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말 걸지 않는 택시'가 필요한 이유는
몇 달 전, 카쉐어링 스타트업 '타다'와 관련한 반대 시위 과정에서 일흔이 넘으신 택시기사 분이 분신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었다.'몸이 불에 타는 고통'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통증 중에서도 가장 극심하다고들 한다.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서, 어떤 인간이 그토록 고통받으며 죽어갔다는 사실은 명백하게 슬픈 일이다. 정말 그렇다.
나는 프리미엄 택시 서비스쯤으로 알고 있었던 타다가 그토록 강한 저항을 받고 있다는 데 무척 놀랐다. '저 정도로 심하게 반응할 일인가?' 보단 '왜 나는 이걸 못 보고 있었지'라는 생각이었다. 떠올려보면 단서는 눈에 띄는 곳곳에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 주요 뉴스란에도, 택시 뒷좌석 앞 출입문의 스티커에서도, 종로 부근을 지나치면서 봤던 현수막과 피켓에서도 알아챌 수 있었다. 이쯤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 역시 나와 관계없는 일에는 무섭도록 무관심한 인간이라는 것을. 또 '분신자살' 쯤 되는 키워드가 아니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리란 것을 말이다.
타다를 처음 이용한 건 올해 1월쯤이었다. 당시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가구를 갖다 놓느라 녹초가 돼있었다. 건대입구에서 신림동까지는 지하철 이외의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는데, 도저히 2호선에 몸을 싣고 삼십 분을 더 버틸 엄두가 나질 않아 택시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퇴근시간에 빈 차 표시등이 켜진 택시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카카오 택시로 십 분 거리까지 호출을 돌려댔지만 응답이 없었다. 지하철 붐비는 시간에 나 같은 생각을 한 게 한두 명도 아니었을 테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래도 이십 분 넘게 같은 곳에 서서 기다리자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누가 집까지 편안하게 날 태워다 주기만 한다면 돈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즉석으로 설치한 앱이 '차차'와 '타다'였는데, 타다에서 먼저 호출이 잡혔다. 그 뒤로는 뭐, 나 한 사람 태우는데 덩치 큰 카니발이 와서 놀라고, 문을 힘으로 잡아 열려다 뒤늦게 자동문이라는 걸 알아서 당황하고…… 사람은 다 똑같다. 그 이후로도 대여섯 번은 더 탔던 것 같다. 꽤 거리가 있는 곳으로 미팅을 갔다가, 대표님이 구태여 '편하게 가세요' 하고 타다를 불러다 태워준 적도 있었다. 어쩐지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다.
개인적으로는 분신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보다도, 당시 몇몇 스타트업 관계자가 SNS에 올린 장문의 게시글을 봤던 일이 더 슬펐다. 이 글들은 주로 쓰는 어휘 정도에 차이가 있었을 뿐 대부분이 이런 내용이었다. '분신자살 같은 구시대적 저항을 하기 전에 그동안 택시회사들이 제공하던 여객서비스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할 것 아니냐' '타다는 그저 소비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했을 뿐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택시기사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런 퍼포먼스에 영향을 받아서 타다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면 누가 스타트업을 하려 들겠나'
모두 일리가 있는 의견이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의견을 내놓는지도 십분 이해한다. 나 역시 창업을 했었고 잠시나마 IT 쪽에 발을 담갔던 입장이다. '성장과 생존'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스타트업에게, 기존 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사업모델을 전면 수정하거나 애초부터 상생 가능한 대안을 구상하라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얘기인가. 뭣보다 가장 곤혹스러운 건 타다 쪽일 것이다.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불공정하게 경쟁한 것도 아닌데, 사업기회를 보고 뛰어든 결과가 이런 종류의 압박이라니. 내가 대표라면 진작에 때려치우고 부동산에나 투자했을 것이다. 요즘 관악구가 심상치 않다. 돈만 있었어도 난곡동에 땅을 샀을 텐데.
단지 나는, 상황의 원인을 해당 사업의 '적법성'이나 '상생 가능성'같은 곳에서만 찾으려 드는 것이 씁쓸했던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세대 간 갈등이 '타다 사태'를 키우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갈등에는 어느 정도 필연적인 면도 있다. 시대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사회의 각계각층이 충돌하는 것 자체를 틀어막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구태여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세상에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말만으로 변명하기 힘들 만큼 비극적인 일들도 있기 때문이겠다.
'말 많은 택시기사'가 얼마나 곤혹스러운 존재인지는…… 대한민국에 사는 90년생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법한 소재다. 작금의 이십 대가 '그 지갑 사정에도 불구하고 택시를 탄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돼있지만, 굳이 말해보자면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힘들고 지쳤어. 그래서 되도록 아무하고도 부딪히지 않고, 편안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가고 싶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대중교통수단보다 한결 편하게 이동하고 싶다는 욕구는 똑같지만, 이십 대에게는 잠시나마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서적인 안정을 취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는 셈이다. 그렇게 큰 맘먹고 택시를 탔는데 앞에 앉은 택시기사의 텐션이 심상치 않다? 조금 전까지 가졌던 모든 욕구가 좌절되는 것이다. 피곤해서 탔더니 더 피곤한 상황을 마주친 셈이다.
이쯤에서 짚어보고 갈 것이 하나 있다. 젊은 층이 일반 택시보다 타다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빠르고 편하게 목적지에 간다'는 목적성 측면에선 거의 다를 게 없다. 더 크고 편한 차, 자동문, 위생, 휴대폰 충전 케이블, 비교적 젊고 안전한 운전기사. 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야 많으나 이런 요소들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진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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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해당 브런치북 연재분이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실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글을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