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나의 일상
구정 연휴의 3일을 처가에서 보내고 난 후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겐 계획이 있었다. 회사 휴가 일정과 가을이 유치원 개학 일정을 감안해 상해로 다시 돌아오는 항공권도 이미 예매해 놓은 상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번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가족과의 생이별,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나의 일상. 며칠간의 적응기를 거쳐 이제 좀 정신이 든 지금 내가 겪은 일상의 변화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1월 29일 상해 푸동공항을 출발해 인천에 도착 후 서울에서 이틀 간의 시간을 보내고 31일 부모님이 계시는 제주도에 도착했다. 제주도에 도착한 날 저녁 2월 5일 상해로 돌아가는 항공편이 취소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미 뉴스를 통해 중국 내 확진자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항공편이 취소되었다는 메시지에 그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더 실감할 수 있었다. 2월 5일부터 8일까지 같은 편명의 항공 스케줄은 모두 취소된 상태라 2월 9일로 스케줄을 변경했는데 2월 4일 이 항공편 역시 취소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최근 14일 동안 중국 방문 기록이 있으면 입국을 거부하는 국가가 늘어 당초 계획을 변경해 2월 7일 중국 상해가 아닌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이동해 약 두 주 간의 출장 일정을 먼저 소화하고 2월 21일 새벽 상해 푸동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가을이의 유치원 개학 일정도 무기한 연기되고 아무래도 인구 밀집도가 낮은 제주도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되어 가족들은 당분간 상해로 들어올 계획이 없는 상태이다. 상해로 돌아오기 전 상해에 있는 동료들을 통해 또한 각종 SNS를 통해 소식을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상점을 포함한 여러 시설들이 폐쇄되었다는 이야기, 중국 내 다른 도시나 외국에서 돌아오면 14일 동안 집에 꼼짝없이 감금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엇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새로운 일상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많이 두려웠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던 20여 일간의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했기 때문이다. 공항에 내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낯선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전 여덟 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에 도착했다. 아파트 입구는 바닥에 널려있는 택배들로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아마 아파트 입주민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것 같다. 경비 아저씨는 단지에 진입하는 모든 주민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었다. 정문으로 진입하려 하니 경비 아저씨가 통행증을 보여달라고 한다. 살짝 당황한 나는 방금 캄보디아에서 돌아왔고 통행증을 어떻게 발급받는지 모른다고 했더니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주민위원회에 가서 등록을 한 후 임시 통행증을 발급받으라고 한다.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주민위원회는 이미 업무를 시작한 상태였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밝히자 모든 직원들이 급친절 모드로 돌변했다. 외국인에게 더욱 친절한 상해 사람들의 특징이다. 내 이름까지 다정하게 불러줘 가며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그들의 태도에 긴장했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먼저 체온 측정을 한 후 준비된 양식에 이름, 여권번호, 연락처 등의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최근 14일 동안 무한 지역에 방문한 적이 있는지 여부와 그 외 방문했던 지역의 이름을 적어서 제출을 했다. 무한 지역 방문 여부를 어떻게 파악하나 봤더니 사용하고 있는 통신사 별로 QR 코드를 만들어 스캔 후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니 신기하게도 최근 14일간 방문했던 도시들을 바로 조회해 볼 수 있었다.
그 후 별도의 추가 안내자료와 발열 시 연락 가능한 긴급 전화번호 등에 대해 안내를 받고 난 후 임시 통행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임시 통행증을 발급받은 후 14일 동안의 자가격리 기간 아무런 이상 징후가 없을 시 이곳에서 다시 찾아와 정식 통행증을 발급받을 수 있으니 그때 다시 보자고 한다. 상해로 돌아오기 전 14일 간 집 안에서 나올 수 없고 일주일에 한 번 가족 중 한 사람만 식료품 구입의 목적으로만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 아파트 단지는 하루 2시간 이내의 외출은 허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좀 놓인다.
임시 통행증을 무사히 발급받고 드디어 단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밀려오는 안도감이랄까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따뜻한 감정이 차가운 긴장감을 서서히 밀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부터 14일 동안의 나 홀로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모르는 게 많으니 불편한 것도 참 많지만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