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고 많이들 말한다.
맨날 생각만 하고, 말만 하고 행동을 안 하면 말짱 헛거라고 말한다.
나는 생각이 행동보다 중요하다. 행동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미리 말해둔 바와 같이 인간의 생각은 행동의 code라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인간은 스스로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접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의미 있게 처리하려면 인간의 뇌는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고 관성에 따라 이루어진다.
조금 더 나아가면, 보다 고차원적인 일들도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자동화된다.
예컨대,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고, 자기 전에도 이를 닦는다는 습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건강한 삶을 위한 치아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러한 의미에 대한 생각 없이 습관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이를 닦는다.
이러한 습관이 정확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시간에 따른 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툴(tool)도 아직까지 없을 뿐 아니라 비슷한 습관이라고 하더라도 개개인마다 그 구체적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습관이라는 자동화된 생각, 코드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충분하게 논의되기 어려운 것 같다.
생각이 code라면 왜 그렇게 생각의 대부분은 잡생각, 번뇌, 상념 등으로 생각이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은 '언어'를 사용해서 행동을 코딩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니, 언어는 결국 생각이 아닌 인간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그 의미는 네트워크가 부여하는 것이고, 따라서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은 생각 자체는 마치 표적 없이 쏘아진 화살처럼 네트워크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침에 커피를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커피를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커피를 먹지 않는다면 아침에 커피를 먹을까 하는 생각은 사회 네트워크에서 볼 때 의미 없는 잡생각, 상념에 불과하다고 규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 글에서 내가 말하는 생각은 행동을 불러오는 생각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언어(그림, 음악 등 문자 외의 전달수단도 포함한다)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 생각에 대한 진부하다면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은 말 그대로
맞다. 그 맞는 이야기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 이 글의 큰 주제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하는 생각이 들 때 이런 사람에 대한 정의 역시 언어로 규정된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명예를 얻고 싶다. 등등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 행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안다면 왜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알면서도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욕망에 대하여 충분히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루하루의 시간 동안 진정으로 '어떠한 가치 있는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한 시간은 어느 정도 일까?
링컨이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만일 내가 6시간 동안 도끼로 나무를 베어야 한다면, 나는 첫 한 시간을 도끼날을 다듬는데 쓰겠다'
이 말을 이 글에 적합하게 바꾼다면, '만일 내가 새롭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면, 나는 변화의 시작을 그러한 삶을 원하는 내 생각의 날을 다듬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정도 될 듯하다.
사색과 성찰의 결과 어떠한 변화를 위한 중요한 결단을 하였음에도 그에 따른 행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를 이루겠다는 단호함이 없기 때문일까.
저녁에 tv를 보지 않고 책을 읽겠다고 결심하였음에도 이러한 습관의 벽을 깨뜨리지 못하는 것은 '보상에 대한 불확실성'때문일까?
생각이 없이는 행동이 없기 때문에 사실 생각이 행동보다 중요하다. 행동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지속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는 생각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여러 생각과의 다툼 속에서 우선순위를 획득하여야 얻어지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생각은 그냥 생각과 구분 지어 의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의지는 일종의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지는 한 인간을 규정짓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속하고, 그러한 의지, 생각은 그 사람이 경험한 모든 것을 종합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보겠다. 나는 변화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습관, 관성에서 결별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 변화의 불확실함, 고통스러운 느낌을 미리 예견하고 준비하여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새는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싸운다'
바깥세상이 어떠한지 모르지만, 알에서 깨기 위한 작업이 지난 하고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그 지난함과 고통을 이겨내어야 한다.
참 진부한 말같이 느껴지지만 이런 말이나 글에 충분히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에 다시 써본다.
생각은 행동의 원천이고, 의지는 생각 중의 생각이다. 생각이 충돌할 때 이를 주재하는 우선순위이다.
한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사회는 알고 있지만, 모르는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위대함은 하루 사이에 자신의 생각, 의지를 바꿈으로써 다른 우선순위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자신이 가진 돈, 명예, 평판, 재산, 육체적 능력 등은 세포가 새로이 재생되듯이 새로운 생각, 새로운 의지에 따른 행동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옛말에 선비는 3일만 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이 불만족스럽거나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좋아하는 미국의 여류시인이 있다. 이름은 엘라 윌콕스(Ella Wheeler Wilcox)이다.
시 제목은 의지(Will).
어떤 우연도, 운명도, 숙명도 확고한 영혼의 굳은 결심을 회피하거나 방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타고난 재능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의지만이 위대하다.
조만간, 만물이 의지 앞에서 길을 열어준다. 어떤 장애물이 바다를 찾는 강물의 흐름인 그 거대한 힘을 막을 수 있는가,
또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게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