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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Oct 07. 2019

습작

백열두번째

 시력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내가 있던 병실은 이따금 구성원과 자리에 변화가 있을 뿐 으레 만실이었다. 대부분이 교통사고로 인한 중상자였지만, 나처럼 시력에 이상이 생긴 경우는 드물었다. 상석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뒤로 들이받히는 사고가 그리 흔한 것도 아니거니와, 하필이면 머리를 때린 곳이 시신경과 관계가 있는 경우는 더욱이 드물었다. 


 “이 글자는 보여요?” 의사가 물었다. 


 “……어떤 글자를 말씀하시는 거에요?” 내가 대답했다. 시야에는 희끄무레한 영상이 좌우로 움직일 뿐이었다. 글자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입원한 지 한 달께 지났을 때부터는 거리 감각도 무뎌졌다. 이제는 눈으로 뭘 본다는 것도 생경할 지경이어서, 바로 눈앞에 있는 게 어떤 색인지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은 목소리로, 음식은 냄새로, 이불과 쿠션은 촉각으로 구분해야 했다.


 “아마도…… 한 달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추측하기로는……” 의사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 눈 안쪽으로 라이트를 몇 번 깜빡이는 모양이었다. 눈부신 느낌은 없었다. 


 “제 목숨이요?” 내가 물었다.


 “아뇨. 목숨이 아니라” 의사가 즉시 대꾸했다. “눈 말이에요. 시력……”


 “죄송해요. 선생님. 얘가 철이 없어서…… 재수 없는 소리만 골라서 하고 있어!” 곁에 서있던 엄마가 역정을 냈다. 동시에 뒤통수가 얼얼한 게 손바닥으로 힘껏 갈긴 모양이었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한 달 뒤부터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나질 않았다. 아무 것도 못 보는 건 지금도 별 차이는 없다. 그저 좀 더 지나면 그 희미한 형체나 색까지도 잃어버리게 되고, 빠져나올 수 없는 완전한 어둠의 세계로 곤두박질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게 꿈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정말 빌어먹게 질이 나쁜 꿈이라서, 깨어나기까지 아주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악몽은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뜨면 어제보다 더 희미한 천장이 올려다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천장처럼 보이는 것이 보였다. 눈앞에다 하얀 도화지 하나를 갖다 댄들 구분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혁아, 몇 숟갈이라도 좀 먹어” 엄마가 음식 냄새 나는 형체를 내게 들이밀었다. “밥을 먹어야 조금이라도 낫지”


 “낫긴 개뿔이 나아” 나는 고개를 뒤로 빼면서 뇌까리듯이 말했다. 


 “영양이 부족하면 원래 나을 것도 안 나아. 응? 착한 우리 아들……”


 “글쎄. 엄마 아들 죽었다니까요. 그러니까 찾지 마세요”


 “아니야. 내 아들 여기에 있어. 여기서 차근차근 회복하고 있는 거야. 조만간 몸도 회복하고 시야도 돌아와서 같이 퇴원할 거야”


 “아직도 꿈같은 소릴 하시네. 그냥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저한테는 이게 더 힘드니까”


 “엄마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니. 명백한 헛소리였지만, 마땅히 받아칠만한 것도 없었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단지 대화가 골치 아픈 흐름으로 가고 있으니 주제를 바꿔볼 속셈이었다. “보험료는 나왔어요? 전에 수술했던 거”


 “응. 나올 건 다 나왔지”


 “불행 중 다행이네요” 난 진심으로 말했다. 


 “……필요한 건 없어? 다른 거 뭐 먹고 싶거나, 듣고 싶은 거라든가”


 “없어요. 보고 싶은 건 많은데”


 “뭐가 제일보고 싶은데?”


 “뭐가 됐든 아무 거라도 선명하게 봤으면 좋겠어요. 다 못 보게 되기 전에. 한 번이라도”


 “그 중에서도 제일 보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냐”


 “제일 보고 싶은 거요”


 “응” 엄마가 대답했다.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것 중에 제일 보고 싶은 거라니. 그 전엔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였다. 


 “음……” 나는 목을 침상에 뉘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거 아닐까요”


 “그게 뭔데?”


 “마지막에 보려고 했다가 못 본 거요”


 “아”


 “내가 그랬잖아요. 바다보고 싶다고. 오랜만에 모자끼리 일광욕도 좀 하고. 동해바다로 지는 석양도 보고. 그러려고 가는 길이었는데”


 “그랬지”


 “그런데 이제와 얘기해봐야 어쩌겠어요. 그냥 이럴 팔자였겠죠. 언젠가는”


 “굳이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해도 돼”


 “억지로 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이렇게라도 받아들이려는 것뿐이에요”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멋쩍은 기분에 얼굴을 왼쪽으로 돌렸다. 병실의 콘크리트 벽면이 있는 방향이었다. 별안간 떠오르는 게 있어 말을 물었다. 

“아. 전에 얘기했던 건 어떻게 됐어요? 창가자리로 옮겨달라고 한 거”


 “자리가 나면 바로 바꿔주겠대. 그런데 꽤 오래 걸리겠더라. 창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기 입원자들이라니까”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두 달은 있어야 한다더라”


 “그럼 옮겨봤자 아무 소용도 없잖아요. 그땐 아무 것도 안 보일텐데”


 “다시 얘기를 해볼게. 사정을 말하면 어떻게……”


 “됐어요, 됐어. 어차피 지금도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다 필요 없는 짓이야. 그럼. 그렇고말고” 나는 아예 몸을 벽 쪽으로 틀었다. 그날은 그렇게 모로 누워 잠에 들었다. 


 이상한 꿈을 꿨다. 나와 엄마가 석양이 지는 해변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태양은 저 멀리 수평선 뒤로 넘어갔고, 옅게 피어오르는 홍염위로 땅거미가 가라앉으며 힘을 겨뤘다. 와중에 해를 삼킨 바다는 진한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또 잔잔하게 흔들리면서 마지막 불꽃을 반사시키는데, 한가을 들녘처럼 샛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땐 흐릿한 흰색 도화지, 아니, 천장뿐이었다.


 어떤 추억은 너무 아름다워서 지금을 아프게 한다. 일찍이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엄마는 매년 가을마다 동해바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작은 어촌에는 값비싼 횟집이 꼭 한 군데는 있었다. 거기서 나는 회덮밥 한 그릇을, 엄마는 막걸리 한 병을 싹 비우고 나오는데, 그즈음 탁 트인 바다위로 우거지는 일몰이 장관이었다. 내가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가고, 또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부터는 다 옛날 일이 돼버렸지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어쩌면 내가 실명해가는 것이 응당 받아야할 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멀어진 시간이며 행복을 되돌릴 수 있다는, 그런 오만에 빠져 소중한 매일을 흘려보냈다. 순리대로 살지 못한 대가가 시력일 줄은 몰랐다. 하기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라는 노래가사도 있었는데.


 뼈저린 반성과 간절한 바람이 시력을 회복시키는, 그런 엿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거의 하루 종일을 잠으로 때웠다. 너무 많이 잔 나머지 잠이 오질 않으면 그냥 눈감고 자는 체라도 했다. 그래야 엄마도 간호사도 귀찮게 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덜컹덜컹 소리가 나고, 어떨 땐 몸이 들렸다 놓이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자고 있었다. 그날따라 몸이 나른하게 뻗었기 때문에. 열 시간이든 스무 시간이든 그대로 더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예 잠에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눈을 떠도 감은 것과 별 다를 바가 없는데. 영원히 잠들어버리는 쪽이 차라리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건 알았다. 다만 잠에서 깨 눈을 떴을 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 바다가 있었던 것이다. 무척 희미하긴 해도,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래전 마주했던 그 바닷가였다. 거뭇거뭇한 하늘. 층으로 쌓인 노을. 그 아래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주황색 바다까지. 내가 꿈꾸고 추억하던 그 색깔 그대로였다.


 “어때, 놀랐니?” 내 머리맡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색 예쁘지? 알아볼 수 있겠어?”


 “응. 다 보여. 완전히 똑같아…… 어떻게 된 거야? 창가자리로는 못 옮긴다며? 어떻게 바다가 여기 있을 수 있지?”


 “응. 아무래도 자리는 옮길 수가 없다 그래서”


 “병원이라도 옮긴 거야?”


 “……그렇게 됐어. 이왕 옮기는 거 바닷가에 있는 병원으로 와버렸지. 마음에 드니?”


 “너무, 너무 마음에 들어. 정말로…… 고마워…… 엄마?”


 “응”


 “여긴 몇 인실이야? 아주 조용한데”


 “1인실이야. 여기 병원은 다 1인실이거든”


 “우와, 정말?”


 “그럼. 정말이고 말고”


 “엄마, 나는 엄마 같은 엄마를 둬서 정말 행복한 거 같아. 그치……”


 “……나도 우리 혁이 같은 아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


 “아. 그렇게 잤는데도 잠이 오네…… 요즘 들어 부쩍 잠이 많아 졌나봐”


 “그럴 수도 있지. 몸이 안 좋아져서 그런 걸 거야. 피곤하면 다시 자도 돼. 자는 게 잘못은 아니니까”


 “그럼 다시 잘래. 여기 바다가 너무 아름답긴 하지만……”


 “……맞아. 너무 아름답지”


 “너무 선명해서, 꿈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 엄마가 되물었다. 


 “……” 혁이는 대답이 없었다.


 “……자니?” 엄마가 다시 물었다.


 “……” 혁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부터 갑작스런 뇌손상으로 중태에 빠진 혁이는, 장장 일곱 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마치고 나왔다. 성공확률이 3할도 안 되는 수술이었다. 


 “운 좋게 의식을 되찾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집도의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수술을 요청했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살려만 달라고 애걸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병원 측의 동의를 얻어 간신히 창문이 있는 회복실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 한복판에 있는 병원이었다. 창밖의 풍경이라고 해봤자 칙칙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무던히 궁리하던 엄마는 금방 2절 도화지 한 장을 구해왔다. 그러고 나서 커다란 페인트 붓으로 색을 칠했다. 아래는 주황색, 위로는 짙은 파란색. 두 색이 만나는 중간 부분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색을 섞어 칠했다. 


 빈 곳 하나 없이 다 칠해놓고 보니 그만큼 억척스러운 그림도 없었다. 언뜻 보면 로스코의 그림 같기도 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색밖에 구분할 수 없으니까. 나머지 자세한 부분은 기억이 완성시킬 것이었다. 


 엄마는 완성한 그림을 천장에 매달아 붙였다. 떨어지지 않게 노끈으로 고정했지만, 어디에선지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도화지가 사방으로 꿈틀거렸다. 혁이 입장에선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질 것 같았다. 


 혁이는 저녁 무렵이 돼서야 회복실로 옮겨졌다. 준비는 오래전에 끝난 상태였다. 엄마는 누워있는 아들의 머리맡에서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정신을 차린 혁이는 삼 분도 안 돼서 눈을 감았다. 추억에 잠긴 채, 그대로 잠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노스탤지어>, 2019. 10




<노스탤지어>




 'JaDy' 님이 값을 미리 치러 주신 덕분에 이 글과 그림을 작업하고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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