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바다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어젯밤에는 보이지 않았던 경포호 위로 안개가 자욱하다. 시간은 아홉 시도 되지 않았다. 꽤 깊게 잠든 것 같았는데 일찍 일어났다. 열다섯 시간을 자고도 개운하지 않던 아침이 있었는데. 난 옷가지를 챙겨 입고, 숙소 앞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왔다. 한 끼 식사처럼 나온 오트밀이었다. 숙소에 구비된 전기포트로 물을 데워 붓기만 하면 완성. 비록 맛은 밋밋하지만 오랫동안 허기 없이 지낼 수 있다. 물론 일어나자마자 끼니를 챙긴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약을 먹기 위해서였다. 식사를 하지 않고 항우울제를 먹으면 각성효과가 한 번에 왔다가 금방 방전돼버린다. 그래. 정말 열심히 일할 땐, 매일 이런 아침식사를 했었다. 나는 오래된 일인 양 떠올리는 내가 웃겼다.
약을 먹고 방안 의자에 앉아 글을 썼다. 지난 며칠사이에 진전이 꽤 있었다. 가장 큰 수확은 얼개가 완성된 것이었다. 돌아다니며 놀기만 한줄 알았더니. 이젠 정말 살을 붙이기만 하면 된다. 뼈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은 쉽다. 여기서부터는 창작보다 물리적 노동의 영역에 가깝다. 어디보자. 삼십일일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모두 쓰려면…… 계산상 하루에 이 만자 정도 쓰면 되네. 하루에 원고지 백 장만 쓰면 되는구나.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도 잠은 다 잤군.
하루에 이만 자가 많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뭘 써야할지 정해져 있지 않아서다. 얼개가 짜인 이상 어려운 것은 없다. 나는 얼개를 구체적으로 짜는 편이고, 이후의 과정은 차라리 받아쓰기에 가깝다. 분당 천 타에 달하는 나의 타자속도가 빛을 발할 때다. 나는 숙소부터 강릉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면서, 터미널에 도착해 표를 뽑고 대합실에서 기다리면서, 속초로 향하는 버스 안에 앉아서 계속 글을 썼다. 이렇게 쉬운 걸 왜 그동안 안했나 싶다. 마감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글쟁이는 우주에서 가장 효율적인 존재가 되는 것 같다.
속초에는 금방 도착했다. 뭐야,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나. 속초는 그냥 대도시였다. 세련된 터미널, 높은 아파트 단지들, 그리고 코인노래방. 숙소 가는 길에 코인노래방이 있으면 어쩔 수 없잖아. 숙소는 정해지지도 않았지만 왠지 그쪽 가는 방향에 있을 것 같았다. 확실했다. 나는 잠깐 들러 노래 네 곡만, 조지고 나온다는 게 여덟 곡이나 부르고 나왔다. 알게 모르게 쌓은 스트레스가 꽤 있었나 싶다. 아무튼 숙소(가 있을 것 같은) 방향으로 계속 걸으면서 휴대폰으로 글을 써댔다. 내가 맥북과 아이폰을 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동할 땐 모바일로 쓰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맥북으로 쓰던 곳부터 이어서 쭉 쓸 수 있다. 끊기지 않는 흐름, 리듬, 훌륭하다.
2019년 6월, <역마>가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아무렴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셨을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역마>를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