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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Oct 08. 2018

역마 (完)

의정부, 서울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은 천장이었다. 나는 일어나 이불을 갰다. 커튼을 걷어 바깥을 맞이했다. 최후의 아침. 최후의 햇살이었다. 낡은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바닥에 뭘 발라놨는지, 발바닥에 끈적끈적한 것이 달라붙었다. 난 머리와 몸을 가볍게 씻고 나갈 채비를 했다. 이젠 정말 떠나야겠지. 떠남으로부터 떠나야겠지.     


침대가 무척 딱딱했다


 얄궂을 정도로 환한 대낮이었다. 와수리 터미널에 가기위해 큰 길로 나왔다. 쿵짝쿵짝, 정신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더랬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오늘부터였나. 제각기 다른 색의 유니폼들이 거리 위를 둥둥, 떠다녔다. 난 풍경처럼 바라보다 길을 재촉했다. 간신히 구색만 맞춘 터미널. 매표소 위의 시간표를 쭉 훑었다. 나는 의정부를 경유하는 남서울 행 노선을 찾았다. 표를 끊었는데 한 시간 반 정도가 붕 떴다. 난 터미널 맞은편 거리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시원한 라떼 한 잔을 주문해놓고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맑은 와수


 지난 이틀 동안 나무처럼 글이 자라났다. 부족한 잎을 피워내고, 잔가지를 쳐내는 작업이었다. 생각해보니 여태 내가 키웠던 식물은 얼마 안가 모두 죽었다. 물을 많이 줘도 죽고, 적게 줘도 죽고, 해가 내리쫴도 죽고, 비가 흠뻑 내려도 죽었다. 나는 그냥 뭔가를 키우는 것에 재능이 없었다. 그럼 글을 키우는 것은 뭐가 다른가. 내가 쓴 글은 곧 나 자신이었다. 바삐 움직이는 손짓너머로 서서히 내가 피어올랐다.     


의정부로 가는 표


 시계가 정오를 가리켰다. 나는 터미널로 돌아가 의정부행 버스에 올라탔다. 탈고가 눈앞이었다. 나는 줄줄 흘러내리는 문장을 닦아 올렸다. 엔진소리와, 의자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약간의 열기와, 가끔씩 덜컹, 하고 오르내리는 시속 백 키로의 직사각형 박스, 모든 것이 뇌리를 찔러댔다. 나는 글자의 바다를 유영했다. 시야가 돌아와 건물을 올려다보니 의정부버스터미널이었다.     


의정부시외버스터미널


 터미널을 빠져나와 십 분 정도를 걸었다. 눈을 돌리는 곳곳에 사람, 사람, 승용차와 건물…… 말이 의정부였지 서울을 떼다 붙인 듯 했다. 의정부 길가의 버스정류장에는 익숙한 전광판이 있었다. 버스번호와 도착예정시간을 알려주는, 서울에서 쓰는 것과 완전히 같은 전광판. 난 벌써 서울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나쁘다기 보단 그냥, 원치 않게 과속을 했다 싶었다. 난 칠십이-삼번 버스에 올라탔다. 가만히 타고 있으면 남서울까지 가는 버스에서, 굳이 경유지인 의정부에 들른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남서울터미널이 있는 서초까지 갔다간 동선이 꼬인다는 것과     


의정부 계열 평양냉면의 성지, 의정부 평양면옥


 평양냉면 때문이었다. 의정부 평양면옥은 의정부계 평양냉면의 뿌리가 되는 곳이다. 언젠가 가야겠다는 마음은 늘 있었다. 다만 관악구에서 단지 냉면 한 그릇을 위해, 북쪽으로 수십 킬로를 간다는 것이 심리적으로는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마침 북쪽에서 서울로 내려가는 길, 의정부를 경유하는 버스. 그냥 평양냉면을 먹으라는 계시였다. 어리석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의정부 평양면옥은 터미널에서 도보로 삼십 분, 버스로 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버스정류장이 눈앞에 있어 버스를 탔다. 얼마안가 벨을 누르고 내렸다. 건물이 우거진 와중에 적적한 동네였다. 지도앱을 체크하면서 면옥을 찾아갔다. 오래된 여관이 줄지어있는 골목 한 쪽에 가게가 있었다. 냉면집이 이만큼 안 어울리는 곳에 있기도 힘들다. 가게 앞에는 차 다섯 대가 빈틈없이 주차돼있었고, 입구에는 접시만두와 만두국을 계절메뉴로 바꿔서 지금은 팔지 않는다, 라는 문구가 있었다. 상관없다. 나는 면옥에 면을 먹으러 왔다.     






2019년 6월, <역마>가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아무렴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셨을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역마>를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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