈속에서 꿈이라는 걸 인지 했다. 좀 더 다른 내가 되어 보기 위해 더 과감하게 행동해 보기로 한다. 두 개의 뇌가 가동 중이다. 눈을 들어보니 두 개의 달이 떠 있었다.
조골세포와 파골세포가 일을 한다. 눈이 없지만 그들만의 시그널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한다. 언젠가 상상하기만 했던 일들이 누군가의 책에 담겨 있었다. 잘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사물을 이루는 기본 구조인 원자나 분자를 뛰어넘는 어떤 개념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뒷부분이 궁금했지만 아껴두기 위해 책을 덮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세상을 다 알지 못한다. 그런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잠이 청하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어렵긴 하지만 어딘가 친근했다. 전체가 부분이 되고 부분이 전체가 되는 패턴 같은 디자인을 본 적이 있다. DNA 표식은 부분이 아닌 전체에 있지 않은가. 기호가 형태가 되고 형태가 기호로 이루어지고.
경계라고 규정하려고 했던 건 어쩌면 오만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