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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Oct 02. 2019

습작

백열번째

 “승객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열차는 현재 긴급한 사고로 인해 운행을 중단했습니다.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열차는 한동안 멈춰 있었다. 몇몇 승객들은 안내방송이 다 끝나기도 전에 탄식하는 소리를, 또 양손아귀로 머리를 감싸면서 욕지거리를 뱉었다.


 만원이 된 열차 칸 내부의 공기가 밀도를 더해갔다. 그나마 앉아있는 사람들은 사정이 나았다. 가뜩이나 늦은 출근길에서 일어난 사달이었다. 오랫동안 서있었던 직장인들은 이미 얼굴이 울긋불긋했다. 


 “일 처리가 무슨 이따위야? 연착을 하면 명확하게 원인규명을 해서 얘길 해줘야 할 것 아냐!?”


  정장 차림의 중년 남자였다. 참다못하 누군가 큰 소리를 치면, 군중은 기다렸다는 듯 원성을 높였다. 


 “기관실 어딨어? 기관사 데리고 와! 확 귀싸대기를 갈겨버리게!”


 “쯧쯧, 저런 것들도 공무원이라고 뽑아놨으니…… 나라꼴이 어련하겠어. 아주 그냥”


 “돈 몇 푼 벌려고 나왔는데, 아침 일찍부터 이게 뭐야? 하다 하다 출근도 못하게 만들고. 씨발…… 아!”

 별안간 발아래가 꿈틀거렸다. 시동을 거는 소리가 뒤따라 났다. 


 “와, 드디어 가네. 드디어!”


 열차가 슬그머니 앞으로 움직였다. 몇몇 사람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차체는 느린 속도를 유지하며 삼십 초쯤 전진하다가 다시 멈춰 섰다. 앞쪽 칸에 탑승한 사람들은 도착할 역 플랫폼에서 빠져나오는 불빛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덧 다음 역이 코앞이었다. 


 “……죄송합니다. 열차는 현재 긴급한 사고로 인해……”


 “씨발! 지금 장난해?”


 “뭐야, 왜 멈추는데? 왜? 왜 멈추냐고!”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지금!”


 승객들은 전보다 더 흥분해서, 이제는 너 나할 것 없이 고함을 내질러댔다. 이따금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워낙 큰 주변 소음에 묻혀버렸다. 


 이 와중에 젊은 청년 하나가 임산부석에 앉아있던 아주머니와 시비가 붙은 탓에, 서있던 사람들이 물러나고 앞장서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좀! 밀지 마세요!” 


 “앞에서 미는데 저보고 어쩌라고요?!” 


 “싸우지 마세요! 지금 싸울 때입니까? 같이 뭔가 해결방법을 찾든가 해야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요? 어차피 기다리는 것밖에 못하는데!”


 “그래도 서로 싸우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닙니까?”


 “존나 잘난 척하네, 씨발”


 “야,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아무 말 안 했는데요”


 “다시 말해보라니까!”


 혼란은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그러다 견디다 못한 남자 한 명이 곁에 있던 비상탈출 스위치를 때려 눌렀다.


 “제가 볼 때는요. 이만하면 비상상황입니다. 바쁘신 분들은 먼저 문 열고 걸어서 가자고요” 남자는 사람들을 비집고 나간 다음, 열차 출입문을 양쪽으로 밀어 넣고 말했다. 어두컴컴한 지하통로로부터 퀴퀴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옆쪽으로 붙어서 가면 금방 다음 역에 닿을 겁니다”


 막상 이런 상황이 되자 뛰어내리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맨 처음에 문을 열고 내려간 남자를 포함하면 열 명 남짓이었다.


 그나마 일행처럼 보였던 여자 세 명은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열차로 되돌아왔는데, 누구 할 것 없이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돌아오자마자 기절한 것처럼 바닥에 뒹굴었으며, 또 한 명은 말도 없이 울음을 터트리는가 하면 나머지 한 명은 넋 나간 표정으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왜 그래요?” 출입문 주위에 있던 사람 하나가 물었다. 


 그녀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주저앉아있던 여자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을 뿐이다.


 열차가 다음 역 플랫폼에 도착한 건 이십 분이 더 지났을 즈음이었다. 스크린도어가 열리기 무섭게 도중에 되돌아왔던 세 명의 여자를 포함한 거의 모든 승객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열차는 오 분 동안역에 머물러있었다. 내부에는 종점까지 가는 몇 명의 승객만이 남았다. 스크린도어는 시험 삼아 열렸다 닫히길 반복하다가 완전히 닫혔다.


 열차가 종점을 향해 출발하고, 얼마지 않아 역내 미화원 한 명이 걸어 다가왔다. 미화원은 스크린도어에 남은 핏자국을 물걸레로 쓸어 닦았다. 소름 돋는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     


 스크린도어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은 그 날 첫 차가 운행되기 전부터 보고된 사항이었다. 원인 파악 및 고장수리를 위해 정비업체 직원 두 명이 파견됐고, 그중 한 명의 시신이 승강장 맨 끝 부근에서 알아볼 수 없는 형체로 발견된 것이다. 사망한 청년은 불과 며칠 전에 스무 살 생일을 맞은 참이었다.


 당시 기관사는 안내방송을 거의 하지 않았다. 탑승객들의 충격과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본인은 그날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게 됐으며,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열차 운행에 실패했다.


 김 씨는 퇴직한 뒤에도 극심한 우울증, 불면증상과 악몽에 시달렸다. 오래도록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나아지기는커녕 얼마 전부턴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린다’며 환청에 의한 고통까지 호소하는 지경이었다.


 “그 목소리가 뭐라고 말하던가요?” 의사가 물었다.


 “……모든 게 당신 잘못이야, 너 때문이야, 라고요”


 “계속?”


 “네. 계속” 김 씨가 말했다.


 “거기 그 청년이 있는 걸 모르셨다면서요?”


 “몰랐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 잘못이라고 할까요? 청년의 목소리가요”


 “그 젊은이가 아니에요”


 “그 청년이 아니라고요?” 의사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누가 말하던가요?”


 “사람들이요”


 “사람들?”


 “네. 열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왜 기관사를 탓하나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그거야 출근을 못했으니까요” 김 씨는 고개를 떨군 채 대답했다. “제 때 못 갔으니까. 가야 할 곳에”


 “그건 우리도 다 똑같은데요, 뭘. 승객 분들만 그런 게 아니라. 환자님도. 그리고 청년도”


 “네. 너무 빨리 가버렸어요”


 “어디로요?”


 “종점에……”


 김 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김 씨에게, 의사는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해 돌려보냈다.            




<지각출근조기퇴근>, 2019. 10





<종점을 향하여>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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