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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Oct 08. 2018

역마 (ep.)

 집에 돌아왔다. 몸이 기억하는 비밀번호. 현관을 열고 들어갔다. 방문 앞에는 택배상자가 두개 쌓여있다. 내가 뭘 주문했더라. 일단은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뭐 대단한 거라고 침을 꿀꺽 삼켰다. 내 방은 십팔일의 공백에도 여전했다. 안락한 침대, 멀리 마중 나와 있는 의자와 팔걸이에 걸린 외투, 떠나기 직전 흩뿌려놓았던 옷들도 변함없이 그 자리였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남의 집에 온 듯 침대에 살짝 걸터앉았다. 적막한 놀이였다. 관두자싶어 침대에 드러누웠다. 내 몸 모양에 맞춰 푹 꺼지는 침대. 편안하다. 나는 그 상태로 잠깐 잠들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뻔한 이야기다. 나는 강연을 끝내고, 연세대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음악을 몇 곡 듣다가, 익숙한 신촌거리를 걸어 나와 로터리에 나오니 사람이 무척 많았다. 나는 현기증이 나서, 길을 건너자마자 택시를 잡아탔다. 오랜만에 보는 꽃담황토색 택시. 택시기사의 깔끔한 서울사투리. 아이구, 어디로 모실까요? 으음, 네, 신림동 쪽으로 가주세요, 미림여고 방향으로.     


 택시가 서울을 가로질렀다. 창밖으로 익숙했던 경치들이 줄지어 밀려들었다. 음, 나는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이로구나. 한강대교를 건너고, 상도터널을 지나, 동작과 관악을 구분 짓는 언덕을 넘으면 서울대입구, 한때 내가 만든 회사가 있었던. 곧 관악구청 오른편으로 나있는 길로 들어가면 쑥고개, 쑥고개를 넘으면 이제는 정말 집 근처다. 안녕! 빌어먹을 대학동. 내가 죽일듯 증오하고 또 사랑하는…….     


대학동


 나는 완전히 집 근처에 와놓고도,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전공서적과 시험교재를 늘어놓고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 오래된 진풍경이다. 나는 거기서 살짝 거리를 둔 곳에 앉아 노트북을 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원고가 다 끝났는데 또 글이라니. 음, 탈고라고 해서 완전히 탈고는 아니다. 자잘하게 더 들어갈 부분도 있고, 책에 들어갈 삽화에 대해서도 논의해야하고, 대충 정해놨던 책 제목을 그럴듯한 걸로 바꾸고, 책 날개 같은 곳에 들어갈 작가소개 같은 것도 다 써야한다. 물론 본문을 작성하는 것에 비하면 즐거우리만큼 편한 작업이다. 그래도 당장은, 글로서의 ‘역마’를 마무리해야지.     


 역마는 언제부터 글이 됐을까? 처음 시작할 땐 그냥 일기였는데. 나도 참 속물적인 글쓰기를 한다 싶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반항심의 발로였다. 나는 대외적으로 리뷰 콘텐츠를 쓰는 인간이다. 사람들이 내게 기억하고, 기대하는 것이라곤 드립과 뻘소리가 난무하는 리뷰일 뿐이다. 나는 리뷰 쓰는 일이 재미가 없어졌을 때도, 어느 순간부터는 딱히 ‘리뷰’라고 할 수 없는 것들만 써내기 시작했을 때도, 어느 정도 타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페이스북에 통하는 글이라곤 카드 형태의 가볍고 쉬운 글, 혹은 사람들 홀리기 쉬운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관점으로서의 글뿐이야. 내 글은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면 가치가 없고,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것도 아니니까…….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과 똑같은 말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다 무시하고 글을 써보기로 했다. 생각이 되는대로, 손이 가는대로 닥치는 대로 써서 올렸다. 자 봐라, 이게 내가 원래 쓰고 싶었던 글이야. 너희가 좋아할만한 얘기라곤 단 하나도 없지. 카드뉴스도 동영상도 아닌 수십 줄짜리 글 뭉텅이에 자극적인 제목도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찌질하게 도망 다니면서 한 생각과 행동에 대한 묘사뿐이야. 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명확한 결론이나 세 줄 요약도 없어. 이런 글, 읽기 싫어 죽겠지…… 관심도 없겠다. 하하.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내 생각과 표현에 대해 좋다, 재미있다, 더 써달라는 얘기와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쓰는 글이 가장 좋아 보인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참으로 속물이었다. 도망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약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우울함, 그리고 내 이런 감정에 대해 관심도 없는 사람들, 아니, 관심이 없어야할 사람들에 대한 비아냥으로 쓴 글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난 내가 쓴 글과 거기 달린 댓글을 몇 번이고 읽었다.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 두 번째 역마 글을 올린 뒤에, 나는 댓글을 보다가 무언가 복받쳐 올라 울고 말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2019년 6월, <역마>가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아무렴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셨을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역마>를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



책 구매하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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