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의 보트 파티가 있는 미술관, 필립스 콜렉션

in Washington D.C.

by 마그리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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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 콜렉션. 크리거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디씨에 있는 작은 사립 미술관이다. 디씨의 핫한 동네 듀퐁 서클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도 좋다. 월요일엔 문을 닫는다고 해서 도착한 다음날 디씨에서 처음으로 찾은 미술관이 필립스 콜렉션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고흐의 작품이 떡하니 걸려있다. 연두색과 옥색이 다시 등장했네, 하고 보니 역시 1890년 작이다.



필립스 콜렉션은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술관이다. 르누아르의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르누아르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작품 중에 하나가 디씨의 작은 미술관에 걸려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다. 실제로 던칸 필립스가 구입을 한 뒤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작품이었다고 한다.


시카고에서 봤던 르누아르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세느강변의 레스토랑이자 보트 선착장이었던 메종 포나제에서의 보트를 탄 후 즐기는 런치 파티를 테마로 하고 있지만 이 그림에는 훨씬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르누아르의 주변인들로, 대부분 실존 인물들이라는 것이 컨펌되었는데 특히 맨 오른쪽 아래, 모자를 쓰고 있는 인물은 모던 파리와 로잉하는 남자들을 즐겨 그리던, 시카고에서 특별전을 봤던 카예보트이고, 그 맞은편에 꽃이 달린 모자를 쓴 여성은 미래 르누아르의 부인이 되는 인물이다. 그녀의 뒤로는 당시 메종 포나제 레스토랑의 주인 아들이 발코니에 몸을 기대고 서있다. 그림 속에서 흘러나오는 부르주아적인 여유가 유난히 부럽게 느껴진다. 저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르누아르 보트 파티 점심 바로 왼쪽에는 고흐의 <The road menders>가 걸려있다. '길을 정비하는 사람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고흐의 남색 밤하늘과 노란 별이 총총 떠있는 그림들과는 전혀 다르다. 명도가 높은 옥색과 노란색이 밝은 대낮의 공기를 만들어내는데, 색감 조합이 너무 예쁘다. 1888년에 즐겨 사용했던 남색+노란색 조합에서, 이후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게 될 1890년에 그린 옥색+흰색 테마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다. 이 그림이 바로 그 중간 지점인 1889년의 그림이라는 게 특히 흥미롭다.



알프레드 시슬리의 작품. 마음이 복잡한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 추운 눈 내리는 겨울, 혼자 길을 걷는 인물이 마치 내 시린 마음 같았다. 눈만 안 왔지 워싱턴 디씨를 혼자 걷고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취향은 아닌데 마음에 유난히 와닿은 그림이었다.




필립스 콜렉션은 인상주의보다 현대미술에 더 무게를 둔 미술관이라,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은 비교적 빠르게 둘러보았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미국 화가 제이콥 로렌스의 연작이다. 1940–41년에 제작된 이 시리즈는 남북전쟁 이후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북부로, 더 나은 삶을 찾아 이동하던 흑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총 60점 중에 홀수 작품 30점이 필립스 콜렉션에 위치하고, 짝수 작품은 뉴욕의 모마에 있다. 그는 흑인들이 이주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남부와는 또 다른 형태의 북부의 인종 차별, 북부로 이동하는 흑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열악해져 갔던 주거 환경, 그로 인해 만연했던 결핵과 같은 질병,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이주해 온 여성들까지 담담하게 그려낸다. 힘들고 슬펐던 그 역사 어쩌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한다.



마크 로쓰코의 작품 몇 개.



통창이 크게 나있는, 해가 잘 드는 흰 거실이 있다면 걸어두고 싶은 그림도 한 점 만났다.


필립스 콜렉션은 르누아르의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와 고흐의 <the road menders>, 이 두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방문가치가 있는 미술관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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