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그리뜨 Jul 13. 2021

미국 사는 방구석 아미가 바라보는 방탄소년단

feat. BTS - 이사

나는 소위 말하는 방탄소년단의 늦덕이다. 2015년, 그들이 데뷔한 지 얼마 안 돼서 K-con 라인업으로 LA에 쩔어, 불타오르네 등 공연을 하러 왔을 때 그들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나는 그때 신화 부스에 가서 에릭 이름을 목을 터져라 외치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며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그들의 노래, 피 땀 눈물, DNA 등은 내 스파티파이 플레이리스트에서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단지 노래가 좋아서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있었을 뿐, 그들이 어떤 인간인가,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몹시 후회되는 일이지만.

 

그러다가 작년 코로나 덕에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무슨 이유에선가 김태형이 너무 잘생겨 보여서 직캠을 한 번 봤던 것이 몇 날 며칠의 밤샘 직캠으로 이어졌다. 내 입덕 영상은 I need u 였는데 유끼 미남 뷔의 어마어마한 잘생긴 직캠으로 시작해서 허우적대는 어색하진의 직캠으로 갔다가 정국이의 완벽한 피지크와 옷 핏을 감탄하는 직캠으로 갔다가(방탄은 정국이와 아이들이 확실하다 -- 정국이가 센터에 서는 무대는 언제나 훌륭하다) 섬세한 선을 보유 중이신 눈웃음에 녹아버릴 것 같은 다정 보스 지민의 직캠으로 마무리하며 최애를 고르는 건 너무 어려웠지만 지민이를 나의 최애로 찍고 (랩몬, 슈가, 제이홉 미안) 그들이 나온다는 방송이란 방송은 다 섭렵하기 시작했다. 달려라 방탄 여름 야유회에서 그들이 시를 낭송했을 땐 방구석에서 눈물을 흘렸고 본보야지를 보며 캠핑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회사에 방탄소년단을 협찬하자는 제안서도 냈다. 심지어 빅히트 협찬팀에 이메일도 넣었었지만 한 번의 회신이 있었을 뿐 침묵과 함께 까였지만 (관계자님들, 보고 계시다면 연락 주세요). 어쨌거나 그들은 잘생긴데 성격도 좋고 웃기기까지 한 기분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잘생기고 이쁘고 성격 좋고 몸 좋은 건 충분히 알았으니 그들의 앨범과 콘서트를 섭렵할 차례였다. 그런데 "아이돌"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노래가 너무 많았고 그들의 가사엔 늘 어떤 메세지가 담겨있었다. 난 그들의 아래 노래들과 가사들을 특히 애정 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거나, 불투명한 현실과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Wings -  난 내가 하기 싫은 일로 성공하긴 싫어, 난 날 믿어, 난 날 믿어 내 등이 아픈 건 날개가 돋기 위함인 걸, 난 널 믿어 지금은 미약할지언정 끝은 창대한 비약일 걸

Run - 다시 run, run, run 넘어져도 괜찮아, 또 run, run, run 좀 다쳐도 괜찮아

So what - So what, 멈춰서 고민하지 마, 다 쓸데없어

불타오르네 - 네 멋대로 살어, 어차피 네 꺼야, 애쓰지 좀 말어, 져도 괜찮아

Not Today - 우린 할 수가 없었단다 실패, 서로가 서롤 전부 믿었기에


그래서 그들의 컴백을 기대했다. 이번에 그들은 또 어떤 메세지를 들고 올까. 버터가 녹는 티저를 보며 버터를 기다렸고 에드 쉬런(!)이 작업에 참여했다는 permission to dance 티저를 보며 permission to dance를 기다렸다. permission to dance가 풀리던 날, 나는 유튜브 라이브에서 대기 중이던 백만 명 중의 한 명이었다.  


아. 솔직히 첫눈에는 실망했다. 첫 소절을 듣고는 정국이가 스패니쉬를 하는 줄 알았다 (it's the thought이 esta로 들렸다). 또 영어 노래구나. 무슨 말이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싶어서 자막을 켰다(물론 영어권 사람들이 영어로 노래를 해도 가사가 들리지 않는 건 흔한 일이다). 듣고 듣고 듣다 보니 노래 자체는 좋았다. 그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로 무대를 설 수 없게 되자 대중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고 싶다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했으니, 그 컨셉과도 들어맞았다. 영어로 노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단지 서양권의 차트 진입(1등!)과 자본주의, 그리고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위한 노래인가 싶어 씁쓸했다. 말 그대로 중소기업의 기적이었고 그들의 정체성은 젊은이들의 절박함, 음악에 담긴 메세지, 그리고 군무라고 생각해왔던 터였다. 그랬던 그들을 오히려 해외 팬들이 그들을 먼저 발굴해냈던 특이한 사례였는데. 영어 노래를 한다고 한국인의 정체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의 남녀노소 누구나 듣기 편하려면 영어로 해야 된다는 판단이었는지, 그놈의 "빌보드 1등", "그래미 상"을 위해서는 영어 노래가 필요한다는 판단이었을는지, 그저 영어로 노래가 하고 싶었을는지. 아니면 내가 차마 깨닫지 못하는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그들은 나와 같이 해외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자부심이었다. 음악이라는 것은 언어를 뛰어넘을 수 있는 특수한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영어 가사는 아쉬웠다. 나는 그들이 빌보드 랭킹 가수라서 그들을 좋아했던 것 게 아니었는데.





버터는 한국 가수의 노래로는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연속 몇 주동안 빌보드에서 1위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에서 느껴지는 버터의 파급력은 싸이 강남스타일이나 그들의 전곡 dynamite보다 못하다. 강력한 팬덤이 올려주는 압도적인 sales로 차트 1위를 하고 있지만, 출퇴근 길마다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저스틴 비버의 peaches, 두아 리파의 levitating, 브루노 마스(피처링이던가)의 leave the door open, 위켄드의 save your tears와는 다르게 라디오에서는 버터는 듣기가 힘들다. 한 이주에 한 번쯤 라디오에서 들려올 때면 감동이 몰려온다. 물론 이건 팬덤의 문제만이 아니라 아직도 방탄소년단을 아웃사이더 취급하는 미국의 대중음악계의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버터의 파급력 자체가 크지 않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빌보드에 진입했던 시절엔 온갖 사람들이 강남스타일을 춤을 추면서 다녔었지만 버터는 주위에서 도무지 들리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취향은 변한다. 그들의 취향이 변해가고 있을 수도 있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그들에게는 목표가 필요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한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차트에서도 랭킹을 유지하고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며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에 사는 그들이 아직도 배가 고프고 절박할 수는 없다. 개인의 삶에서도 삶의 궤적이 있듯, 방탄소년단도 그들의 커리어에 있어서 큰 업적을 이뤄냈고 당연히 그들이 열심히 일궈온 삶에 어느 단계에 서있을 뿐이고, 그 시점에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 거다. 배가 고프면 배고픈 예술이 나오는 것이고, 배가 부르면 배부른 예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들의 절박하던 시절의 노래들이 내 취향에 더 잘 맞았을 뿐이고 나는 그들의 노래로부터 위로 받고 싶었다. 그들이 내 취향의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모습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와 유튜브에 댓글을 달 때면, 나는 항상 그들의 행복과 건강을 빌어왔다.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이 정확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음악 외에 그들의 모든 것은 아직도 내 취향이다. 그들이 어떤 음악을 추구하던 그들의 취향을 존중하며 이쁜 방탄이들을 응원한다. 그들이 앞으로도 꽃길만 걷기를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그들의 노래, 이사를 띄우며 글을 마친다.

https://www.youtube.com/watch?v=mGTDw2MzE-Q

이사 가자, 정들었던 이곳과는 안녕, 이사 가자, 이제는 더 높은 곳으로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백신 1차, 2차 후기(화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