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줄 사다리, 떨어지면 끝이다

두려움을 타고 올라간 밤, 세계가 보였다

by The way


밤바다 밧줄 사다리 오르기

1999년 11월 싱가포르 밤바다였다. 대형 선박에 밧줄 사다리가 매달려 있었다. 높이 11미터, 4층 아파트 높이였다. 검은 바닷물이 철썩거렸다. 배는 항해 중이었고 나는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바다는 깊고 어두웠다. 첫 발을 디디는 순간, 줄 사다리가 흔들렸다. 손가락은 밧줄을 움켜 잡았다. 온몸이 긴장이 됐다. 떨어지면 끝이었다. 배가 흔들 때마다 사다리가 출렁였고 나는 거기 매달려 있었다.

21년 경력, 새로운 도전

21년간 국내 항만에서 준설공사를 했다. 바닷속을 파서 항로를 내고 흙을 옮기며 땅을 만드는 일이었다. 글로벌 회사 한국 에이젼트가 된 후, 벨기에 본사에서 싱가포르 현장 교육 제안했다. 한국에 없는 선박을 직접보고 배우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기술의 준설 방식이었다. 승선 선박은 내가 2년 전 암스테르담에서 모형으로 봤던 그 배 제라두스 메르카토르였다.


낮에 싱가포르 오피스에서 메뉴얼을 봤다. 이론은 이해했고 현장 경험이 기다렸다. 저녁에 부두로 갔을 때 작은 배가 기다렸다. 작은 배 선원이 말했다. "저 배는 24시간 쉬지 않는다. 항구에 잠깐 들어올 때만 탈 수 있다. 밧줄 사다리로 올라가야 한다."

흔들리는 사다리, 유격훈련

밧줄 사다리. 가슴이 두근거렸다. 작은 배가 20분쯤 달리자 거대한 선박이 나타났다. 갑판의 조명이 밤바다를 밝혔다. 선박 옆으로 밧줄 사다리가 흔들거렸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였다.


선원이 물었다. "Are you ready?“ 고개를 끄덕였다. 줄사다리를 올라갔다. 중간쯤 올라갔을 때였다. 옆을 지나던 배가 파도를 일으켰다. 줄 사다리가 크게 휘청거렸다. 몸이 공중에서 흔들렸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양손에 힘을 꽉 줬다. 군대 유격 훈련 같았다. 해내야 한다. 숨을 고르고 다시 한 칸씩 올라갔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놀라운 복지시설, 다국적 팀

승선과 동시에 선장실로 가서 신고하고 안전 규칙을 약속했다. 일주일간 이 배에서 지내며 배우기로 했다. 선실은 좁았고 천장이 낮았고 침대가 작았다. 엔진 소리가 밤새 이어졌다. 배는 쉬지 않고 흔들렸다.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바다 위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식당 요리는 놀라웠다. 스테이크, 연어가 나왔다. 영화관도 있었고 헬스장도 있었다. 국내 준설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복지시설이었다.


8개 국적의 36여 명이 선원들이 2교대로 작업했다. 국적은 달랐지만 바다에서는 한 팀이었다.

그들은 친절했고 질문하면 자료까지 제공하며 설명해 줬다. 엔진, 펌프와 각 기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았다.


운전실에 계기판이 많았다. 숫자들이 깜빡이며 작업량을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모래 흡입량, 이동 속도, 적재량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관실로 내려가니 열기가 가득했다. 펌프실엔 대형 펌프 2대가 돌아갔다. 진동이 전해지고 파이프 안에서 물과 모래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바다 밑 모래를 빨아드리는 배

이 배는 바다 밑 모래를 빨아올렸다. 거대한 진공청소기처럼 저속 항해하며 해저 모래를 긁어 올렸다. 모래와 물이 섞여 올라왔고 모래는 배 안에 쌓였고 물은 다시 바다로 흘러갔다. 한국에 없는 준설 방식이었다.


모든 것이 자동화 시스템이었다. 이 배엔 수백 개 센서가 있고 모든 작업량이 자동 계산되었다. 컴퓨터가 실시간으로 생산량을 계산하고 위성통신으로 벨기에 본사에 보고했다. 모래 채취장은 인도네시아였다. 하루 4만 m3를 준설 매립했다. 한국 방식보다 공사 기간도 짧았고 비용도 적었다.


모래를 가득 실은 배는 싱가포르 매립지에 도착했고, 긴 파이프를 육지까지 연결해 모래를 배출했다. 바다가 메워지고 땅이 만들어졌다. 그 위에 공장이 들어설 것이었다.

한국과의 기술 격차

당시 한국 해양 토목에 이런 준설 방식은 없었다. 유럽의 선진 기술이 우리에게 필요했다. 그걸 확실히 느꼈다.

그날 밤 갑판에 나갔다. 캄캄한 싱가포르 밤하늘에 별이 쏟아져 내렸다. 아름다운 별들의 경연이었다. 바다 냄새를 맡으며 시원한 바람을 느꼈다. 엔진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 새롭게 들렸다.


운전실에서 기관실로, 펌프실에서 갑판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렸다. 계단을 오르며 현장을 익혔고 작동 과정을 배웠다. 7일이 빠르게 지나갔다. 현장은 매뉴얼보다 생생했다. 운전, 엔진, 펌프 소리를 들을 때 생동감이 있었다. 일주일 후 도면과 많은 자료를 받았다.


백문이 불여일견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이 배움을 어떻게 전파할지 고민했다. 한국 해양 토목의 미래를 바꿀 기술이었다. 귀국 후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만들었다. 해양수산부를 찾아가 설명했다.


건설사를 찾아갔고 설계사를 만났다. 그들이 홉퍼 준설선 선구자라고 불러줬다. 2002년에 이러한 홉퍼 준설 선박이 한국에 도입됐고, 그 후 여러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울산, 부산, 광양에서 이 준설 공법을 사용했다.

끝없는 배움의 바다

싱가포르 밤바다의 출렁이던 밧줄 사다리는 두려웠지만, 그 첫걸음이 작은 변화를 만들었다. 어려움을 넘어섰을 때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배움이 시작됐다.

그 후로도 특수 선박을 많이 체험했다. 풍력 발전기 설치선박, 중량물 설치선박, 해저 케이블 설치선박, 해저 구조물 보호선박. 해양 토목의 시공 기술이 발전하며 새로운 선박들이 탄생했다. 신기술은 계속되고 내 호기심도 끝이 없었다.


해답은 현장에 있었다. 싱가포르 밤바다의 그 줄사다리가 내 지평을 넓혔다. 한국에서 세계로 뻗는 계기가 됐다. 첫걸음이 25년 글로벌 기업과 일하는 여정이 됐다. 현장은 정직하며 그 학습은 원동력이 됐다.

공학에서 문학으로

이제 공학 동네에서 문학 동네로 이사했다. 이 동네 왕초보로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 27년이 지나 그 7일 기억을 부르니 스토리가 된다. 두려움의 밧줄 사다리, 검은 밤바다 파도, 운전실의 계기판, 엔진 펌프실의 진동, 별이 쏟아지던 그 하늘. 그것들이 글을 쓰게 한다. 그것들이 인생 나침반이 되었다. 인생은 그런 순간들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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