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울진
일찍 깼다. 전형적인 알콜성 불면증이었다. 난 일어나 막혔던 부분부터 다시 원고를 시작했다. 막힘없이 줄줄, 흘러나올 때가 있는가하면 죽어라 쥐어짜내도 나오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럴 때는 어떤 수를 써도 방법이 없다. 맥주를 한 캔 마시거나, 운동을 하거나, 뭔가를 먹거나, 산책을 나가거나.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다림조차 편안하지 않다. 마감은 명백히 다가왔고, 어떤 수를 내도 나오지 않는 글을 어떤 수가 아닌 어떤 수로라도 뽑아내야한다. 이럴 때의 글이란 비행기에서 우는 아기를 달래는 일과 비슷하다. 점점 조여 오는 시선의 압박.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울음을 그쳐주길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는 처지.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어도 부모의 도리라는 게 있다. 난처하다.
내가 낸 답은 바로 오전 열 시에 시작된 휴스턴 대 골든스테이트의 NBA 경기를 보는 것이었다. 내 긴장감은 어느새 휴스턴의 토요타 센터로 날아갔다. 무릎위에 올려놨었던 노트북도 옆에 던져놔 버렸다. 책 원고 마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내 몸은 집도 아닌 진주시 어느 호텔 침대위에 있는데. 경각심이 참 없다 싶으면서도, 이것 말고 달리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경기는 휴스턴의 승리로 끝났고, 나와 골든스테이트는 나란히 수세에 몰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샤워 딱 조지고 돌아가서 개빡세게 해내는 것뿐이다.
아는 진주 사람의 추천을 받아 중앙시장에 있는 초밥집을 찾아갔다. 중앙시장은 마침 체크아웃한 호텔에서 도보 오 분 거리에 있었다. 중앙시장은, 음, 정말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단순히 레트로한 감성을 넘어선 무언가라고 할까. 칠팔십 년대의 풍경을 그대로 떼다 거리에 붙인 느낌이었다. 물론 난 칠팔십년에 와본 적도 없지만, 아무튼. 상상만 가능한 느낌을 전달받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다. 낡아빠진 탁상형 부라더 미싱, 고무다라이, 돋보기안경을 쓰고 옷을 꿰매는 할머니, 그 옆방에서 배를 살짝 까놓고 잠들어있는 꼬마아이까지. 내게 영감이 있다면 이런 곳에서 얻는 것이 영감이었다.
중앙시장에서 가장 이질적인 곳이 청년푸드몰이었다. 무수한 칠팔십 년대 사이에서 홀로 이천십 년대. 아프리카 한 가운데의 와칸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망원동쯤에서야 볼 수 있는 현대적 인테리어가 이어졌다. 나는 ‘료시’라는 초밥집 바에 홀로 앉았다. 점심이 되기 직전이었다. 사람이 들이닥치기 전에 먹어야했다. 나는 연어장 덮밥을 주문했다. 맛은, 어머, 이게 뭐람. 오 분도 안돼서 다 먹고 초밥을 추가로 시켜먹었다. 대단한 맛이었다. 나는 개처럼 처먹고 돼지가 됐다.
2019년 6월, <역마>가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아무렴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셨을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역마>를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