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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리뜨 Dec 03. 2022

회사에서 영어를 제일 못하는 사람

외국에서 별생각 없이 계속해서 사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생각: 나는 영원히 동양의 외국인이다. 외모가 그러하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아이덴티티도 그러하다. 한 명의 소시민으로서 엄청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적당히 살면 재밌게 잘 살 수 있다. 내가 이 사회에서 제일 잘 나가보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힘들 수 도 있을 것 같다. 언어 영역에도 한계가 있고, 인종차별이라는 보이지 않는 예민한 문제도 있고, 친지 가족 한 명 없는 낯선 땅에 기반이라는 것이 있을 리도 없고. 땅 한 톨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늘 회사 생활을 발로 한 스타일로, 회사 말단 생활을 하며 크게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도 크게 힘들었던 기억도 없다. 말단이 최고 기억이 미화되었는지 좋은 기억들 뿐이다. 20대를 그렇게 즐겁게 놀면서 보내서인지 그렇다고 놀지도 않았는데 30대에 접어들어 일중독 일꾼들뿐인 회사에서 베짱이가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꿈인 사람은 조금 힘이 든다. 가끔 더 기가 죽는 부분은... 나는 그들보다 영어가 많이 딸린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뜻이냐면 남들이 15분 읽을 거 나는 1시간이 걸리고 남들이 5분이면 쓰는 이메일 나는 30분을 써도 고칠게 보인다는 소리다. 일은 일이라 하면 되지만 일을 하고 나서 문서로 리포팅을 하거나 요점정리를 해서 간결하게 전달하고 설득하고 협상하는 것도 올라갈수록 잘해야 되는데 쉽지 않은 부분이다. 쓰는 것보다는 말로 하는 게 낫지만 20명 30명 들어와 있는 팀즈 미팅에서 발표를 해야 된다? 영어 울렁증이 올라온다. 나는 미국에 15년을 살았지만 회사에서 영어를 가장 못하는 사람이다 꼴찌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플리즈 


내 부서의 일이 메인인 프로젝트일 경우에 PM의 역할을 맡아야 할 때가 있다. 팀에 한 명이 나가면서 내부 팀, 자재 업체, 생산처를 포함해 적어도 15명은 들어오는 것 같은 빅 프로젝트의 매주 월요일 콜을 내가 진행하게 되었다. 진행이라고 하면 회의 전 어젠다를 보내고 추가 의견이 있으면 추합 하고 미팅 중엔 질문을 던지면서 답은 메모하여 정리하고 개인들의 액션 아이템과 팔로업을 짚고 넘어가면서 그 이후의 토픽 리스트도 훑어가며 대화를 이어나가야 되는데 일단 미팅 내용 자체가 100%는 이해도 안 되고 들리지도 않는 데다가 이걸 질문을 하면서 대답을 들으면서 대답을 쓰고 요약하면서 다음 주제도 제시해야 하고 이것은 나의 능력 밖의 일인 것이다. 이런 일은 모국어로 해본 적도 없다. 아... 정말이지 이 콜이 일주일에 한 번씩인데 월요일 캘린더에 이 미팅이 떠있는 걸 볼 때마다 아침부터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그래도 회사를 다니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회사에 좋아할 좋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 뭐라도 배워오겠지. 매주 월요일 미팅 시작 전 사장님 의자에 앉아 육상 대회에서 1등으로 골인한 것 같은 챔피언의 자세를 취해본다. 자신감 뿜뿜 호르몬을 위해서. 난 할 수 있다!


pic credit: Language Barriers in the Workplace from inwhat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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