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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13. 2019

습작

백번째

 차는 국도를 벗어나자마자 속도를 냈다. 귀성길에 오른 차량행렬들은 겨우겨우 버티는 모양새였다. 멀어져가는 국도 위의 자동차들이며 파아란 고속철도가 레일 위로 가로지르는 모습이 선명했다. 날씨는 추석 당일에 들어 맑게 갰다.      



 “네 형은 추석씩이나 돼서 웬 아르바이트라니?” 큰 고모는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역정을 내며 말했다.


 “다 큰 녀석인데 뭘. 추석에 저 용돈벌이 하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해?” 아버지가 대응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날 때부터 얼굴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건 뭐하는 버르장머리야? 고생해서 명문대 보내놓으면 뭘 해? 인간이 돼먹어야지, 인간이” 


 “아, 인간 됨됨이까지 뭐라 할 필요 있어요? 아직 어린데 그럴 수도 있지. 글쎄, 추석에 논술첨삭 단가가 세 배는 오른다잖아요. 그거 모아서 일본에 있는 제 친구 보러가겠다는 건데, 그게 뭐 나쁜 건 아니니까……” 보다 못한 어머니가 거드는 모양새였다.


 “그런 변명이 어딨어? 내가 명절 때마다 우리 민기 만나서 돈 한 푼 안 준 적이 없는데. 며칠 동안 벌면 얼마나 번다고 연락도 한 번 안하느냐고. 이러다가 얼굴 까먹겠다니까, 아주”


 나는 고모부의 지원사격을 뒤로 하고 마당 뒤꼍으로 갔다. 장군이는 올해로 열다섯 살이 됐다. 워낙 힘이 좋은 녀석인데다 붙임성도 좋아서, 삼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오는 족족 달려들어 넘어트리고 손이며 목 구석구석을 핥곤 했다. 비록 지금은 병들어 건물그늘에 누워있지만. 예전에는 분명 그랬다.


 “그래, 넌 좀 어떠니?”


 장군이의 하얀 털을 손으로 쓸어 만졌다. 짧게 자른 털 아래가 파르르 떨렸다. 하얀 털이 때가 그대로 묻어 거뭇거뭇했다. 새카맣게 빛나던 눈동자엔 그새 누르스름한 얼룩이 엉겨 붙었다. 백내장인지 뭔지 하는 병이 개에게까지 생길 줄이야 전에는 상상한 적도 없었는데. 몇 년 전부턴 장군이의 죽음을 상상하곤 했다.


 열 살 때 까지만 해도,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인 그런 추석이 영원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듬해부터 치매를 앓기 시작하셨고, 자식내외는 물론 반평생 함께한 할머니조차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돼서 끝내 돌아가셨다. 정정했던 할머니가 몸 져 쓰러지신 것도 그때부터였다.


 추석의 풍경은 해를 거듭할수록 흐릿해졌다. 겉치레쯤만 하던 제사도 재작년부턴 흉내조차 내지 않았다. 조율이시, 조율이시하며 호통을 치는 할아버지도 없었거니와, 큰 집을 찾지 않는 친척들이 많아 뭘 준비할 명분도 없었다. 명절마다 부랴부랴 찾아와 햅쌀로 밥을 짓고, 삼색 나물을 만들고 몇 개 전도 부치는 사람은 고작해야 우리 부모님과 고모 내외에 지나지 않았다.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아버지는 마루 구석진 곳에 기대 놓여 있던 큰 상을 집어 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법이니까”


 고향에 내려온 일곱 명이 밥상에 둘러앉았다. 고모는 안방에 누워계신 할머니에게 ‘식사 하실까요’ 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모가 고개를 저으며 안방에서 걸어 나왔다. 우리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은 찰기가 있었고 김치에는 젓갈맛이 심하게 났다. 식사는 삼십 분도 안 돼 끝났다.


 “커피라도 한 잔 하러 가지” 아버지가 말했다. 나와 어머니를 포함한 네 명이 따라붙었다. 할머니 집에서 이십 분쯤 걸으면 읍내에 갈 수 있었다. 읍내에는 자그마한 커피숍이 하나 있었는데, 좀처럼 쉬는 날이 없어서 명절 때마다 커피를 마시러 오는 가족들이 많았다. 


 다만 읍내 커피숍은 그날따라 어두컴컴했고, 문도 잠겨있었다. 낡은 건물 입구에 <추석 당일만 쉽니다> 라는 문구가 써 붙여져 있었다.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보니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쓴 것이 분명해보였다. 아버지는 ‘이러니 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근처에 있던 편의점에 걸어 들어갔다. 


 “오천오백 원입니다. 할인이나 적립카드 있으세요?” 친절한 목소리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입을 닫고 있었다. 포스기에서 나온 소리였다. 


 “아뇨” 아버지는 카드와 영수증을 받아 챙겼다. 아르바이트생은 계산을 끝내자마자 가로로 치켜든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는 아버지가 가져온 얼음컵에다 인스턴트 커피를 뜯어 부었다. 맛은 달짝지근했다. 아무리 마셔도 목이 탔다. 


 다 큰 어른 다섯 명이 편의점 의자에 주저앉았다. 우리는 제각기 아무런 말도 없이 바깥 풍경을 쳐다봤다. 하늘이 부쩍 높아 가을 냄새가 새어들었다. 떠나가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한가위만 같아라>, 2019. 9



<내림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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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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