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첫번째 #이순신 리더십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 중 북한산 자락 아래 경복궁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광화문 광장에 서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그 광장 중앙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늠름하게 서 있다. 내가 느낀 상서로운 기운은 어쩌면 “더 이상은 지나갈 수 없다”라고 말하는 듯한 제스처의 이순신 장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불리한 전황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뛰어난 전략으로 왜군을 격파한 이순신은 5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영웅이자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순신이 전쟁 중에 남긴 기록이 바로 ‘난중일기’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로마의 카이사르가 남긴 ‘갈리아전기’처럼 이순신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사용한 전략과 당시 상황 등에 관한 전쟁기록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난중일기’는 인간 이순신의 일기(diary)이다. 일기에는 그 날의 날씨, 사건, 상황, 감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전장의 상황에 고뇌하고 백성들의 아픔에 힘들어하며, 나라와 가족을 걱정하는 인간적인 이순신을 만날 수 있다. 이미 전쟁이 일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던 이순신은 임진년부터 이 난중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 일기를 통해 우리는 당시의 리얼한 상황과 진정한 리더십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이순신의 애민정신
이순신은 국가와 백성을 진정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홀로 바다를 바라보면 고뇌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항상 나라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백성들을 귀하게 여겼기에,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을 보며 너무나 가슴 아파했다. 왜놈들로 인해 피난을 가면서도, 백의종군하며 돌아오는 이순신을 보고 ‘이제는 장군님이 오셨으니, 살았다’며 이순신을 반기는 백성들을 보며 그는 자신의 사명을 다시 한 번 깨닫았을 것이다. 절대 여기에서 물러나서는 안 됨을, 백성들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보루가 자신임을 인지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신중했고 이길 수 있는 전투를 했다. 함정이 뻔히 보이는 계략에는 임금의 명이라도 출전하지 않았다. 그와 달리 원균은 계략인줄도 모르고 눈 앞의 적을 따라가다 군대를 전멸시켰고, 자기 목숨 하나 살리겠다고 무기도 없이 허겁지겁 도망가다 왜놈들한테 죽임을 당했다.
원칙주의자 이순신
이순신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병사들의 군기를 세우려면 신상필벌을 확실히 해야함을 알고 있었다. 곡식을 빼돌리는 색리(곡물을 출납하고 간수하는 일을 맡아보던 구실아치), 군대에 입대하지 않고 도망가는 백성, 관직에 있음에도 전쟁이 두려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관리들, 그 사람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항상 원칙에 따라서 처벌했다. 원칙을 벗어나 예외사항을 만드는 순간 조직 내 기강을 잡을 수 없고 결국 전투에서 패해서 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먼저 무너지게 됨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본인에게도 매우 철저한 사람이었다. 난중일기에서 원균에 대한 언급이 매우 많은데, 전쟁 중에 술과 여자를 끼고 살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순신이 술을 함부로 마셔 인사불성이 되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그는 항상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새벽에 왜놈들의 기습이 있을 까봐 항상 경계태세를 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종들도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했다.
이순신의 겸손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난중일기’ 에서 이순신이 자신의 공을 과시하고 내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전투에서 승리 후 이순인의 공로를 칭찬하는 임금의 상을 받고나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사직의 위험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뛰어넘어서 분에
넘쳤다. 몸이 장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공로는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못했으며, 입으로는 교서를 외고
있으나, 얼굴에는 군사들에 대한 부끄러움 뿐이다.”
항상 겸손한 이순신의 곁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여러 장수들과 백성들은 스스로 이순신을 믿고 따랐다. 심지어 오만했던 명의 장수 역시 이순신의 인품에 감탄한다. 전투는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믿고 따르는 병사들이 있어야 한다. 이순신은 그런 면에서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그를 믿고 따르는 병사들과 백성들과 함께 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의 냉철한 판단력과 전략으로 이순신은 조선 바다에서 왜군을 수 없이 격파했다. 일본이 정유년 다시 전쟁을 벌이기를 계획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순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었다. 함정을 파놓고 조정에 거짓정보를 흘렸고, 왕은 이순신에게 출전을 명하지만 이를 간파한 이순신은 그 명을 거역한다. 결국 이순신은 한양으로 압송되고 고문을 받으며 힘든 시기를 보낸다. 정유재란이 발발하고, 원균이 그 동안의 수군을 한 번의 패배로 모두 잃자 이를 막을 사람이 이순신밖에 없음을 알고 다시 한 번 기회를 받는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도중에 앓아 눕는 일도 많았고 그 와중에 어머님이 돌아가시기도 했지만, 그런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이순신은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이 알려진 명랑해전에 앞서 이순신은 여러 장수들을 불러모아 말한다.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결국 이순신은 극도로 불리한 상황을 필사즉생의 각오로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했다. 그가 이 말을 이야기할 때 과연 승리를 확신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닌 국가와 백성을 위해 죽을 각오로 뛰어드는 이순신을 보면서 우리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발견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은 매우 급변하고 있다. 경제적, 군사적으로는 두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커지고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는 등 사회가 어지럽고 혼탁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궁극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할 것이라는 것을 믿지만, 훌륭한 리더가 있다면 더욱 빠르고 안정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2번의 대통령 선거로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잘 알고 있다. 이순신처럼 리더는 구성원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들의 슬픔에 아파하며 사랑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후손들인 우리들에게 이를 가르쳐주려고 난중일기를 썼다. 그리고 그의 일기를 통해 우리는 그의 숭고한 정신과 강인한 의지, 진정한 애국심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과거의 이순신 장군을 거울삼아 진정한 리더십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볼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