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 태어난 게 잘못은 아닌데 (8)

다른 건 신경쓰지말고 공부만 하랬으면서

by 이묵돌

신림동(정확히는 대학동)에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도 6년째에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저렴한 밥값이며 임대료 같은 것들에 이끌려 온 거였는데, 어느덧 내겐 두 번째 고향 같은 곳이 돼버렸다. 관악구와 신림동에 대해 치안이 좋지 않다거나 인심이 흉흉하다는 인식이 있긴 하지만 막상 살아보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네이기도 하다. 가끔 도림천에서 신원미상의 변사체가 나오거나 하는 일은 있지만…… 정말 가끔일 뿐이다.


관악구는 서울 내에서도 인구가 제법 되는 행정구다. 다만 내가 사는 대학동만큼은 사법고시가 폐지된 뒤부터 부쩍 사람이 줄어드는 추세다.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고시촌의 이미지는 다소 희미해졌다. 여전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붐비는 노량진과 비교하자면, 신림동은 주말에조차 쓸쓸한 느낌이 있다.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많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아무렇지 않게 오르는 연두색 버스,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지나치는 서울대학교 정문이며 고시촌 저 너머로 보이는 관악산 연주대 또는 헐렁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동네를 배회하는 고시생들의 모습까지. 시간이 지나 거의 모든 게 익숙해졌음에도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감각이 있다. 이건 뭐라 말로 설명하기가 복잡한 개념이다. 굳이 말하자면 위화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등학생이었을 당시 나는 교과과목 중에서도 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집이 가난해 가진 것도 없었는데. 로렌츠 곡선이네 지니계수네 하는 걸 보고 듣다 보면 나나 우리 엄마가 매일같이 겪고 있는 문제들 따위 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세상 우울할 때도 '어차피 우리는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존재들이야' 하고 생각하면 오히려 웃음이 나오듯이 말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이 힘겨울 때, 와 닿지도 않는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는 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지구과학도 좋아했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던 밤하늘에, 알고 보면 우리가 못 보는 별들이 빼곡하다니. 재밌지 않은가.


하여간 경제과목에서 나오는 개념 가운데 비교우위론이라는 게 있다. 다른 나라 간의 무역이 이뤄지는 원리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절대적인 생산력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특정 재화를 생산하는데 드는 기회비용은 제각각이므로 국제무역시장이 성립한다는 건데…… 요컨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걸 찾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땅에서도 오렌지 농사가 가능하기야 하지만, 굳이 머나먼 캘리포니아에서 수입해오는 것처럼 말이다. 한반도의 지형이나 넓이를 고려해보자면 아무리 투자해봐야 미국에서 수입해오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여간 이런 비교우위의 개념을 국가가 아닌 '세대'에 대입해 생각해보면 이렇다. 중장년층이라고 물리적 노동을 못할 건 아니지만, 아무렴 체력적으로 봤을 때 젊은 사람들보다야 못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육체노동에 있어선 청년층 쪽에 명백한 비교우위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고시촌만큼 비효율적이고 기형적인 구조도 달리 없다. 여기서는 청년들이 학원과 독서실에 틀어박혀 펜을 굴리고 있는 반면 식당이나 배달 그리고 카페 운영이며 세탁소와 할인마트 재고관리에 이르기까지 물리적인 부담이 제법 큰 일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대학동 고시촌에서 가장 고된 물리적 노동을 하시는 분은 빈 박스와 파지를 수거하시는 할머니다. 할머니는 연휴도 주말도 없이 1년 365일 쉬지도 않고 골목 구석구석으로 리어카를 끌고 다니시는데, 춘추가 올해로 팔순이 되셨다고 했다. 물론 세상 몸 힘든 일을 젊은 사람이 다 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늙은 개가 새로운 재주를 배우기 힘들다는 말도 있듯 공부든 뭐든 젊어서 쌓아놓는 쪽이 진짜 비교우위일 수도 있다. 다만 그 할머니가 당신 몸집보다 몇 배는 큰 수레를 끌고 다니고, 하얗게 샌 머리에 얼굴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주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가운데 책상과 의자에 달라붙어 옴짝달싹 않는 우리 세대를 번갈아 보다 보면 참 복잡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집 근처 5분 거리에 자주 찾는 분식집이 있었다. 그 식당을 운영하는 중년의 부부에게는 젊은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는데, 현지에서 다니던 학교를 한참 전에 그만두고도 돌아올 기미가 없다는 모양이었다.


"취직을 할 것 같지는 않아요. 내가 봤을 땐" 주방에 있던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다른 공부를 할 생각이라는데 뭘 할 거라고 정확하게 얘기해주는 것도 없고. 답답하죠. 엄마 된 입장에서는"


-


2019년 6월, 해당 브런치북 연재분이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실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글을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





이전 07화90년대에 태어난 게 잘못은 아닌데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