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내 인생 대신 살아주는 건 아니잖아요
'부캐'는 온라인 게이머들 사이에 흔히 쓰이는 용어다. '부(副, 버금 부) 캐릭터'를 줄인 것인데, 주로 롤플레잉 게임에서 맨 처음 키운 '본캐'를 어느 정도 육성한 뒤에 새로 만든 계정을 일컫는다. 가만 보면 잘 이해는 안 되는 행동이다. 게임 속 캐릭터는 게이머에게 있어 일종의 분신이다. 언뜻 생각하기로는 처음 만들었던 캐릭터에 애착을 갖고 쭉 플레이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어떤 게임에서의 첫 캐릭터들은 '본캐'임과 동시에 '망한 캐릭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 어떤 게임을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그 세계에서의 실수와 그 실수들로 말미암은 거의 모든 시행착오들을 '첫 번째 캐릭터'를 통해 겪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법사가 제일 유망한 직업인 줄 모르고 전사를 선택했다거나, 어떤 구간에서 꼭 수행했어야 할 퀘스트를 빼먹어서 진행이 마구잡이로 꼬인다거나, 힘이 중요한 직업을 선택해놓곤 지능에 스탯을 낭비한다거나, 유용한 스킬 대신 활용도 낮은 기술에만 잔뜩 투자했다거나, 아니면 닉네임을 '여고생스타킹' 따위로 지어버려서 정상적인 플레이에 여러 애로사항이 발생한다거나 하는 일들까지.
처음 접하는 게임에서 이런 실수들을 저지르는 건 무척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구에게나 첫 경험이란 어설프고 허점투성이인 법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본캐로 어느 정도 세계에 대한 이해를 끝마친 뒤에 새로 만드는 캐릭터, 즉 부캐를 키울 때는 처음부터 아주 심혈을 기울여 진로를 결정하곤 한다. 초반에는 어디서 어떻게 성장해야 하고, 어떤 스탯을 찍어서 어떤 직업으로 전직해야 하고,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아이템을 입수해 유리한 환경을 만들지를 계산해놓는 것이다. 첫 캐릭터로서 경험해야 했던 온갖 헛고생, 스트레스, 불이익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끔 말이다.
다만 현실은 게임과 다르다. 태어나 성장하면서 온갖 실수를 저지르며 어른이 되는 것까지는 똑같지만,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 '부캐'를 만들 수 없다. 살다 보면 전생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불교와 힌두교 같은 종교에서는 환생의 개념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 말대로 정말 윤회라는 게 실존해서 2회 차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지금의 이 삶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긴다. 죽어본 경험이나 기억이 없는 우리로선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녀를 낳으면 그게 부캐 아니냐고? 세상에 어느 부캐가 자아를 갖고 제멋대로 움직이는가? 자녀는 부모의 서브 캐릭터가 아니다. 그저 의도치 않게 게임을 시작해버린, 한 명의 또 다른 유저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슬하의 자식을 자신의 부캐쯤으로 생각하는 케이스는 매우 흔한 것같아 보인다. 부모들은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생각 없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서' '명문대에 가지 못해서' '형편없는 배우자를 만나서' '미리 목돈을 마련해놓지 않아서' 겪어야 했던 고통과 후회들을 자식 세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으며, 한편으로는 '나도 기회만 있었다면 충분히 잘할 수 있었다'는 명제를 자식의 성공을 통해 증명받고자 한다. 이미 고꾸라졌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행복 대신에, 나와 닮은 자녀를 아바타 삼아 제2의 삶을 이룩하려 애쓴다. 헬리콥터 엄마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뭇 부모들이 자식 더러 '다 너 잘 되라고 이러는 거야'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모두 이런 심리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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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해당 브런치북 연재분이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실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글을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