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나 아이돌 아니면 유튜브 밖에 없어서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성격도 워낙 괴이한 데다 많은 친구를 사귈 만큼 사교적인 인간도 못 된다. 굳이 변명하자면 좁고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편이라고 해두겠다. 최근 들어 꾸준히 교류하고 있는 한 친구는 판타지 소설 작가인데, 나와 장르는 달라도 자기 분야에서 제법 인정을 받고 있다. 한 번은 만나서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너는 판타지 소설을 쓸 생각이 없느냐'고 묻기에, 나는 "내가 무슨, 판타지 소설은 개나 소나 쓰냐?"라고 대답했다.
"어. 원리만 알면 개나 소나 못 쓸 것도 없지" 친구가 대꾸했다.
"원리라고?"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창작활동에 '원리'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 내게는 어쩐지 생소하게 느껴졌다. "판타지 소설 쓰는데 무슨 원리가 있어서?"
"무조건 '성장형 주인공'을 넣으면 돼. 물론 요령이 생기기 까진 꽤 시간이 걸리지만, '사람들이 그 주인공에 이입하게 만들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 준다'는 기본 틀은 변하지 않아. 그다음에는 컨셉과 기획의 싸움이지"라고, 친구는 마치 준비라도 해온 것처럼 술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야 잘 모르는 분야였지만 듣고 보니 무작정 틀렸다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없었거니와 대체로 일리 있는 의견이었다.
"정말 그럴듯한데" 내가 말했다.
"그래서. 할래, 말래?" 친구가 재차 물었지만,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안 한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술을 마실 뿐이었다. 표면상의 이유는 '내가 그 분야로 간다고 한들 너만큼 잘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때 '잘 나가는 판타지 소설'의 원리를 설명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불현듯 슬픈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어째서일까? 정말이지 가능성이 있는 선택지였다. 오히려 판타지에 가까운 건 '내가 쓰고 싶은 글로 출판 시장에서 밥 벌어먹고살아보겠다'는 내 생각 아닌가. 요즘 같은 세상에 내가 쓰는 글 따위를 누가 읽겠냐고. 시대착오적으로 길고 우울하며 근본도 없이 제멋대로인 인간을 어느 누가 작가로 보겠냐고. 차라리 장르소설 지망생이 돼서 미래를 준비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친구의 제안을 거절했던 이유는, 그야말로 '슬퍼서'였다. 당최 나는 뭐가 그리 슬프단 말인가? 남들은 다 힘들어도 참고 산다. 또 꿋꿋하게 버티며 웃고 산다. 하지만 슬픈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게 슬펐다. 당장에 돈 한 푼 없어 친구의 돈까지 빌려 술을 먹는 내 처지, 날 걱정해 그런 제안을 해오는 친구의 말, 밥 한 숟갈 떠먹여 주지 못하는 신념, 또 마찬가지로 못난 내 글이나 그 앞의 보이지 않는 미래며, 소설 속 주인공이 돼서라도 이루고 싶은 우리 시대의 꿈과, 그리도 단순한 욕구 때문에 생겨버린 거대한 시장까지. 어느 것 하나 슬프지 않은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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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해당 브런치북 연재분이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실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글을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