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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ug 14. 2019

습작

일흔아홉번째

"그러니까"     


나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죽는 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치자구"     


"응"     


너는 짧게 대답했다. 시선은 여전히 책을 향해 있었다.     


"그럼 나보다 하루 먼저 죽을래, 하루 지나서 죽을래?"     


"뭐?"     


너는 '터무니없는 질문이야'란 말을 표정으로 같이 했다. 나는 네 시선을 끈 것만으로도 기뻤다.     


"너는 어떤데?"     


영리한 질문이었다. 나는 뜸 들이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난 하루 먼저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네가 죽어 없어지는 슬픔을 견딜 자신이 없거든, 나는"     


"그러니?"     


"응"     


"그럼 난 네가 죽고난 다음 날에 죽을게"     


아주 침착한 목소리였다.     


"넌 슬프지 않아? 하루라도 내가 세상에 없으면"     


"슬프지, 당연히"     


"그런데 왜?"     


나는 예상에 없던 질문을 던졌다. 너는 습관처럼 검지를 펴고 곰곰이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음, 슬프긴 슬프지만, 네가 죽고 나서 뒷정리할 사람은 있어야 하잖아. 사망신고도 하고, 쓰던 물건도 정리하고, 너도 양지바른 곳에 옮겨주고, 그러고 죽어야지. 넌 그런 거 못할 테니까"     


확신에 찬 말투였다. 당시의 나는 '고마워' 이외의 어떤 말도 덧붙일 수 없었다. 그리고 널 꼭 껴안고 십 분 동안이나 흐느꼈다. 네 목에선 어제 뿌린 향수 냄새가 아련하게 났다. 지금 나는 그때의 냄새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 다만 돌아간다면 나 역시 하루 지나 죽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결국에는 너와 미래에 널 잃을 슬픔까지 몽땅 사랑하게 됐기 때문에.     


<시간과 장의사>, 2018. 10



<시계탑>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라엄씨" 님이 값을 미리 치러 주신 덕분에 이 글과 그림을 작업하고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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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it.ly/2OHBJ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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