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다리 #1

by 이팔작가

어느덧 나이가 30이 되었다. 이 나이가 되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차, 집, 좋은 직장 등 무언가를 이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남은 건 아저씨로 보이는 몸 하나 남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나의 삶을 붕괴시킬 것 같았던 20대 '그 사건'이 이젠 어느 술자리에서 풀게 되는 '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 썰을 술자리에서 이야기할 때마다 다들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니 언제부터인가 이 썰의 제목을 짓게 되었는데, 그 제목이 '닭다리'이다.


이 사건은 2012년 5월에 일어났다. 당시 나는 20살 대학생으로 학교에 적응을 하고 있는 새내기였다. 모든 새내기가 그랬겠지만, 어떤 모임인지도 모른 체 부르면 달려가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술을 잘 마셔서 2~3차까지 따라가는 건 자랑이었고, 선배랑 인사를 하면서 인맥을 쌓는 그 과정이 나를 발전시키는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점심에 해장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 이렇게 잘 나가!'를 뽐내는 것이었다. 나를 한껏 뽐내고 난 후, 주로 아직 서로를 잘 모르고 어색한 동기랑 밥을 먹었다. 1~2살 많은 2학년 선배는 술자리가 아니면 뭔가 무서웠고, 4살 이상 차이가 난 사람과 밥을 먹으면 어떻게 말을 나눠야 할지 참 애매했다. 4살 차이 나는 선배와 식사는 교수님과 함께하는 식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 어색한 동기도 몇 번 같이 식사를 하다 보니 처음에는 고향, 수능점수 정도의 이야기에서 이젠 취미와 같은 관심사를 같이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영화'라는 공통의 취미로 나, 민정, 수정, 상식이가 같이 노는 한 무리가 완성됐다.


사건의 날이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이젠 조금 친해진 동기인 민정, 수정, 상식이와 밥을 먹으러 가던 중이었고, 분홍색 레깅스를 입은 여학우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2022년이었다면 전혀 문제가 될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당시 레깅스만 입은 사람이 드물 때라 우리는 그 학우를 보고 꽤나 놀랐다. 다들 짠 것처럼 시선이 레깅스로 향했고, 순간 말을 잃었다. 그 정적의 순간에서 처음 말을 꺼낸 건 민정이었다.

"야야 저거 봤어? 저 사람 바지를 깜박했나 봐 ㅋㅋㅋ 아니 무슨 레깅스만 입고 저렇게 돌아다니는 거지?"

민정이는 자기의 말에 동조를 해달라는 식으로 수정이의 어깨에 기대어 말을 했고, 수정이도 그 상황을 인지했는지 자연스럽게 말을 했다.

"그러게? 와... 몸매에 자신이 있어도 그렇지.. 너무 민망하다."

상식이와 나는 그 대화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민정이는 이 순간이 너무 재밌었는지 아니면 너무 놀랬던 건지 우리에게도 한마디 하라는 식으로 말을 건넸다.

"상식이랑 너, 방금 레깅스 뚫어지게 보던데 여자 친구가 저렇게 입고 다니면 어떨 것 같아?"

상식이는 재치 있게 그 질문을 피해 답했다.

"일단 여자 친구가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그 답변에 모두 웃었고, 그 순간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민정이는 나의 생각이 궁금했는지 피할 여지를 빼고 나에게 물었다.

"너도 여자 친구 없긴 하지만, 만약에 좋아하는 여자애가 저렇게 입으면 어떨 것 같아?"

나는 별 생각이 없이 말했다.

"저렇게 입으니 닭다리 같네"

나의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민정이는 깔깔 웃으며, 수정이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야~ 수정아 ㅋㅋㅋ 쟤 미쳤나봐 ㅋㅋ 사람 다리 보고 닭다리가 뭐냐?"

수정이는 아까와 같은 동조를 하였다.

"그래.. 사람 다리 보고 닭다리가 뭐야~ ㅎㅎ 그런데 왜 닭다리라고 한 거야?"

나는 레깅스로 부각된 잔뜩 화난 엉덩이부터 얇은 다리까지의 모양이 닭다리를 연상시킨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민망하고, 재미도 없을 것 같아서 나름 재치 있게 답했다.


"그냥 맛있어 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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