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역마 (16)

양구, 춘천

by 이묵돌

네 시간쯤 잤다. 꿈도 꾸지 않고, 이렇게 깊게 잠들기를 몇 밤씩이나 지속한 것은 참 오랜만이다. 호텔 창을 열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덜 지나간 새벽공기가 폐를 울린다. 난 문을 반쯤 열어놓고 의자에 앉아 글을 썼다. 한 시간 쯤 됐을 때 갑자기 경보 같은 게 울렸다. 화들짝 놀라서 보니 휴대폰 알람이었다. 내가 이렇게 늦게 일어나려고 했다니, 하고 알람을 끄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어제 조식뷔페까지 계산했었지.


IMG_5967 (편집됨).JPG 속초의 아침


뷔페는 그냥 무난한 호텔식 뷔페였다. 건방지게 들릴 순 있겠지만. 호텔에서 나오는 뷔페 음식이야 서울이든 춘천이든 거기서 거기다. 생각해보면 난 어느 뷔페를 가든 먹던 것만 먹는다. 일단 접시 하나 들고 샐러드부터 우겨넣는다. 그리곤 토스트에 버터 한 쪽 붙여서 올리고,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 한 잔 뽑아서 자리로 돌아온다. 그걸 먹고 나면…… 배부르다. 나머지는 그냥 보너스 스테이지다.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은. 보통 연어가 있으면 서너 조각을 덜어와 먹는 정도다. 누군가는 돈이 아깝다 하겠으나, 내 돈 내고 들어온 뷔페에서 뭘 어떻게 얼마나 먹든 내 맘이다. 어차피 투숙객이라 이십 프로 할인된 가격이었다.


IMG_5966 (편집됨).JPG 배부르다


나는 방으로 올라가 티비를 켰다. 컨퍼런스 파이널 칠 차전을 틀어놓고 노트북을 앞에 놨다. 무의마한 발악이었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 보는 농구 결승전이라니. 난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열두 시가 넘어서야 체크아웃 했다. 원래 체크아웃시간인 열한 시를 넘어서 추가비용까지 지불했다. 시발비용. 시발비용.


IMG_5973 (편집됨).JPG 너무 재밌다


휴대폰으로 글을 두드리면서, 속초시외버스터미널까지 삼십 분쯤 걸었다. 터미널은 새로 지어 세련된 티가 확 났다. 이것도 올림픽 효과일까. 난 어딘지도 모르는 지명들 사이에서 양구를 찾아냈다. 이유는 뭐, 당연히 가장 빠른 표였기 때문에. 나는 버스에 올라타서 또 다시 글을 두드렸다. 수십 키로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집중이 잘됐다. 오른편에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그림을 놔두고 쓰는 느낌이다. 가끔씩 고개를 돌려보면, 첩첩산중에 벌레와 새소리와 가드레일이 보이다 사라진다. 아무리 멋진 그림이라도 지나간 뒤에는 볼 수 없다. 다시 와서 본다 한들 예전 같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쉬움을 동력삼아 또 글을 썼다.







2019년 6월, <역마>가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아무렴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셨을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역마>를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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