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 태어난 게 잘못은 아닌데 (13)

이미 정해진 주인공들의 사회

by 이묵돌


언제부터였을까? 아침 뉴스에서 '입시비리' 또는 '취업비리' 같은 보도가 나오는 것이 익숙해지고, '어차피 될 놈은 어떻게든 된다니까'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게 된 것이. 어디든 개인 의견이라는 건 있겠지만, 요 몇 년 들어 부쩍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건 대체로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제와 입시나 취업 같은 '기회 상의 불공정성'이 문제시된다는 게 새삼스럽다. 아니. 그동안 진짜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린 기사 댓글과 뉴스 보도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이지 기가 찰 때도 있다. 여태껏 산타가 있는 줄 알았던 사람이 어느 날 '사실 산타는 없어'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구니까. 적어도 나는 우리 사회가 가진 불공평이나 그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공공연 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애들도 알고 있는 걸 왜 어른들은 잘 모르고 있을까?


막말로 길가 지나가는 중고등학생 아무나 붙잡고 질문해보라. 너희가 과연 공평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 같으냐고. 과연 무슨 대답이 나올 것 같은가? 그야 모든 학생이 똑같은 대답을 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네. 저희는 동일한 조건과 환경에서 경쟁하고 있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남들보다 뛰어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라는 대답이 나오리라고는 좀처럼 기대가 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이런 대답을 하는 친구가 있더라도, 나는 진심으로 마음이 아플 것 같다. 그렇게 말하는 학생에게 지금의 어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세상은 자질구레한 불공평으로 가득 차 있단다. 니가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게 아니면 웬만큼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곳이 있어'라고 말할 것인가? 난 못한다. 결국에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거대한 배신감으로 되돌아올 그런 종류의 거짓말 말이다.


공부라는 건 신분상승을 위한 마지막 수단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주어지는 기회도 아니다. 학력고사와 수능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방향이었느냐, 그럼 보다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선 어떻게 개선해야 하겠느냐, 나는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단지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경험하고 관찰했던 우리 시대의 교육은 공정하지 않았다. 최종 결과에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 노골적인 입시, 취업비리 같은―을 모두 제외하더라도 그렇다.


제도적으로는 폐지된 지 백 년이 넘었다.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다. 분명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다를 바 없다. 여전히 기회는 공정하지 않고,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덜 노골적으로, 좀 더 합리화하기 좋은 방식으로 흐리멍덩해졌을 뿐이다. 나아진 건 승자의 논리뿐이다. '너희들에게도 기회가 없진 않았잖아' '우리도 너희와 거의 동일한 환경에 있었어' '운 좋게 타고 난 게 아니라 너희보다 훨씬 더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야' 같은.




내가 다녔던 학교는 지방의 평범한 평준화 고교였다. 과거에는 명문 고등학교로서 제법 유명했던 모양이지만, 내가 진학했을 무렵엔 모든 게 과거의 영광으로 전락해버린 뒤였다. 주변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들과 줄을 세우자면 딱 중간쯤의 성적이 나왔다. 다만 내가 기수는 꽤 성적이 좋았는지, 졸업할 당시 '축) 서울대 9명 합격' 같은 현수막이 학교 정문에 내걸리기도 했다. 하기야 평준화 고교에서 한 기수에 서울대 합격자가 열 명 가까이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내 학창 시절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초등학교 때에는 공부를 잘했고(누군들 안 그랬겠냐만), 중학교 때에는 그냥 평범했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시점에는 별 볼 일 없었다. 우리 땐 수학과 영어 과목에 한해 A, B, C 등으로 나눠 수준별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난 당연하게 D반에 들어가 앉았다. 내 성적은 2년간 제자리걸음을 쳤고, 삼 학년이 된 이후에서나 A반에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나라고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못 하고 싶어서 못 하는 사람은 없다. 더욱이 삶이 팍팍했던 우리 집으로선 공부만이 유일한 살 길처럼 느껴지던 시기도 있었다. 또 엄마는 내게 '더울 때 시원한 데서 일하고, 추울 때 따뜻한 데서 일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하곤 했다. 물론 입시나 학교 성적에 대해 알고 있거나 가르쳐 준 건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엄마가 알고 있던 건 그저 부모님 세대에도 쓰였던 '수우미양가'와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된다'는 사실 정도였다. '수'나 '우'를 받아가면 좋아했고, '양'이나 '가'를 받아가면 화를 내셨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 '미' 이하의 성적을 받아오는 빈도가 잦아지고 나서부턴 칭찬은커녕 '넌 군대 가서 말뚝 박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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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해당 브런치북 연재분이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실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글을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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