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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Sep 14. 2019

습작

백한번째

 원숭이 집단 A는 총 열 마리다. 여섯 마리의 수컷과 네 마리의 암컷으로 구성돼 있다. 집단 A는 어느 날 점심식사를 끝낸 지 두 시간이 지나는 시점부터 간식을 제공받기 시작한다.      


 처음 열흘 동안은 포도 다섯 송이를 준다. 얼마쯤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우두머리 수컷의 주도 아래 집단 A의 모든 원숭이가 대체로 비슷한 포도를 분배받았다. 이후 원숭이들의 활동은 눈에 띄게 적극적으로 변했다. 무리 내에서 다툼이 일어나 번지는 케이스도 확연히 줄었다.      


 열흘이 지난 뒤부터는 간식 구성에 변화를 준다. 가장 먼저 포도 한 송이를 오이로 바꾼다. 달고 맛있는 포도가 퍼석퍼석한 오이로 바뀌자, 일부 원숭이들로부터 작은 불만이 튀어나온다. 우두머리는 자신을 포함한 수컷들에게 포도 세 송이를, 나머지 암컷들에게 포도 한 송이와 오이 한 개를 분배함으로써 상황을 극복한다.      


 다시 열흘이 지나고, 이번엔 포도 두 송이를 오이로 바꿔서 준다. 우두머리는 수컷들에게 제공되던 포도 한 송이를 오이로 대체해야했다. 처음에 원숭이들은 우두머리에게 노골적인 반항심을 보이다가, 이내 간식을 주는 실험자 및 사육사에게 공격성을 드러낸다. 이와 별개로 집단 A에서 우두머리가 행사하던 영향력은 나날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또 열흘이 지나, 포도 세 송이를 오이로 바꿔서 준다. 원숭이들은 심하게 반발한다. 우두머리는 암컷들에게 주던 포도 한 송이마저 오이로 바꾸는데, 암컷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반대로 수컷들에게 주던 포도 두 송이를 오이로 바꿔버린다. 이윽고 집단 A에 내분이 일어난다. 이때 서열싸움에서 패배한 수컷 두 마리에게는 오직 소량의 오이만이 주어지는가 하면 아예 간식을 먹지 못하는 날도 생긴다.      


 또 다시 열흘이 지나서, 포도 한 송이와 오이 네 개를 주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집단 A의 저항이 예상 이상으로 강했기 때문에, 이틀째부턴 다시금 포도 두 송이와 오이 세 개를 배식한다. 식성이 좋은 어떤 암컷은 포도를 대가로 수컷과 교미하기도 한다.     


 거듭 열흘이 지난 뒤, 실험자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전처럼 포도 한 송이와 오이 네 개를 주되, 집단 A를 둘로 나눠 주는 것이다. 사육사는 집단 A를 세 마리의 수컷과 두 마리의 암컷으로 구성된 두 집단 B, C로 각각 나눈다. B와 C는 전처럼 같은 사육장 안에서 지내지만, 오직 간식을 먹을 때에만 투명한 칸막이로 구분해 놓는다. 여기서 핵심은 한 송이 남은 포도를 B와 C중 한 곳으로 몰아주는 것이다. 그날그날의 포도가 어느 쪽으로 갈지는 순전히 사육사의 기분에 맡긴다.     


 어느 순간부턴 칸막이 없이도 집단 B와 C의 구분이 확실해져서, 더 이상 그 원숭이 무리를 집단 A로 뭉뚱그려 부를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B와 C는 매일같이 싸운다. 한 달쯤 지나선 간식에서 포도를 제외해버리거나 아예 간식을 주지 않더라도 계속 싸우기 때문에, 원숭이들이 실험자나 사육사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일은 더 이상 없다.      


-     


 “이정도 실적이면 연구비는 충분히 받을 수 있겠지” 교수 D가 말했다. “그동안 자네가 참 수고 많았어.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야”


 “아닙니다. 교수님을 잘 만난 덕분이죠. 고생을 하긴 했지만” 대학원생 E가 말했다. 


 “그래. 참. 우리가 하는 고생을 다들 알아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연구비 자체가 쪼그라드는 추세니 어쩔 수 없죠. 실적기준도 예전보다 엄청 높아졌고요”


 “쪼그라든 것도 쪼그라든 건데…… 이게 다 연구비가 질질 새서 그래. 그 많은 연구비가 어디로 새느냐? 공학으로 다 가고 있단 말이야”


 “아무래도 대학들 추세가 그런 쪽이니까요. 관심도 다 그쪽으로 가고 있고”


 “아니, 내 말은, 학문이라는 것이 백년대계를 보고 투자를 하고 추진을 해야 하는 건데, 대학들 유행 따라, 경향 따라 이쪽저쪽으로 가버리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맞는 말씀입니다” 대학원생 E가 맞장구쳤다. 


 “빨리 그쪽 거품이 꺼져야 될 텐데. 인공지능이네 뭐네 해서 툭하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서는. 연구를 어디 지네 연구실에서만 하는 줄 아나? 어휴……” 교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됐으니까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자네 설렁탕 좋아하나?”


 “네. 좋아합니다” 대학원생이 말했다.          


<불평>, 2019. 9



<각자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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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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