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와수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음, 분명 소파위에서 잠든 것 같은데. 아마 중간에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가 침대에서 잔 것 같다. 그게 아니면 뭐, 초자연적현상이겠지. 소파위에는 자다 뱉어놓은 노트북. 마감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난 한 문장이라도 더 쓰고 씻겠노라고 객기를 부리다 한 시간 뒤에나 씻을 수 있었다. 아, 인간은 왜 샤워를 해야 하는 걸까. 그야 머리가 떡진 채로 돌아다니면 찝찝하니까 그렇지. 흠. 그런가. 머리 아래로 모텔 샴푸 냄새가 어려 온다.
무인텔 밖은 새가 내리쬐고 해가 지저귀는 언덕이었다. 왠지 들뜬 마음으로 내려가 걸었다. 터미널까지의 길은 대체로 차도 없고 적적한 거리였다. 시간이 아까워 글을 쓸 법도 했다. 춘천에 햇빛이 묻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흠, 마감은 아직 하루나 남았군. 터미널로 가는 길목 앞에는 풍물시장이 있었다. 생각 없이 스쳐지나가다가 칼국수 집을 지나쳤다. 메뉴에 보리밥, 오천 원, 이라고 돼있었다. 나는 드물게 발길을 돌려 가게로 들어갔다.
움직임이 굼뜬 할머니 한 분이 꾸리고 있는 가게였다. 나는, 어머니, 보리밥 하나 주시겠어요, 했다. 반응이 없어 다시 아주머니, 하니 옆에 앉아있던 손님이 거들었다. 할머니가 귀가 잘 안 들리세요, 그리고 보리밥은 그냥 옆에서 퍼다 먹으면 돼요. 나는, 아, 그렇군요, 하고 머쓱한 기분으로 밥통을 열었다. 핀잔을 들었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손님들이 그 가게와 할머니를 얼마나 아끼는지가 느껴졌다. 왠지 그랬다. 대접 같은 밥그릇에 보리밥을 한 공기 퍼 담았다. 그리고 옆에 늘어놓은 상추와 열무와 취나물과 콩나물과 고사리와 기타 이름을 알 수 없는 푸성귀들을 잔뜩 담고, 직접 담은 것 같은 고추장 한 숟가락과 참기름을 한소끔 둘러 자리에 앉았다.
그대로 퍽퍽 비비고 있으려니 할머니가 기척도 없이 다가와 물김치를 한 움큼 두고 갔다. 나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비비고 있던 보리밥에 물김치를 세 번 퍼 얹었다. 마침 물기가 없어 안 비벼지던 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숟갈. 맛있다. 밥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옆자리 앉은 손님이, 더 먹어도 돼요, 여기선 열 그릇 먹어도 괜찮아요, 했다. 난 웃으면서, 열 그릇 먹으면 배 터져 죽겠는데요, 하고 일어나 현금으로 계산하고 나왔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올 수 있을까 싶었다. 참 희귀한 기분이다.
2019년 6월, <역마>가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아무렴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셨을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역마>를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