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Washington DC
디씨 가기 전부터 어느 미술관을 갈까, 찾아보다가 챗지피티에게 디씨에서 인상파 작품들을 보고 싶으면 어디를 들러야 할지 알려줘, 했더니 크리거 미술관을 추천했다. 모네의 인상주의 작품이 9점 정도가 있고, 인상주의를 좋아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했다.
문제는 위치였다. 디씨 중심부에서 꽤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으로도 접근이 애매하다. 조지타운보다도 훨씬 북쪽에 있어서 갈까 말까 당일 아침까지 고민을 했다.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져서 가기로 결심. 내셔널 갤러리야 압도적인 스케일과 거기서 오는 작품 퀄리티가 주는 만족도가 거의 보장되어 있지만 작은 사립 미술관들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에 따라 약간 복불복 느낌이 있을 수 있는데 크리거는 안 왔더라면 이런 소중하고 멋진 미술관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아찔했다.
일단 크리거 미술관이 있는 동네는 부촌이다. 난 미래에 여기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ㅋㅋㅋ 미술관 옆에 있는 집들도 하나같이 다 어마어마하고 아름다운 집들이고, 좋아 보이는 학교도 두 개쯤 지나쳐왔다. 어려서 이런 곳에서 교육받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차도 전부 독일 럭셔리카 이상.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집들을 지나 걷다 보면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건물 하나가 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크리거 뮤지엄이다. 건물 첫인상 10/10.
건물 외부로는 보이는 사람 한 명 없이 고요하고 내부는 깜깜해 보여서, 미술관이 열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었는데 문까지 잠겨있었다. 분명히 열었다고 했는데? 문고리를 몇 번 딸깍 거렸더니 직원이 직접 문을 열어준다. 작은 미술관이라 코트 체크는 따로 없고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옷장이 있다. 겨울에 미시간 출장 다닐 때만 입는 까만 롱패딩을 옷장에 걸어두고 관람을 시작한다. 아, 한적하고 고요하다. 옷장 맞은편에는 미스터 앤 미세스 크리거 초상화가 걸려있다.
1909년 뉴욕에서 태어난 크리거는 러시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Washington D.C.의 예술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그의 집에서는 늘 음악이 흘렀다고 한다. 가난했던 시절엔 보스턴 심포니의 티켓을 제값 주고 살 수 없으니 쿠세비츠키를 보기 위해 싼 티켓이 풀리는 금요일 러시 때 심포니를 들으러 다녔다고 한다.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그는 정부에서 여러 변호사로 일하며 디씨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1946년 공직 변호사 자리를 떠나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2년 후엔 투자 회사를 세워 현재는 워렌 버핏의 벅샤이어 해써웨이가 소유하고 있는, 당시에는 비상장 회사였던 보험회사 GEICO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해 Director를 거쳐, 1964년엔 가이코의 사장이자 이사회 의장이 되고 1974년 은퇴할 때까지 Geico의 CEO이자 보드 체어를 지낸다.
커리어적으로도 큰 성공을 했다면 크리거는 예술과 교육계에도 큰 족적을 남긴다. 워낙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 가진 것도 많다 보니 내셔널 심포니 협회장, 워싱턴 오페라 협회장, 코코란 갤러리 협회장, 그리고 여러 대학의 보드 멤버로 활동했다. 수많은 기부와 후원 끝에 그는 예술계 커리어의 정점으로 1990년엔 백악관으로부터 미국 정부의 최고 예술 훈장인 Medal of Arts Award을 받는다. 자신은 예술품을 투자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저 그들을 사랑했을 뿐이며 운이 좋다고 말했던 사람. 솔직히 많이 부럽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실력도 상당해 여러 앙상블들과 협연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크리거 집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첫 수상자, 필립 존슨이 설계했는데 몇 가지 요청사항이 있었다고 한다.
1) 크리거 가족이 가지고 있는 그림과 조각 콜렉션들을 잘 디스플레이할 수 있도록 지을 것
2) 리사이틀이 가능한 메인 홀
3) 프라이버시와 전망, 채광이 좋은 공간일 것
4)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
생애에는 거주 공간으로, 사후에 미술관으로 염두에 두고 만든 건물이라고 하는데, 최근 다녔던 사립 미술관 중에 건축물만 놓고 보자면 단연 최고였다 (게티가 스케일이 더 크긴 하고 프릭 콜렉션도 인티맷한 분위기가 인상적) 소장품의 밀도도 놀라웠다. 특히 벽면 전체가 고급스러운 베이지색의 카펫(?)으로 되어있어서 따뜻하고 포근한 내부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먼지를 어떻게 관리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메인홀이자 리사이틀 홀인 룸의 사진을 찍었어야 됐는데... 동영상만 찍다가 사진을 찍는 걸 잊었다. 쨌든 모네와 피사로가 걸려있던 메인 홀은 지베르니의 봄과 시카고에서도 봤던 세느강의 안개그림이 좋았고 다른 그림에서는 큰 울림을 받지는 못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서재에 모네의 그림이 두 점 걸려있다.
메인홀에서는 4개의 방 혹은 조각 정원으로 이어지는데 그중 가장 큰 방에는 피카소, 브라크, 호안 미로 등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작품들이 꽤 있다. 나는 생각보다 호안 미로를 좋아하는 편인 듯? 어떻게 보면 약간 기괴하기도 한 것 같은데 가끔 눈이 가는 작품들이 있다. 시카고에서도 폴리스맨이라는 작품이 좋았었는데, 이번에 본 <두 사람> 역시 재밌다고 생각했다. 스페인 내전 직전, 내부 갈이 고조되던 시기에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떠나기 몇 달 전에 그린 작품으로, 모래, 실, 못 등을 사용한 거친 질감이 불안한 시대와 갈등 상황을 드러낸다.
모네를 보러 왔다가 고흐에게 붙잡힌 적은 처음이 아니지만 크리거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그림. 메인 홀도 아닌, 작은 로댕 조각상들과 함께 구석방에 걸려있는 그림이다.
1886년, 고흐는 동생 띠오와 함께 살기 위해 네델란드에서 파리로 이주해 2년을 머무른다. 그 이전까지 어두운 흙빛과 뉴트럴 톤을 주로 사용하던 그는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선명한 색과 대비, 질감을 실험을 시작한다. 파리에서의 첫 해 여름에만 꽃 정물화를 무려 서른 다섯 점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그의 아이코닉한 초유명작들 (별이 빛나는 밤 시리즈, 아를의 밤 까페, 베드룸, 해바라기 등)의 베이스가 된다.
너무 예뻐서 충격적이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크리거 미술관의 최고의 작. 하늘색 배경의 카네이션도 좋았지만 Bowl with Zinnias (백일홍)에서 느껴지는 검정과 빨강의 강렬한 대비, 아끼지 않은 물감이 만들어내는 꽃의 질감이 너무너무너무 아름다웠다. 두껍게 올린 물감이 갈라진 자국을 보며 오랫동안 괜찮아야 할 텐데...라는 걱정도 들었다. 고흐의 후기에서 많이 보이는 노랑, 옥색, 남색 조합과는 전혀 다른 색깔들의 조합이라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날씨가 추웠지만 조각 정원을 보지 않고 갈 수는 없어서 패딩을 껴입고 나가보았는데 뒷마당에서 바라본 건물은 더 아름다웠다. 벽을 타고 올라가는 조각들 마저 너무 귀여웠다.
위치 때문에 방문 장벽이 느껴질 수 있지만, 워싱턴 DC에서 미술관을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면, 인상주의 작품에 관심이 많다면 크리거 미술관은 강추한다. 고즈넉한 동네에, 그들의 세상처럼 보이는 고급 대저택들을 구경하는 재미까지 포함해, 정말 만족스러운 미술관이었다. 고흐의 꽃 정물화가 주는 즐거운 충격은 말해 뭐 할까 싶다. 모네를 보러 갔다가, 결국 크리거에 있는지도 몰랐던 고흐의 백일홍에서 오랜 시간을 서성이다 나왔다. 시간이 조금만 더 여유로웠다면, 고흐의 백일홍 앞에 더 오래 — 아주 오래 — 머무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