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다섯번째
당신이 내 꿈이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당신을 매일 아침 학교가는 가방에 넣고
녀석들이 모두 떠난 교실에서
홀로 꺼내 읽다가 숨기곤 했었다
우리의 닮은 점은
서로만큼은 부끄러 않는다는 것
당신과 달리 나는
당신이 부끄럽지 않았지만
당신을 꿈꾸는 나는 부끄러웠다 하염없이
어떤 날 나는
무슨 바람이 불어
평생 글이 싫다는 어머니께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소, 했는데
작은 말다툼 끝에 밝은 다음날 아침
당신은 갈기갈기 찢겨
여느 쓰레기들과 함께 통에 있었고
나야 난자한 당신에게
동네 가장 후미진 놀이터 구석에서
고이고이 태우는 일 말고는 하릴없었다
학교도 당신의 자취 따라
독수리 높게 난다는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아무렴 꿈은 꺾이라고 있는 것이고
난 기껏 근처에서 서성거리다
눈 떠보니 문득 오늘이 돼 있었네
여전히 내게 글이란 고달프고 멀고
내 자화상은 눈이 삔 사람이 봐도
당신과 닮았다 할 수 없게 됐지만
이젠 괜찮다 결코 될 수 없는 당신이라도
진정 별처럼 사랑할 수 있음으로써
또 다른 고향에
눈 감고 간다
새벽이 올 때까지
별 헤는 밤 당신의 이름 빌려
쉽게 쓰여진 시 하나 써올리면서
<윤동주에게>, 2018. 9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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