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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리뜨 Jan 24. 2020

미국의 정육점을 소개합니다 - 홀푸드의 정육 코너

미국은 고기가 정말 싸다!

자취생활이 10년 차가 넘어가다 보니 (맛있게)먹고 사는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식재료의 질과 가격에 관심이 생겼고 최근 한국을 다녀오면서 한국의 싱싱한 야채와 질 좋은 해산물의 저렴함에 감탄을 했다. 쌓여있는 좋아 보이는 파 몇 단이 삼천 원 (말이 몇 단이지 째로 쌓아놓고 팜), 맛나 보이는 여러 종류 쌈 야채가 들어있는 한 봉지가 2,000원. 네 가족을 배불리 먹일 것만 같은 대왕 가리비와 다른 조개류가 잔뜩 들어있는 꾸러미가 세일해서 20,000원. 바로 잡아 올렸을 것만 같은 대구 한 마리가 시장에서 7-8,000원. 국내산 고춧가루가 500g에 20,000원.


지나가는 시장의 야채 가게, 너무 맛이있었던 조개꾸러미 찜. 어째 색깔도 저리 예쁠까.

 

그와 대조되게 엄마와 외식을 하고 들어오면서 아빠에게 저녁으로 구워줄 고기를 보러 나간 마트의 고기 섹션에 붙어있는 가격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200g의 안심이 25,000원이 넘는다니? 그리고 안심에 원래 저렇게 마블링이 껴있는 거였나?


주말은 내게 휴식과 함께 다음 주 대비를 위한 장을 보는 시간인데 원래는 원하는 재료를 가성비에 맞게 사기 위해서 장을 볼 때마다 마트를 세 개씩 다녔었다.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다 보니 장보는 시간+이동하는 시간이 3시간 가까이 걸렸고, 장을 보고 오면 피곤해서 낮잠을 자야 했다. 결국 장 보는 일정에 너무 지쳐 홀푸드에서 몰빵 쇼핑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할 경우에 이동하며 장 봤던 비용보다 만원 정도 영수증에 더 찍히지만... 체력 값 및 기름값 절약을 생각하며 아픈 마음을 달래 본다. 참고로 홀푸드는 텍사스 오스틴에 본사로 두고 있는 슈퍼마켓으로 트랜스 지방, 인공 색/향료, 보존제를 포함하는 제품은 팔지 않는 프리미엄 마켓으로 취급되는 곳이다. 올가닉 식재료로 유명하며 이곳에서는 코카콜라를 팔지 않는다. 2017년 아마존에게 인수되었다.


다른 슈퍼마켓들을 열심히 다니던 시절에도 홀푸드를 가는 가장 큰 목적은 역시 고기다. 내 동네의 홀푸드에는 꽤 훌륭한 셀렉션을 가진 정육점이 들어서 있고 2년쯤 다니다 보니 고기 손질해주는 분들과도 이름을 트고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여태 나의 구체적이고 귀찮았을 법한 손질 요청에 대한 감사 표시로 건장한 남자분 두 분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스크 팩을 드렸다. 선물을 주면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나랑 또래일까, 라고 생각했던 미남의 정육사는 나보다 10살 가까이 어렸다는 것이었다.


좌측 돼지고기, 우측 닭고기. 좌측 돼지고기 섹션의 가운데 가장 큰 덩이가 삼겹살(Pork Belly, 돼지 뱃살) 부위.
좌측 상단 코너에 지방질같이 보이는 덩어리에서 우측 반쪽정도가 차돌박이. 가운데엔 갈비살 가로컷/세로컷이 세일중.


미국에는 한국 사람들이(내가) 좋아하는 차돌박이 따위의 단어 또는 고기 부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차돌박이를 먹으려면 어떤 부위를 어떻게 썰어야 차돌박이가 나오는지를 알아야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큰 양지(브리스켓) 짝에서 팁을 기준으로 반을 가른다 (껍질 부분을 눕혀놓고). 가르고 나서 잘록한 부분을 (껍질이 뒤에 있을 때 왼쪽 부분) 다시 삼등분한다. 그 삼등분에서 중간 가운데 부분 정도가 한국인이(내가) 사랑하는 완전한 차돌로, 이 부분을 슬라이서로 얇게 떠낸다. 근데 홀푸드에서는 브리스켓은 원래 덩어리 짝으로 팔기 때문에 이렇게 고기를 조져놓고 가운데만 쑝 가져가면 너무 비양심 손님이기 때문에 양지 중 반 덩어리 정도는 가져가서 소고기 무국도 끓여먹고 수육도 해 먹고 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 참고로 이렇게 썬 차돌박이/양지는 450g에 9,000원 정도. 내가 사는 곳은 모든 사람들이 바베큐에 미쳐있는 텍사스라, 사람들은 통 양지(브리스킷)를 사서 스모커에 장시간 훈연을 해내는 용도로 주로 사용을 한다. 차돌박이가 유독 비싼 이유는 소 한마리에서 나오는 양도 적기도 적지만 손질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한번 큰 덩어리로 썰 것을 슬라이서로 얇디얇게 썰어내야 해서 그런 것 같다.


(찾아보니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소고기를 가장 세밀하게 나눠 먹는 민족으로, 소고기를 약 120개! 의 부위로 나눠 먹는다고 하며 45개정도 부위로 세분하는 미국, 35개 부위를 활용하는 영국과 프랑스, 51개 부위를 먹는 아프리카 보디족보다 월등하게 많다. 1994년판 ‘동아 새국어사전’에는 소의 내장과 살코기에 관한 단어가 136개나 등장한단다 (조선일보 출처). 역시 한국 사람들은 대단한 지식인들이며 손재주가 좋은 미식가들이다!)


삼겹살은 어딜 가나 존재하지만 비교적 다른 부위들에 비해서 서양인들에겐 비인기 부위라(주로 동양인들이 많이 먹는 듯) 450g에 비쌀 때는 7,000원, 쌀 때는 5,000원 정도 한다. 삼겹살도 짝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두께로 썰어달라고 해야 할지는 그 날의 기분에 따라 결정한다. 대패 삼겹살은 대패 삼겹살대로 맛있고 두껍게 썬 삼겹살은 두꺼운 대로 육즙이 넘치는 것. 한 칸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삼겹살을 보고 있노라면 삼겹살에 많은 성원과 수요를 보여준 팰로우 동양인들에게 감사를 바친다. 그들이(우리가) 있어 삼겹살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


찜용으로 샀던 끝내주는 돼지 목살 2kg.


요즘 돼지 목살을 짝으로 떼와서 중미식 찜(올리브 오일, 고수(실란트로), 라임즙, 오레가노 등을 이용한)을 만드는데 한껏 맛들여있는데 이 부위의 재밌는 점은 명칭이다. 한국에서는 목살이라고 칭하는 이 부위를 이곳에서는 돼지 어깨살, 혹은 엉덩이살이라고 부른다. 왜 어깨, 목부분 살을 엉덩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명칭은 pork shoulder(어깨), or pork butt(엉덩이) 되시겠다. 가격은 삼겹살과 비슷하게 450g에 싸면 5,000원, 비쌀 때 6,000원 정도.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콕 찝어 치맛살이라는 것을 들어나 봤지 먹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미국식 멕시칸 음식 빠히따(fajita)를 만드는데 많이 쓰여서 요즘엔 멕시칸 식당을 가면 자주 먹고 있다. 치맛살 역시 싸진 않다. 450g에 12,000원 정도로 비싼 편. 얼마 전에 10,000원 정도 하길래 1.5kg 정도를 쟁여두었다. 이 부위는 또 찰지게 숙성이 되면 그렇게 부들부들 맛있을 수가 없다.



LA갈비 컷으로 썰려질 갈비뼈 세개가 지나가고 있는 덩이,   이 날은 갈비가 세일을 했다.


오히려 갈비에는 뼈가 붙어 있어서 그런지 갈비가 450g에 9,000원(뼈 포함 무게) 정도 한다. LA 갈비(측면 컷 혹은 레터럴 컷)로 양념 갈비도 재워먹었고, 두꺼운 뼈 한 짝에 두툼하게 붙어있는 갈비살만 떼서 구워 먹어봤지만 기름 넘치는 갈비는 어떻게 먹어도 진리다. LA갈비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아마 소 갈비를 측면 세로방향으로 썬다는 뜻에서 온 LATERAL CUT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치킨 날개도 450g에 3,000원에서 4,000원 정도 사이. 닭다리는 윙보다는 아주 조금 싼 편이다. 왜냐, 미국 사람들은 닭 날개를 엄청나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닭가슴살도 450g에 일반 고기는 5,000원에서 올개닉으로 올라가면 8,000원도 한다. 개인적으로 지방이 거의 없어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건강한 고급 식재료이다. 운동하는 모두가 깨끗한 근육을 찌우기 위해 사랑하는 재료이며 퍽퍽할 수 있는 가슴살은 소금물에 몇 시간 정도 재워 브라이닝을 하면 한 층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데 소금물 양 조절이 필수다. 저번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서 약간 망했지만 육질은 아주 부드럽고 좋았다.


소 등심 또한 한국인에게 빼놓을 수 부위가 아닐까. 등심은 내게 조금 더 특별하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쯤 울 엄마는 회사를 다녔는데 당신이 없을 출출할 시간에 구워 먹으라며 가끔 등심을 사두셨다. 가운데에 떡심이 들어있고 가에는 기름이 삭 붙어있는 맛있는 등심. 새해를 맞아 쇼핑을 나간 홀푸드에서는 등심이 450g에 8,000원을 하는 유래 없는 세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존 프라임 멤버라면 여기서 10%를 더 날려준다. 없는 월척에 2kg를 쟁였다. 450g은 차돌과 같은 얇은 슬라이스로 두 봉지 (총 900g), 그리고 남은 1kg는 덩어리로 잘라와 반토막을 럭셔리하게 미역국을 해 먹었다. 나머지는 소고기 무국을 해먹을 예정으로 냉동고에 들어가 있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고기에 돈을 많이 지불하면 할수록 고기의 질은 올라간다는 것을 홀푸드에서 배웠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비싸지도 않은 것이 아마존에 인수된 이후 아마존 프라임 멤버들에게 세일 제품에 한하여 세일 가격에서 10% 세일을 더 해주는 제도 덕분이다. 세일을 할 경우 H마트와 같은 한국 마트와의 고기 가격과 비슷하고 삼겹살같은 경우엔 더 싸다. H마트에서 하도 눈속임을 해놓은 포장된 고기가 많아 신뢰를 할 수 없는 점도 한몫한다. 어쩜 같은 한국인끼리 서로 맛있는 걸 먹이지 못할 망정 먹는 걸 가지고 그렇게 장난을 치는 건지 겉으로 보이는 층 고기는 색 좋고 깨끗한 걸 쓰고 아래 숨어있는 층에는 냄새나고 곧 썩을 것만 같은 고기들을 포장했던 사례들을 한 두 번 샀던 게 아니다. 결정적으로 크게 싼 편도 아니고. 홀푸드의 고기는 미국에서도 비싼 편에 속하지만 텍사스는 워낙 고기가 싼 동네라 물가가 비싼 주보다는 쌀 것이라고 생각된다(적어도 캘리포니아 LA 지역보다는 싸다). 코스트코나 월마트 쪽으로 가면 고기 값은 더욱 싸진다. 미국에서 고기는 정말 싸다. 한국의 고기값에 비하면 더더욱 그렇다 (같은 양의 안심 스테이크가 딱 반 값정도).


홀푸드에 고기를 사러 가면 이 고기가 STEP 1이니, STEP 5니 하는 표짓말들을 간간히 볼 수 있다. 동물들이 자라나는 환경에 신경 쓰겠다는 홀푸드의 의지가 돋보인다. 이 다섯 가지의 스텝 모두, 동물들을 길러낼 때 일체 성장 호르몬, 항생제, 기타 호르몬들을 주입하지 않겠다고 홀푸드는 약속한다. 그리고 고기를 구분하는 단계는 이와 같다.


 

홀푸드의 고기 등급 포스터

STEP 1 No Cage, No Crates, No Crowding, 철장 없음, 애들을 바글바글 가둬놓고 키우지 않음.  


STEP 2 Enriched Environment. 전 단계보다 더욱 윤택한 공간에서 자라게 해 준다는 것 같지만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STEP 3 Enhanced Outdoor Access. 실내에서 살더라도 바깥공기를 더 많이 쐬게 해 주는 환경에서 자란다는 말인 것 같다.


STEP 4 Pasture Centered. 목장에서 자유롭게 키워낸다는 뜻일까.


STEP 5 Animal Centered. 동물의 입장에서 동물 위주로 키워내며 한 목장에서 키워낸다는 것을 보니 동물들에게 최대한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노력인 것 같다.


 


낙지볶음과 돌솥밥, 꼬막비빔밥, 회!회!회! 그리운 한국의 음식.


하루를 멀다하고 이렇게 질 좋은 고기를 먹으며 생활하고 있지만 신토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난 것이 제일 몸에도 잘 맞고 맛있는 법. 그래서 한국에 오랜만에 가면 그렇게 다양하고 싱싱한 해산물과 야채에 환장하는 매끼를 먹나 싶다. 오죽하면 일주일 내내 먹방을 하다가 밖에서 먹는 밥이 물려 집밥만 먹었어야 했겠나. 내게 그리운 밥상은 매일 먹고사는 등심, 삼겹살, 이 아니라 귀하디 귀한 간장게장, 낙지볶음, 대방어회인 것을. 그것도 미국이나 중국같이 대량생산을 위해 헬리콥터로 농약을 치지 않는, 작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작은 밭에서 정성으로 재배한 소중한 농작물들은 얼마나 맛이 있겠나. 한국의 해산물/채식 밥상을 그리워하며 오늘 저녁도 고기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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