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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ug 13. 2019

습작

일흔여덟번째

 “사실 바다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아요. 오히려 싫어하는 축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남자가 말했다. 인중 아래로 난 수염이 윗입술을 살짝 가릴 정도로 길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나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이렇게 바다 옆구리에 집까지 지어 놓구선…… 이제 와서 바다가 싫다느니 해봤자 별로 설득력은 없어 뵈는데요”


 “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남자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순간 삐- 하는 기계음이 건물 안쪽으로부터 베란다까지 울려 왔다. 몇 분 전 올려놨던 커피가 웬만큼 찼다는 신호였다. 


 “……왜 싫어하시는 데요?”


 “왜요? 별로 안 믿긴다면서요?” 남자는 능청스럽게 되물었다. 


 “설득력이 없다고 했지, 제가 안 믿는다는 소린 안 했어요”


 “그럼,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할까요?” 남자는 말하자마자 벌떡 일어나더니, 뚜벅뚜벅 걸어 베란다 안쪽의 부엌까지 걸어 들어갔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 뒷모습을 빤히 지켜봤다.      


 “사실 뭐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는 아닌데” 남자는 도자기로 된 하얀색 커피잔을 집어 들고 말했다. 


 “그런 판단은 듣는 사람의 몫이겠죠?” 


 “하긴 그러네요” 남자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아까 저한테 결혼했냐고 물어보셨죠?”


 “하셨다면서요?”


 “아내가 어디 갔는지는 안 물으세요?”


 “뭐, 피치 못한 사정이 있어서 같이 못사나보다 했죠. 그런 유부남들 많으니까요. 애도 요즘은 안 낳는 추세고” 나는 제법 태연한 표정으로 받아쳤다. “이혼하신 게 아니라면 성격 문제로 별거하고 있다거나……”


 “죽었어요. 십 년 전에”


 “아” 남자의 갑작스런 고백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하나. “아…… 제 의도는 그러니까요……”


 “하하, 안 미안해하셔도 돼요. 하도 오래된 일이라서”


 “그래도 슬프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전 사실 그렇지만도 않아요. 보통 슬픈 건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될 때인데, 저는 그건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전 최선을 다했어요. 그 때도, 지금까지도”


 “흠…… 최선을 다했다는 게 무슨 소리죠?”


 “아, 참고로 저는 소방관이었어요. 글 쓰시는 분이라 금방 눈치 채셨겠지만”


 “전혀 몰랐는데요” 내가 말했다. “기자라고 다 관찰력이 좋은 건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어요. 소방관이 되는 거요. 뭐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래요. 한 일곱 살 쯤에 가족들이랑 바다에 놀러갔었을 때였는데, 혼자 좀 멀리 갔다가 바닥에 발이 안 닿아서 정말 죽기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어요. 정말 죽기 전까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콧속에서 폐 안 쪽까지 바닷물이 가득 메워져오는 기분이었는데. 마침 인명구조 봉사를 하시던 분이 근처에 계셨던 거에요. 덕분에 구사일생 했죠”


 “어, 그런데 그게 소방관이랑 뭔 상관인데요?”


 “그 때 생각했거든요. 사람 구하는 일이 꽤 멋진 것 같다고. 만약 그 때 제가 죽었으면 가고 싶었던 학교도 못 갔을 거고, 그 뒤에 있었던 이런 저런 일도 못 해봤겠죠. 사람을 살린다는 건 단순히 생명을 구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던 거에요. 그 사람이 갖고 있던 앞으로의 시간, 꿈, 행복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아름다운 경험들까지 구해내는 거니까요” 남자는 하얀 색이 듬성듬성 묻어있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서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고요? 연결이 좀 이상한 거 같은데……”


 “라이프 가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 때 이후로 물가에는 근처도 안 갔으니까”


 “아하” 나는 대충 맞장구쳤다. 이 인간에게 더 따지고 드는 게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면허 따고도 바닷가 도로는 거의 안 달렸다니까요. 도시에서 거의 벗어나본 적도 없었고, 뭐, 아무튼……” 남자는 이쯤에서 대강 넘어가려는 눈치였다. “저는 제가 머리가 나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공부머리가 아예 없진 않았나 봐요. 몇 년 동안 씨름하다보니까 소방관이 될 수 있었거든요”


 “그건 머리가 좋은 편인데요”


 “운도 좀 따랐던 것 같아요. 같이 살던 여자친구가 도움도 많이 줬고”


 “아, 그 때 같이 살던 분이랑 살림을 차려서…… 결혼을 하신 거군요?”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왜요?”


 “결혼은 했는데 살림은 못 차렸어요. 제가 임용되자마자 죽었거든요. 뇌졸중으로…”


 “아”


 “참고로 저는 심폐소생술 엄청 잘했어요. 실제로 실습할 때도 모범 케이스로 뽑혀서 시범도 보일 정도였으니까”


 “……슬프네요, 이건”


 “웃긴 거죠. 그렇게 잘 배워놓고, 상황이 오면 누구라도 살릴 수 있겠다고 자신해놓고, 정작 집에 있던 가장 소중한 사람은 손도 못 댔으니까요. 그 때 우리 집에는 여자친구랑 고양이밖에 없었어요. 집에 돌아오니까 사람은 죽어 있고, 고양이는 구석탱이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고”


 “고양이한테 화는 안 났나요? 저 같으면 정말 그랬을 텐데”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런데 고양이가 심폐소생술 못 하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나마 저 대신 마지막을 지켜봐줬다는 거에 의의를 두려고 했죠”


 “의연하셨네요, 꽤” 나는 진심이었다.


 “하하,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살리는 사람도 있는데 어쩔 땐 죽어가는 사람도 보게 되잖아요” 남자는 사뭇 먼 곳에 시선을 둔 채 말하고 있었다. 그 쪽 바다로부터 소금기 묻은 바람이 몇 줄기 불었다. “……그래도 도저히 같이 쓰던 살던 집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이사를 했어요. 같이 쓰던 물건도 다 불태우고요. 그나마 처가의 배려로, 사망신고 전에 혼인신고 먼저 했어요. 이것도 참 그런 게, 아내가 죽었던 날 아침에 결혼식 날짜를 토요일로 할지, 일요일로 할지로 엄청 싸우고 나왔었거든요. 그런데 식은커녕 신고도 겨우 했단 말이에요”


 “그땐 무슨 요일이었나요?”


 “수요일이었어요. 하하” 남자는 퍽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보였다. “아무튼 그 사람이 죽고 나니까, 남은 게 거의 없었어요. 물건도 다 불태웠고, 시신은 화장해서 바다에 뿌렸으니까…… 생전 바닷가에 집 한 채 짓고 사는 게 꿈이라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었는데. 자라기는 반평생을 첩첩산중 시골동네에서 컸던 주제에…… 빌어먹을 바다로 가버린 거에요. 죽고 나서야 겨우”


 “……” 잠깐의 정적이 흘렀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그렇게 해서……남은 건 삼색무늬 고양이 한 마리랑, 바닷가에 집 짓고 살고 싶다고 했던 아내의 꿈밖에 없었어요. 딱 두 개만 남기고 가버린 거에요. 바보같이. 나랑 고양이랑, 셋이서 매일 바다나 쳐다보면서 커피 한 잔하는 걸 상상해보라고. 얼마나 행복하겠느냐고.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거든요”


 “……그렇군요”


 “그래서 열심히 일했어요. 소방관으로서. 십 년 동안 일해서 모은 돈이랑, 대출 좀 껴서 여기다 집을 지었죠. 그나마 여기가 파도소리가 덜 하거든요. 나뭇가지 비비적대는 소리가 훨씬 커버려서”


 “듣고 보니 그러네요” 나는 정면에 펼쳐진 바다에서 나무그늘로 초점을 옮겼다.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쉴 새 없이 재잘대고 있었다. “고양이는 어떻게 됐나요?”


 “여기 집짓는 동안 죽었어요. 열일곱 살이나 살다 죽었으니 꽤 장수 했죠”


 “엄청 오래 살았네요. 고양이가 십칠 년이면……”


 “그렇긴 하죠. 근데 조금만 더 살다 가지 싶었어요. 막상 다 짓고 나니까 나 혼자밖에 없어서…… 그래서 첫 날에는 조금 울었어요. 원래 잘 우는 성격이 아닌데”


 “그래 보여요” 내가 말했다. “이제 보니 고아원으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건물인데요…… 기부하기로 결정한 거에 아쉽거나 한 점은 하나도 없었나요?”


 “네. 없어요. 하나도”


 “하나도?”


 “네, 하나도” 남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는 알았거든요” 


 “뭐를요?”


 “아내가 꿨던 꿈이 참 보잘 것 없었다는 거요. 혹시나 해서 십 년이나 더 살아봤는데, 해놓고 보니 이만큼 하잘 것 없는 꿈도 없었어요. 바닷가의 삼 층짜리 집 같은 거…… 하나도 대단하지 않더라구요” 남자는 마침내 울고 있었다. “곁에 사랑하는 것 하나 없으면……”


 “……” 나는 메고 있던 손가방에서 작은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남자는 이내 손수건을 받았지만, 눈물은 닦지 않았다. 그저 내버려둘 뿐이었다. 그대로 흘러내려 바다까지 스며들게끔.     


 그 순간 쏴아- 하는 파도소리가 먼동이 트는 양 귀에 아른 거렸다.     


<바다가 보이는 집>, 2019. 8




<바다는 그 자리에>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석범" 님이 값을 미리 치러 주신 덕분에 이 글과 그림을 작업하고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해당 링크에서 다음 작업을 미리 후원해주시면, 이 작업을 더 오랫동안 지속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https://bit.ly/2OHBJ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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