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 태어난 게 잘못은 아닌데 (11)

불공평해도 공평하다는 거짓말은 하지 말았어야죠

by 이묵돌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집안 사정으로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갔던 나는 일주일도 안 돼 사고를 쳤다. 사실 내가 정말로 사고를 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때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날 더러 '네가 사고를 쳤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학기 절반이 지나갈 즈음 전학을 왔던 나는 교실 맨 뒤에 있는 자리를 배정받았다. 사흘 째 되던 날, 아침 조회 시간이 끝나자마자 내 자리로 와서 말을 거는 친구가 있었다. 반장이었다. 반장은 나보고 오늘 하루만 자리를 바꿔줄 수 없겠느냐고 했다. 반장의 자리는 맨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있었다. 나는 잠깐 어리둥절해서 '이 반은 자리를 자유롭게 바꿔도 선생님께 혼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오길래, 나는 못 들어줄 부탁도 아니다 싶어 선뜻 자리를 바꿔줬다.


사건은 바로 다음 시간부터 벌어졌다. 반장의 자리가 바뀐 걸 알아챈 선생님이 '왜 네가 거기에 있느냐'고 물었다. 반장은 '얼마 전에 온 전학생이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해서 바꿔줬다'고 대답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먼저 바꿔달라고 한 건 내가 아닌데? 게다가 당시엔 눈이 나쁜 편도 아니었다. 선생님이 사실이냐고 묻기에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내 자리는 원래대로 되돌아갔고, 반장과 나는 수업이 끝나는 대로 나란히 교무실에 끌려가 추궁받았다.


"둘 중 한 명은 거짓말하고 있는 건데. 똑바로 얘기 안 해?" 선생님이 잔뜩 험상궂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실제로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전 진짜 아니에요" 반장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정말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흘겨보면서, 완벽한 연기를 했다.


"저, 저도 아니에요. 저는……" 나는 감정이 복받친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꼭 뭔가를 잘못한 아이들이 서툰 거짓말을 내놓는 모양새였다. "전…… 아니에요. 반장이 먼저 바꾸자고, 저한테 그, 그랬어요. 정말이에요……"


선생님은 뭔가 알아챘다는 듯 반장에게 먼저 교실로 올라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반장이 교실에 걸어 올라가는 동안, 선생님은 내게 몇 번이고 '정말 안 했어? 거짓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라고 물었다. 나는 계속해서 안 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돌연 내게 집전화번호를 묻어보더니, 문답무용으로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다가 전화를 받은 엄마는 그날 수업이 마치는 시간에 맞춰 학교 교무실에 오기로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교실 뒷문을 슬며시 열고 들어오는데, 어쩐지 따가운 시선 같은 게 느껴졌다. 반장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명백한 적의였다. 방금 전까지 화가 나있었는데, 반장의 눈빛을 마주하자마자 퍽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쉬는 시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머잖아 현실이 됐다. 반장은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 충분히 멀어지기 무섭게 내 자리로 걸어 다가왔다. 그러곤 말 한마디 없이 손을 들어 내 따귀를 때렸다. 왼쪽 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술에 취한 엄마에게 꽤 많이 두들겨 맞긴 했지만, 뺨을 맞은 건 살면서 그때가 처음이었다. 반장은 상황 파악이 안 돼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를 깔아보더니, 멱살을 싸잡고 내 배를 차서 밀었다. 나는 뒤로 넘어지는 의자와 함께 교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필이면 걷어 차인 곳이 명치라 숨이 턱턱 막혔다.


"야, 참아, 참으라니까……"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반장을 만류했다. 반장은 다가와 나를 걷어찰 것 같은 기세였는데, 주위로 학급 아이들이 열 명쯤 모여들자 "아, 씨발놈이!" 하고 중얼거리곤 교실을 걸어 나갔다. 바닥에 쓰러진 나는 한동안 배를 부여잡고 컥컥, 거렸다. 또래 친구에게 그렇게 맞아본 건 난생 최초였다. 몸집이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다가와 "괜찮아? 숨 쉴 수 있어?" 하고 말을 걸었다. 또 누구는 반장이 너한테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데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몰랐으니까.


하교시간이 돼서 교무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까 날 두들겨 팼던 반장이 친구 여러 명을 곁에 두고 웃고 떠들며 학원에 가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은 교무실에 도착한 나를 몇 초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처음 한 말이, "야, 너 저기 가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였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벌을 섰다. 엄마는 그로부터 오 분쯤 지나서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추레한 옷차림이었다. 자고 일어난 머리는 헝클어진 그대로였다. 흔히들 '학부모'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모습과는 분명 달랐다.


곧 선생님은 엄마와 마주 앉아 짧은 면담을 시작했다. 엄마는 거의 선생님의 말을 듣기만 할 뿐이었는데, 내용인 즉 대략 이랬다. '내가 교사 생활이 십 년이 다 돼 가는데, 전학 오자마자 이런 식인 학생은 처음 봤다. 이전 학교에서 어떤 문제로 전학을 온 거냐. 이런 건 가정에서부터 교육에 신경 쓰셔야 한다. 성적은 좋지 않더라도 인성은 좋은 아이로 키워내자는 게 내 교육 철학인데, 지금 반장은 아주 모범적이고 성적도 좋고 친구들에게 항상 웃으며 대하는 친구다. 전학 오자마자 사고를 낸 친구가 하필 반장일 수가 있냐. 어머니도 학부모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분인데, 이런 사건이 한 번 더 벌어지면 부모님끼리 대면을 시켜드릴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 보다 적극적인 지도편달을 부탁드린다……'


엄마는 선생님의 말에 '예, 예' 하고 소처럼 대답했다. 그리고 면담이 끝나는 대로 날 집으로 데려가서는, 옷을 몽땅 벗긴 뒤 파리채 뒷부분으로 난도질하듯 내 몸 구석구석을 때렸다. 나는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렇겠다고, 눈물을 질질 흘리며 엎드려 빌었다. 엄마는 내게 '뭘 잘못한 거 같으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기 무섭게 매질이 날아왔다. 난 끝끝내 거짓말을 한 게 잘못됐다고, 두 번 다시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고함치듯이 대답했다.


그날 밤 엄마는 소주 한 병을 혼자 다 마시고, 누워 잠든 척하는 내게 다가와서 매 맞은 자국에다가 일일이 연고를 펴 발라줬다. 당시의 3학년 2학기는 열 살배기 아이에게도 참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다행히 4학년이 되고 나서는 두 번 다시 그 반장과 마주치지 않았는데, 듣자 하니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미국이 참 고마웠던 것 같다. 실제론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잘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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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해당 브런치북 연재분이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실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글을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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