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페드로, 산티아고, 산 후안, 산 마르코스 @라고 아띠뜰란
이렇게 흥분됨과 동시에 걱정스러운 여행은 처음이다. 드디어 내가 중미를 간다니. 5년을 꿈꿔온 중미라니. 나에게는 이리도 부담스럽고 용기가 필요한 이 여행은 미국 남부 사람들에게는 그저 비행이 3시간도 채 안 되는 심적으로 가까운 중남미의 휴양지에 가는 느낌인 듯싶다. 태평양을 적어도 10시간을 건너야 하는 극동의 세계보다야는 훨씬 그렇겠다 싶다. 거리가 가까운만큼 텍사스에서 가르치는 제2의 언어도 당연히 에스빠뇰. 다양한 사람들이 게이트에서 기다리는데 보딩을 기다리는 곳에 과테말라로 향하는 동양인은 나뿐이다.
그렇게 3시간을 채 날지 않아 과테말라에 도착했다. 혹시나 모르는 운 좋지 못한 일을 대비해 여권을 3장이나 카피를 해두었다.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미지의 제3세계의 대한 일종의 대비였으며 치안에 대한 불신이었다.
모두가 치안이 좋지 않다고 하는(그리고 크게 볼 것이 없다 하는, 하지만 한인 교민 분들 꽤 많이 살고 있다는) 과테말라 시티는 과감하게 스킵하고 랜딩을 하자마자 일단 안티구아 과테말라로 향한다. 다음 날 아띠뜰란 호수의 작은 마을 중 하나로 이동하기 전에 하루 머물고 간다. 공항에서 호객행위를 당할까 봐, 소매치기를 당할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공항의 문을 빠져나왔을 때 날 맞이하는 과테말라의 아주 좋은 섭씨 22도 날씨란. 바람이 살랑살랑, 완벽하다.
안티구아는 스페인 지배 당시의 과테말라의 수도로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특징적이며 과테말라로 향하는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이다.
안티구아에서 36불 정도 했던 호스텔 하룻밤 값에는 조식이 포함되어있었는데 호스텔 언니들이 직접 만들어주는 커스텀 오믈렛은 내가 먹어본 오믈렛 중 단연 최고였다. 레시피는 대충 계란 풀어 얇게 펴서 안에 시금치 몇 장, 버섯 몇 개, 피망 몇 가닥, 토마토, 실란트로, 양파, 마늘 다진 거를 넣고 반을 접는다, 후추로 마무리. 거기다가 살사 케찹을 위에 사르륵.
호스텔 가격에 대해 잠깐 언급을 하자면 비록 여행 전 불신에 가득해 사람들이 함께 쓰는 4인실, 6인실 등의 도미토리에서 지내고 싶지 않아서(누가 뭐 훔쳐갈까 봐 ㅠㅠ) 퀸 침대 하나 있는 개인실에 머물렀으므로 더 싸게도 충분히 숙박이 가능하다. 도미토리에는 대부분의 경우 자물함이 있고 싸게는 10불 밑으로도 숙박이 가능하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있는데 호스텔 직원이 부른다. 산 페드로로 가는 버스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이란다. 빠나하첼에서 내려서 란차(배)를 타고 갈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한방에 가는 셔틀을 타고 갈까 하다가 셔틀을 타기로 했다. 과테말라 뉴비니까.
셔틀은 빈자리 하나 없이 운전사 옆 좌석까지 만석이었고 짐을 밴 위에 얹어가는 것이 아주 가관이었다. 차에 내려 쉴 때마다 모두가 가방이 잘 있나 보곤 했는데 결론적으론 잃어버린 가방 하나 없이 모두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호수에서 3일을 머무르기로 하고 내가 선택한 숙소는 산 페드로 2박, 산 마르코스 1박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산 페드로 2박은 후회스럽다. 여행 오기 전 라고 아띠뜰란에서 이건 꼭 하겠다! 했던 것이 산 페드로 화산 하이킹이어서 산 페드로로 숙소를 결심했지만 와서 보니 다른 도시에서 머물렀어도 란차타고 올 수 있는 충분히 가까운 거리이고 산 페드로는 유럽, 미국 백인들이 모여서 새벽 3시까지 크게 음악 틀어놓고 술 먹는 분위기의 동네. 너무 시끄럽다. 설상가상으로 숙소에 뜨거운 물도 안 나온다.
과거나 지금이나 유럽, 미국 백인들이 제3세계로 몰려가 그 지방의 문화 자체를 뒤바꾸는 건 예전 식민지 시대의 일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경제적 수탈, 종교 전파의 목적으로 들어와 이 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면 지금은 자본을 들고 들어와 지방을 변화시킨다. 유럽, 미국 백인들을 먹이기 위해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는 15살짜리 안토니오를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과테말라 가정들은 대부분 돈이 많이 없어 애기 때부터 일을 한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는 학교는 졸업했다고.
아띠뜰란 호수 주변으론 여러 개의 마을이 있다. 산 페드로에서의 하이킹 하루 말고는 다른 날들은 뭐 할지에 대해 계획을 딱히 세우지 않았다. 산 페드로의 시끄러움이 싫어서 산 후안, 산티아고를 방문하게 되었고 산 패드로보다 이 두 도시에 마얀 텍스타일 상점이 훨씬 많았다는 게 좋았다. 결국 산 후안에서는 치마 한 장을, 산티아고에서는 크로스백과 남자 친구의 바지를 하나 샀다. 이곳의 알록달록 텍스타일은 충동구매를 일으키기에 최고다.
산 페드로에서의 메인 목적이었던 산 패드로 화산 하이킹. 산행을 위해선 100께찰을 내고 로칼 가이드를 동행해야만 하는데 어쩌다 어리바리하다가 아침에 툭툭 타러 나가는 중에 디에고라는 가이드를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하이킹을 위해 간 볼칸 산 페드로였지만 걱정이 많았다. 트립 어드바이저에 200개의 리뷰 중 5개의 리뷰에서 총, 칼을 든 강도들을 만나 귀중품 및 돈을 뺏겼다는 에피소드들 봤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가지 않을 수가 없어 가긴 갔는데 결론적으로는 두 번째 스탑에서 만난 다른 그룹의 가이드와 내 가이드가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은 극구 반대해서 (4번째 스탑이 정상) 두 번째 스탑을 뒤로하고 하산해야 했다. 아띠뜰란 호수로를 내려다보는 등산은 좋았지만(정상에 못 올라서 아쉬움이 더 컸지만) 더 좋았던 건 등산로 내내 옆으로 보이는 커피나무와 열매였다.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다며 한번 씹어보라고 제안하는 가이드를 의심 가득 쳐다보며 한번 먹어보니 쓰면서도 단맛이 났다. 안을 갈라보니 귀여운 커피 씨 두 개가 있고 그 커피씨을 또 가르면 또 다른 열매가 있는데 짧은 스패니쉬로 알아들은 바에 의하면 제일 안쪽에 있는 그 작은 열매를 커피 열매 중 최고로 친다 한다.
이 외에도 여기저기 땅에 뒹굴고 있는 아보카도 씨앗들을 볼 수 있었는데 여름이 되면 산에 아보카도가 엄청나다 했다. 그냥 지나가다가 따먹어도 된다고. 미국도 한국에 비하면 아보카도가 비싼 편은 아니지만 과테말라에선 아보카도가 1-2께찰 정도라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면 200원 정도?
호수 주변 도시들이 1600m 정도의 고도라 약간의 고산병 증상이 느껴진다. 머리가 아프고, 팔다리가 쑤시고,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안 그래도 잠이 잘 오지 않는데 산 페드로에선 밤 2시까지 쿵짝쿵짝 노래를 틀어대니 질린 나머지 다음 날 한달음에 산 마르코스로 탈출해왔다. 란차로는 15께찰.
산 마르코스 또한 많은 서양인들의 방문으로 요가, 명상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산 페드로와는 사뭇 다르게 신발을 신지 않고 머리는 감지 않아도 되게 레게 스타일로 땋아버렸으며 후줄근한 과테말라 텍스타일 스타일로 옷을 입고 텍스타일 팔찌 발찌를 무심하게 낀 타투가 많은 백인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이 곳에서 나는 철저한 제삼자가 된 기분이다. 미국에서는 내 삶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이방인이더라도 익숙함이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길가의 거의 모든 이가 흥미로운 눈으로(쟨 뭐지?) 시선을 던진다. 동양인을 보기가 쉽지가 않아 적극적인 경우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봐준다. 안타까운 건 일 번으로 나오는 질문은 늘 하뽕(일본)?이라는 것이지만.
아띠뜰란 호수에서의 마지막 날. 파나하첼에서 셔틀을 타고 안티구아로 이동하기 위해 산 마르코스에서 란차를 타고 파나하첼로 이동한다. 한국인들이 한다는 까페 로코로 향한다. 안티구아로 향하는 셔틀이 이곳으로 나를 픽업하러 올 곳이다. 카페인 중독인 부모님을 둔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커피를 하지 않는데 과테말라는 커피가 그렇게 유명하다니 셔틀을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마셔보기로 했다. 물론 모카를 시켰지만 커피에서 쓴 맛은 전혀 나지 않고 아주 맛있다. 과테말라에서 마셔본 커피들은 보리차 같은 맛이다. 스타벅스의 아이스커피는 너무 쓰고 카페인이 심해 두 모금 마시고 치웠어야 했는데(심장이 불편할 정도로 빨리 뛰어서). 10개월째 북미, 중미를 떠돌고 있는 친구를 만났고 카페 주인님과 한국말로 수다를 떠는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