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마라도
알람소리에 잠에서 깼다. 세 시간쯤 잤을까? 휴대폰을 보니 새벽 네 시 반이었다. 숙소 커튼을 걷어 창문을 열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습기 있는 공기가 묻어왔다. 손을 내밀고 있으면 손톱 끝에 이슬이 맺힐 것 같은 느낌이다. 비행기 출발시간은 여섯시 반이었다. 계산상으로는 여유가 있었지만 바삐 씻고 나갈 채비를 했다. 전에 도시락을 사왔던 편의점에 들러 탄산수 한 병을 샀다.
무안 군내와 무안공항까지는 생각보다 거리가 있었다. 차타고 가면 십 분 내외 거리인데 걸어가면 1시간 넘게 걸리는, 딱 그 정도의 거리였다. 차를 타긴 타야했다. 다만 버스는 운행하지 않는 시간이고, 택시를 잡으려니 이른 시간에 인적도 뜸한 곳이라 못가면 어쩌나하고 노심초사했다. 실제로 카카오택시를 십 수 번 돌렸는데, 호출 가능한 택시가 없다고 나왔다. 새로 생긴 유료 호출을 써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짜증이 났다. 사실은 쫒기는 것에 짜증을 내는 스스로가 더 짜증스러웠다. 애초에 쫒기는 것이 힘겨워 여기까지 도망쳐 나온 것 아닌가. 못가면 못가는 거고 단순히 돈을 날릴 뿐이다. 짜증을 낸다한들 결과가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안정을 되찾으니 거짓말처럼 택시가 잡혔다. 명경지수, 명경지수, 쩝.
택시를 탔더니 기사님께서, 금방 갈 거니까 걱정말어요, 했다. 느닷없이 무슨 소리지. 생각하고 있으려니, 여섯 시 이십 분 아시아나 비행기인가? 하신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에이, 여기서 이 시간에 택시 운전하면 다 알지 뭐. 글쎄요, 시간까진 괜찮은데 항공사까지 때려 맞추는 건 소름 돋으니 관두시는 게…… 하려다 말았다. 놀란 내 표정을 보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여간 천연덕스럽지가 않아서. 나이를 지긋하게 먹어도 저런 표정을 할 수 있구나싶다. 나이를 먹으면서 표정이 줄어드는 건 모든 일에 담담해지기 때문일까, 별일 없이 같은 삶이 이어지기 때문일까? 여하간 노인의 웃는 모습이란 알 수 없는 뿌듯함을 주곤 한다.
십 분 조금 넘게 달려 도착한 무안공항. 여태 보아온 공항에 비하면 퍽 아담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부구조도 단순했다. 국내선 앞에만 줄이 늘어섰다. 그나마도 줄이 길지 않아 탑승수속이 금방 끝났다. 작은 공항, 이른 시간 치곤 제주로 향하는 승객이 꽤 많아보였다. 대기실 의자에서 잠깐 졸다 일어났더니 탑승안내 방송이 울렸다. 내가 배정받은 좌석은 비행기 완전 깊은 곳의 완전한 통로 쪽이었다. 머리 위 짐칸에 가방을 넣어놓고 쉬고 있는데 아저씨 한 분이 와서 여기 내자린데, 하셨다. 어, 잠시 만요, 하고 좌석번호를 다시 확인해보니 실제로 번호 하나를 당겨서 앉았다. 아유, 죄송합니다. 얼른 옮기겠습니다, 하니 아저씨가 됐어요, 나도 혼자 왔는데 바꿔 앉죠 뭐, 괜찮죠? 했다. 이런 게 기분이 좋아 글로 쓰는 걸 보면 그간 어지간히 지쳐있었는가 싶다.
2019년 6월, <역마>가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아무렴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셨을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역마>를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