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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치의 장지혜 Dec 06. 2021

기억의 오류

내향치의

예전 사진을 들여다볼 일이 있었다. 특정한 사진을 찾기 위해 디카가 나오기도 전 시기의 사진들을 앨범을 넘기며 뒤적이고 있었다. 

나의 20대의 기억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진 속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 있었다. 

기억의 오류인가. 그 사진을 찍 었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한데, 분명 착잡한 마음이었었는데 겉에서 봤을 때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십 년이 지나서 비로소 객관화시켜 본 그때의 나.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론을 미리 알아버린 영화처럼 되감기를 하고 있었는데 웬걸 새로웠다. 내 안에 있던 투영의 힘이 너무 커서 그것이 바깥까지 비쳐 보였을 거라고 분명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었다. 여리지만 밝고 맑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감정을 뒤흔든 슬픈 영화를 보고 난 것처럼 한동안 숨을 고르고 나서 옛 기억들을 되살렸다. 오래전이지만 생생한 것 같은 느낌과, 타인의 삶을 담은 영화를 본 것 같은 낯선 느낌이 공존하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타임머신을 탄다면 이런 느낌일까. 멀찌감치 떨어져서 나를 돌아보는 것은 '마음 챙김' 기술의 일종인데 나는 미숙해서 20여 년이 지나서야 실행해보고 있다. 

어쩌면 나조차 속여버리는 완벽한 가면을 쓴 것일 수도 있고, 제목 그대로 기억의 오류일 수도 있다. 

그냥 넘겨버릴 수 있는 사진이 건만, 혼자만이 알고 있는 복선이 주는 긴장감으로 인해 이렇게 다음날까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내린 객관화의 결론은 '답답함'이었다. 며칠 전에 방영된 tv 방송에서 본 것처럼 내향인에 대한 오해는 답답함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저 행동의 저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간의 생각의 괴리. 그것이 답답함이라 생각했다. 표현하지 못하는 자에게 해답은 '표현하라'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의 답답하은 해소되는 것이다. 은연중에 나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겠구나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사진 속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슬퍼졌다. 답답해 보이지 않았던 나를 내 기억 속에서 답답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나 자신이었다. 사진 속의 나는 어려 보여서인지 너무 사랑스러웠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너무 추상적인 말이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쩌면 이런 느낌일까 하고 생각해본다. '과거의 나는 참 사랑스러웠구나'하고. 이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의 일종일까. 사랑한다 말해도 되는 걸까. 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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