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 녹동
해가 어스름하게 떴다. 게스트하우스가 다 그렇겠다만 유독 내 자리 같지 않았다. 바삐 씻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글이 좀 나와야할텐데. 또 글이라는 게 걱정한다고 나오는 거였나. 버스정류장까지 잠깐 걸었다. 정류장에 도착해서야 어디로 갈지를 결정했다. 이왕지사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그림이 좋을 것 같았다. 동쪽으로 도는 노선에 무작정 올라탔다. 어디에 가는지도 모르는 버스에 타는 행위. 이런 대책 없는 행동들이 신경말단까지 혈액을 펌프질한다. 어디 갈지 모르는 것이 어디 내가 탄 버스뿐이겠느냐만.
제주에서 버스를 탄다면 가능한 오른편 창가 자리에 앉는 게 좋을 것 같다. 해안가를 도는 노선이라면 바다와 나란히 앉아서 갈 수 있으니까. 지평선위로 얼굴을 내민 해가 중천으로 조금씩, 조금씩 기어 올라간다. 개미가 저것보단 더 빠르겠네. 하지만 몇 시간 후엔 왼쪽 창가에서나 볼 수 있겠지. 나는 삼십 분쯤 창밖을 내다봤다. 길이 탁 트여서 지도를 봤더니 제주 민속촌이 지척에 있다. 난 별 생각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오전 아홉 시. 정류장 맞은편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나 홀로 카운터 앞에 섰다. 늦게 나온 아주머니가 당황한 듯 말을 꺼냈다. 아, 영업시간은 아홉 시반.. 나는, 그래요? 죄송합니다. 하고 나오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 아메리카노는 돼요. 했다. 아, 저 그거 마시려고 했는데. 결국 오픈도 하지 않은 카페에 들어앉았다. 돌담과 돌담너머 바다가 보이는 카페. 좋다. 화장실에서 손가락 한 마디만한 벌레가 나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나는 정오까지 글을 쓰다가 나왔다. 바람은 그대로인데 햇볕이 쨍쨍해졌다.
민속촌은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라고 생각 하면서 민속촌 방향으로 걸었다. 그냥 길이 더 예뻤다. 좀 들어가 보니 작은 규모의 식당가가 있었다. 간판이 제일 요란한 곳으로 들어갔다. 칼국수집이었다. 가게 이름이 표선칼국수인데 파는 건 보말칼국수였다. 표선은 동네 이름이고 보말은 고둥의 제주방언이었다. 나는 별 기대 없이 칼국수 한 그릇과 고로케를 시켜봤다. 먼저 내온 반찬 중에 무말랭이가 있었다. 흔히 먹는 빨간 무말랭이와 달리 간장으로 담근 희멀건 색이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나는 칼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찬을 다 먹고 셀프코너에서 리필을 해왔다. 반찬 맛있는 곳이 음식을 맛없게 할리 없다. 훌륭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2019년 6월, <역마>가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아무렴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셨을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역마>를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