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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ug 16. 2019

습작

여든한번째

 “이거 정말 오랜만인데” 대표님은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요즘 글은 어때? 잘 쓰고 있나?”


 “잘 쓰는 게 어딨어요? 안 멈추고 계속 쓰면 잘 쓰는 거죠” 내가 말했다. “뭐, 그런 면에서는 잘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일 뭐라도 써서 내니까요”


 “인간이 참 한결 같다니까. 질문에 그대로 대답하는 법이 없어, 예나 지금이나”


 “대표님 질문이 유독 추상적인 것도 있지 않을까요? 그건……”


 “아, 됐어. 어차피 요즘 글은 잘 보고 있으니까. 그냥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어서 물어본 거지” 대표님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마실 거는? 커피?”


 “괜찮아요. 마실 물을 챙겨왔거든요…… 근데, 보고 계셨다고요?” 나는 김 대표님처럼 바쁜 사람이 내 글 따위를 읽고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지. 요즘 당신이 쓰는 글이 제일 재밌거든”


 “허, 칭찬이 후해지셨네요? 한창 리뷰 쓸 때도 그런 말씀은 안 하셨던 것 같은데……” 


 “후해지긴. 우리 팀 애들한테는 내가 칭찬을, 한 달에 한 번은 하나? 그 정도도 안 하는 것 같은데”


 “그건 좀 문제일 수도 있겠는데요. 팀 사기 측면에서……”


 “없는 소리를 지어내서 하는 것도 웃기잖아. 너도 제일 싫어하는 거 아냐?”


 “그건 그렇죠” 내가 대답했다. “그래도 이제 제가 하는 일은 없는 얘기 만들어내는 건데요, 뭘”


 “없는 얘기 같지가 않던데. 다 실제로 있는 얘기 같아”


 “조금은 그럴듯하게 써야하니까요”


 “거참 신기하다니까. 영감은 어디서 받는 거야? 책을 많이 보나?”


 “그냥 많이 써요, 저는”


 “그냥이 어딨어, 왜 계속 쓰는 것 같은데?” 대표님이 물었다. “예전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잖아. 대한민국에서 제일 글 잘 쓰는 인간이 되겠다고……”


 “아, 그 얘긴 하지마세요!” 나는 돌연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왜? 이제 와서 부끄러워?”


 “그런 말 하고 안 부끄러워할 사람이 어딨습니까?”


 “그 때 당신은 그랬거든? 그러니까 말이야. 참 그런 얘기를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이야길 하더라고…… 하하”

 “……그 때는 제가 생각해도 많이 건방졌죠. 여전히 반성하고 있어요”


 “아니, 반성은 무슨. 이십대 초반이었잖아? 그냥 그런 시기인 거지. 그 시절에 그 정도 목표도 없으면 재미없어”


 “세상 다 사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하기야 회사도 궤도에 올랐고…… 굳이 말하자면 완생이시니까요”


 “천만의 말씀” 대표님은 종이컵에 있던 물을 쭉 들이켜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스타트업에 완생이 어딨어? 죄다 미생이지. 우리도 마찬가지고”


 “이미 충분히 먹고 사실 만큼 벌지 않으셨나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지. 당신도 결국 만족하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뭘 말씀이죠?” 나는 순간 의아해져서 물었다.


 “계속해서 글 쓰는 거 말이야” 대표님은 날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내가 볼 땐 있지. 대한민국 전체에서는 모르겠는데, 내가 아는 이십대 중에서는 당신이 글을 제일 잘 써. 본인도 조금은 느끼지 않나?”


 “글쎄요, 그거야 대표님이 절 좋아하시니까 하는 이야기죠.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어요. 애초에 잘 쓴다는 것도 다 주관적인 기준이고……”


 “나는 당신 때문에 당신 글을 좋아한 적 없어. 처음 만났을 때도, 창업한다고 설쳤을 때도, 지금도” 대표님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당신이 쓴 글 때문에 당신을 좋아하는 거지. 인간 자체는 뭐 한심하고, 나약하고, 일관성도 없고…… 회사 운영하는 입장으로선 완전 꽝이야. 순전히 당신 글 때문에 이렇게 얼굴도 보는 거라고”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는데요, 이쯤 되면”


 “하하, 나도 모르겠어.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한 거니까” 대표님은 털털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그래서, 얼마 필요해? 얼굴 보기 힘드신 작가님께서 그냥 왔을 리는 없고……”


 “돈 꾸러 온 것 아니에요. 양심이 있으면 대표님한테는 더 못 꾸죠”


 “양심이라는 게 있었나?”


 “이제라도 좀 있으면 해서요” 나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흠, 요즘은 먹고 살만해?”


 “아뇨. 똑같아요.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하고 삽니다”


 “이번에 책도 꽤 팔렸다며?”


 “그러니까 풀칠이라도 하는 거죠. 그렇게 버티면서 다음 책 쓰고, 또 풀칠하고, 또 다다음책 쓰고…… 반복이에요. 그냥” 나는 제법 태연한 척 이야기했다. “오늘은 근처에 출판사 미팅이 있어서. 잠깐 뵈러 온 거에요. 굳이 말하자면 채무자 신고라고 할까요”


 “채무자는 무슨, 나한테 갚을 게 뭐 있다고” 


 “없나요? 있었던 것 같은데”


 “없네, 없어. 자. 그럼 저녁 때 다 됐는데 밥이나? 다른 친구들은 따로 먹으라고 하고……”


 “괜찮습니다. 어차피 또 가서 글 써야 해서요. 지하철에 사람 많아지기 전에 돌아가려고요” 나는 옆자리에 놓았던 가방을 둘러맸다.


 “진짜 인사만 하러 왔구만” 


 “제가 없는 소리하는 거 보셨나요?”


 “많이 봤지” 대표님이 덩달아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 목표는? 이제 더 잘 쓰는 건 무의미할 거고”


 “무의미하다기 보단…… 이젠 잘 쓴 글이라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겸허하게 내공을 쌓는다는 기분으로 계속 쓰고 있습니다”


 “제기랄. 원래 이렇지 않았잖아. 좀 더 멋있는 대답을 하면 좋겠는데” 나와 대표님은 회사 출입구 방향으로 따라 걸었다. 



 “나중에 부끄러워할 거 같아서요” 내가 말했다. 


 “그래도, 궁금하잖아”


 “음, 그럼요” 나는 회사의 유리문을 밀어 젖혔다. 정면에 난 창문으로 막 저녁나절에 접어든 하늘로부터 불그스름한 노을이며 창백한 어스름 같은 것들이 뒤엉켜 눈에 들어왔다. “우리 세대한테 문학이라는 걸 되찾아주고 싶다고 할까요?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요……”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대표님은 혼잣말을 하듯 따라 말했다. 


 “네. 우리는 우리가 슬프다는 것도 잘 모르고 사니까요. 슬퍼할 시간도 자격도 없으니까. 슬퍼할수록 고꾸라진다고 생각하니까”


 “하긴 그래” 대표님은 계단을 절반쯤 내려오다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그길로 쭉 내려가 집으로 향하는 내게 말했다. “이건 정말 잘 해냈으면 좋겠네. 나중에 부끄러워하지 않게끔, 응?”


 “네” 내가 대답했다. “……안 되더라도 별 수 없지만요.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인사드리러 올게요”


 “그래도 눈은 참 좋아졌어. 창업했을 때보다…… 인사는 됐으니까 글이나 잘 쓰고!” 대표님은 퉁명스럽게 말하고, 뒤돌아 건물 내부로 향했다. 뒤따라 오르는 층계참마다 주황색 불빛이 점멸했다.


 논현동에는 일찌감치 석양이 내리깔리는 모양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닿았다. 나는 느지막이 역으로 향해 걸었다.      


<몽유병 환자들> 2019. 8




<비 온 뒤>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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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열님아들"님이 값을 미리 치러 주신 덕분에 이 글과 그림을 작업하고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해당 링크에서 다음 작업을 미리 후원해주시면, 이 작업을 더 오랫동안 지속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http://bit.ly/2MeKV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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