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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리뜨 Nov 21. 2018

노브라로 외출을 했다

그렇게 미국 마트, 미국 마트, 한국계 아시안 마트에를 갔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브라를 착용하기 시작했던 것이. 왜 내가 이것을 입어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이나 의문은 없었다. 엄마가 사다 줬으니까, 초등학교 고학년 내 또래 여자 아이들이 하기 시작했으니까, 이 정도의 의식도 없었을 거다. 가슴이 컸던 적이 한 번도 없어왔기 때문에 “부라자를 하지 않으면 가슴이 처질 거야”라는 말은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도 아녔을뿐더러, 사실이 아니라고 드러난 지 오래이다. 오히려 가슴이 큰 것이 "여성다운 아름다움"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부라자는 작은 가슴을 가진 나에게 가슴의 형상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으면 했다.


그 날 이후로 외출 후에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브라자를 벗어 집어던 지는 일이었는데 (내가 자라온 집안에서의 여성은 집에서 부라자를 하지 않았다) 왜 부라자 없이 외출하는 것에 대해 나의 남자 친구는 그렇게 부정적이었던 건지, 왜 나는 그런 사실에 저항하지 않고 얇은 옷을 입을 때 노브라로 외출을 하는 것을 접어야 했는지, 동네 마실이 아닌 출근할 때에 노브라는 나에게 고려될 수도 없는 옵션이었는지.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하는 브라자였는지 나는 이렇다 할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 말고는). 거한 식사를 할 때에 오히려 브라자는 소화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으며, 때때로 흘러내리는 브라자의 끈과, 브라자의 죔과 그에 따른 답답함은 자유로움과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도대체 젖꼭지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젖꼭지와 가슴을 가리려 이리도 불편한 나일론/폴리에스테르의 겹을 하나 더 입어야 했는가.  


설리가 노브라로 사진을 찍어 올려 이슈가 된 시절이 있었다. 설리가 멋져 보였다. (외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이 노브라로 외출을 했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음을 알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손가락질하며 즐거워할 이슈거리가 되었을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한 그녀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이후로 설리의 인스타그램은 설리가 노브라로 외출하는 건 설리 자유네, 노브라로 나오면 내가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모르겠네, 불편하니까 노브라로 외출을 안 해줬으면 좋겠네 등등 많은 토론이 벌어졌었다. 겨우 설리가 브래지어를 안 한 거가 지고 이렇게 열띈 대화가 (그리고 기사화된다는 것이) 이뤄진다는 거 자체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집에 먹을 것이 똑 떨어져 장을 봐야 했던 주말, 얇은 반팔 티셔츠에 노브라로 외출하기로 결심했다. 세 마트에 가야 했다:

1. 홀푸드 (Whole Foods Market)

2. 스프라우트 (Sprout Farmers Market)

3. 에이치마트 (H-Mart)

앞 두 마트는 미국의 전형적인 그로서리 마트이고 에이치마트는 동양 사람들이 주로 많은 한국계의 마트이다. 그리고 이 순서대로 마트에 방문했다.


홀푸드에 가서는 과일 주스를 사 마시느라고 점원과 일대일로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해야 했는데 노브라로 자격지심 가득했던 나는 쑥스럽고 불편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불편하게 할 만한 시선을 전혀 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만 보고 대화를 했을 뿐, 가슴에 시선이 닿음을 느끼지 못했다. 스프라우트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쇼핑하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특별한 시선을 던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고 나는 사야 할 것을 사서 꽤 편하고 당당한 마음으로 마트를 빠져나왔다.


불쾌한 경험은 에이치마트에 들어가면서 시작되었다.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가슴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훑어보고 하는 사람들까지는 뭐,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크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옆 사람에게 귓속말을 하는 사람을 봤다. 그 귓속말을 받은 사람은 고개를 돌려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불특정 소수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귓속말을 해서 옆에 있는 사람까지 알려줘야 할 정도로 남의 젖꼭지는 구경거리인 건가?


엄마에게 나의 경험을 공유했다. 엄마, 내가 노브라로 나갔는데, 한국 마트서 사람들이 뒤 돌아서까지 쳐다보더라, 기분이 구렸어. 엄마는 나보고 네가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의 발언은 몹시 실망스러웠다. 내가 노브라를 한 게 어째서 조심하지 않은 일인 것인지? 그것은 마치 네가 짧은 치마를 입어서 강간을 당한 거야, 라는 식의 피해자 탓하기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되었지만 엄마와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젖꼭지가 뭐길래. 모든 젖꼭지를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화해버린 사회와 젖꼭지에는 늘 불편한 시선을 주어야만 하는(내 한 친구는 이것을 시선 강간이라 칭했다) 불특정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내 가슴은 오늘도 브라자 안에서 죄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냥 한국 마트 다닐 때는 그런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아 (더러워서) 부라자를 하고 다니지만 집 앞 주유소라던지, 월마트라던지를 다닐 때는 편하게 다니고 있다. 회사에 갈 때도, 친구들을 만날 때도 브라자를 하지 않아도 판단받지 않는 그런 날들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오기는 할까.


#freeyournipples #nipple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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