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러 가는 길 _ 대구

한 해를 마무리하며

by 이팔작가

21년을 나만의 방식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12월 31일, 이 순간 한해를 돌이켜 생각하면 딱히 잘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못한 것도 없는 시간이다. 그냥 작은 욕심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성실한 작가는 아니지만 다시 시작한 순간이었다. 누구나 예술적 자아를 표출하고 싶은 욕망이 있고, 나에게 그 접근성이 가장 용이한 방식이 글이었기 때문에 갖게 된 생각. 사실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지만 그나마 잘하는 게 이거 하나이기 때문에 선택지도 없었던 게 아닐까.


글은 나에게 하나의 '숙제'같다. 머릿속에 좋은 문장을 넣어두고 꺼내서 쓰면 되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다가도 이는 나의 문장이 아니란 생각에 주저했다. 많은 영감을 주는 문장이 머릿속을 휘젓거리며 나를 재촉하였다. 한 번에 모든 걸 하지 말고 조금씩 매일매일 해야 된다는 어른의 잔소리와 같은 느낌이 매번 들었다. 결국 밀린 숙제와 같은 압박감이 나를 결국 어디로 떠나 글을 쓰게 만든 것 같다.


전에는 전주, 이번에는 대구다. 대구라는 장소를 선택한 것에 큰 의미는 없다. 그냥 글을 쓸 기회를 찾다가 도착했다. 막연히 떠나는 길이지만, 좀 더 준비된 자세이고 싶었다. 밀렸던 잘못에 나름 타당한 이유라도 변명하듯이 나는 이번 여행을 준비했다.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플레이리스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담담한 글을 적고 싶었기 때문에 차분한 음악을 선택했다. 100여 곡, 팝송과 가요 그리고 뉴에이지 등 장르에 상관없이 어떤 느낌의 글을 쓸 것인데 그때 이 노래(음악)를 들으면 초기 나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만드는 곡을 선택했다.


1.jpg 21년 마무리를 위한 나의 플레이리스트


우울한 감정으로 글을 쓰기 싫었고 그렇다고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도 내 취향은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글을 쓰고 싶었다. 조금의 욕심이라면 추운 겨울의 중간에 서있는 시점에서 카페에서 즐기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같은 글이면 좋겠다. 좀 더 포근하고 차분한 그 느낌. 한 문장이라도 그건 내 삶에서 나오는 조각이기에 올 한 해 전체적으로 나 자신이 그렇지 못했더라도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을 담아 본다. 20살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버핏투자자문 그 외에 하나의 소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과 나 자신을 정립하는 글을 구상하며 쓰고 있다. 22년에는 지금의 마음을 초심으로 두고 글을 써야겠다.


문장의 조건(민이언 저)을 보면 "술술 써내려지는 글보다는, 무언가 쓰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면서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시간이 더 절실하다는 것."라는 문장이 있다. 21년 글 몇 개 쓰지 않은 나지만, 그래도 나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는 이유. 이런 열망으로 고민하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을 기다렸기 때문이라 나를 위안한다. 22년에는 좀 더 성실한 작가이며, 좀 더 글을 고민하는 나이기를 바란다. 그 열망으로 또 어딘가 떠나 나를 정립하고, 내가 꿈꾸는 나의 삶의 조각을 글로써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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