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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Oct 16. 2019

습작

백열여섯번째

 “넌 믿겨져? 인류가 저 달까지 가봤다는 게” 다영은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시간이 늦어선지 탄천은 고즈넉했다. 가을 저녁의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폭 좁은 강가에서 풀잎이 비비적대는 소리가 뒤따라 들렸다. 산책하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이따금 길섶에 가로등이 놓였지만, 유난히 달빛이 밝아 아래가 침침해 보이는 그런 날이었다.     


 “……갑자기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윤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너도 혹시 그거냐? 달착륙 음모론자인가 뭔가 하는”     


 “음. 아니, 음모론까진 아닌데”     


 “중학교 때에도 배우는 거잖아. 교과서에서 나오지 않냐? 아니,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런 건 상식상……”

     

 “교과서에 나온다고 해서 다 진실인 건 아니야” 다영이 윤지의 말허리를 잘랐다. 고개는 여전히 환한 보름달을 향해 있었다.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들이 있긴 하잖아”      


 “하긴 그래”      


 “우리가 믿을 건 교과서밖에 없지…… 적어도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야” 윤지는 별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올려 보이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한 달만 더 믿으면 돼. 그치?”     


 “한 달이 아닐 수도 있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마”     


 “그냥 믿기질 않아서 그래” 다영이 말했다.     


 “뭐가? 수능이 한 달 남았다는 게?”     


 “아니. 달에 갔다는 거 말이야”     


 “아, 그 얘기야. 계속?”     


 “우리가 독서실에서 집까지 걸어가는데도 삼십 분이 걸리잖아”     


 “버스가 끊겼는데 그럼 어떡하라고?”     


 “어떻게 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나는……” 다영은 할 말을 잊어버린 것처럼 잠깐 동안 숨을 멈췄다가, 도로 말을 이었다. “사실인지가 궁금해. 우리가 정말 저렇게 먼 곳 까지 갈 수 있는 게 틀림없는 건지 말이야”     


 “그냥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되지, 뭘. 믿기 싫으면 안 믿으면 되는 거고. 다만 여러 가지 증거자료로 봤을 땐……”     


 “나도 믿고 싶어. 믿고 싶은데”     


 “……응?” 윤지는 돌연 이야기를 멈췄다.     


 “정말 그렇다고 믿을 수 있는 게 많은데도 믿기 어려울 때가 있어. 왜 그런지 생각을 해봤는데”     


 “응”      


 “상처받는 게 무서워서 그런 거야. 내가 볼 땐. 정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것만 믿다가, 그런 줄로만 알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게 다 사실이 아니라는 게 증명되면 어떡해? 내가 믿어온 모든 게 거짓이고, 뒤늦게 틀린 걸 알았지만 결과는 돌이킬 수 없잖아”     


 “다영아”     


 “그냥 나는 바보가 되기 싫은 거야. 그렇게 철썩 같이 믿었다가, 매일매일 그것만 바라보면서 살다가, 당장 내일 모든 게 무너져버려서 스스로가 바보취급 당하는 게 무서운 거라고”     


 “그런 건 당연한 거지. 믿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잘못은 아니지만, 상처는 돼. 정말 큰 상처야. 정말로…… 나는 아빠가 언젠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정말 그런 줄 알았단 말이야. 내가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꼭 돌아오겠다고 한 걸 정말 끝까지 믿었어. 고등학교 입학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교문에서 기다리고 서있었어. 할머니가 그렇게 가자고, 그냥 가자고 했는데도”     


 “아빠는 돌아오실 거야”     


 “그만해”     


 “그냥 연락이 오랫동안 안 될 뿐이지. 어떻게 됐는지 아직 모르잖아? 조금 늦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만하라니까!” 별안간 다영이 고함쳤다. 조용히 흐르는 탄천위로 다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스며들었다.    

  

 “……소리 지르지 마. 많이 늦었어” 윤지는 자못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차분하게 얘기해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미안해” 다영이 희번득 떴던 눈을 옷 소매로 훔쳐 닦았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     


 “괜찮아. 그만하라고 했는데 계속 말한 내 잘못이지”     


 “……”     


 “뭐 걱정되는 게 있어?”     


 “……우리 할머니 수술 있잖아” 다영이 한층 잠긴 듯한 소리로 말을 꺼냈다.      


 “응”     


 “성공할 확률이 팔십 퍼센트래”    

 

 “그래?”     


 “많이 진행되긴 했는데. 갑상선암은 암 중에서도 예후가 좋은 편이래. 웬만하면 성공할거라고…… 집도하는 의사선생님도 그쪽 전문인데 수술이 잘 안돼서 사망한 적은 없다고 들었어”     


 “정말 다행이다. 나도 걱정 많이 했었는데”     


 “근데 그걸 믿을 수가 없어. 그런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가 또 틀리면 어떡해? 또 배신당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럼 나는 정말 못 버틸 것 같단 말이야. 그럴 바에야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런 말 하지 마. 나랑 있을 땐 그런 말 안 하기로 했잖아?”     


 “그런데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야. 공부하면서도. 자습하면서도. 확률이나 통계 문제 하나를 풀 때도. 그 숫자들이 날 배신하는 상상을 끊임없이 해. 성공확률이 8할이면 실패할 확률도 2할인 거지. 난 항상 그렇게 배신당해왔어. 계속. 계속……” 그사이 다영은 목이 메여오는 모양이었다. “나라고 왜 안 믿고 싶겠어? 할머니가 항암치료까지 마치고 건강하게 병원에서 나왔으면 좋겠어. 내가 대학에 합격하면 기뻐하실 모습도 보고 싶어. 예전처럼 같이 여기 탄천 따라 계속 걸으면서, 풀이랑 새랑 벌레들 이름까지 하나하나 다시 물어보고 싶어. 그런데 이십 프로나 된 단 말이야. 내가 꼼짝없이 혼자가 될 확률이 이십 프로라고…… 우리 할머니 어떡해? 정말 돌아가시면 어떡해? 그런 생각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 팔십 프로의 확률로 건강하게 돌아오시면 좋은데, 그러다 또 상처받을까봐 나머지 이십 프로에 내 정신을 맞추고 있다는 걸 느꼈어. 무슨 소린지 알아? 내 마음 속에서는 이미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거야. 설령 이십 프로가 현실로 닥쳐오더라도 상처를 받지 않게끔 말이야. 믿지 않으면 배신당하지도 않으니까”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그게 잘못 된 건 아니야. 넌 너 나름대로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잖아”     


 “아냐. 잘못됐어.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아직 살아계신 우리 할머니를 죽은 사람 취급하고 있잖아…… 그깟 공부가 뭐라고? 혼자 애써가며 키워준 할머니를 그렇게 생각하는 주제에 대학은 가서 뭐해? 인성이 글러먹었는데. 나는 쓰레기야. 의사 같은 거 될 자격도 없고, 돼서도 안 되는 못 돼 처먹은 년이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래. 그렇지 않겠지…… 나도 알아! 내일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독서실에도 가고…… 한 달 뒤에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수능까지 치고 나오겠지…… 왜 그래야 하는 거지? 난 왜 그러는 거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응?”     


 “어차피 그래야하니까” 윤지는 덩달아 울먹거리고 있었다. 뒤로 껴안은 다영의 등줄기가 희미하게 떨렸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버텨야 하니까. 넌 바보가 아니야.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어린애지……”     


 “있지, 할머니는 아직도 자기 아들이 돌아올 거라고 믿어. 그게 너무 슬퍼. 아빠가 너무 미워.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      


 “할머니는 불쌍하지 않아. 다영아, 할머니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지 마”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잖아”     


 “나는 네 할머니가 믿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마 아빠가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진 않았을 거야. 외국에서 실종된 아빠가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지는 확률의 문제니까. 할머니 수술이 성공할지 말지도 마찬가지고……”  

   

 “안 믿었다고?”     


 “응. 믿기보단 그냥 간절히 바라셨던 거지. 희망하는 것과 무작정 믿는 건 비슷하지만 달라. 믿는 건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서 하는 일이지만, 희망하는 건 매일 조금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하는 거야”     


 “……그럴까? 정말 그럴까? 윤지가 하는 말이니까 믿어도 되겠지? 그치?” 다영은 불쑥 고개를 돌려 윤지의 눈가를 쳐다봤다.      


 “아니. 믿지 마” 윤지가 대답했다. “그냥 간절하게 바라기로만 하자. 달에 정말 착륙했다는 것도, 할머니 수술이 잘 끝나는 것도, 내가 지금 너한테 하는 말이 정말인지까지도. 모두 사실이 되길 바라. 진심으로”     


 두 사람은 말없이 개울가를 따라 걸었다. 십 분쯤 지나선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헤어졌다가, 다음날 학교에서 다시 만났다. 다만 그 뒤로 다영이 할머니나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없었다. 윤지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아이들에겐 절실히 바라는 것 이외의 숙제가 없었다.      


 수능이 끝나고 한 달이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달은 꼭 그날 밤처럼 동그랗게 찼다. 온통 캄캄한 가운데 달 주변의 구름들이 빛을 머금고 희끄무레 비쳐 보였다.     


 윤지가 빈소에 도착할 즈음, 대부분의 조문객들은 집에 돌아가고 없었다. 사진 속 다영의 할머니는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윤지는 영정을 향해 두 번 절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 곁에 서있던 상주와 최초의 악수를, 그 옆의 다영이와 적막한 포옹을 차례로 나눴다.      


 “와줘서 고마워” 다영이 말했다. “정말 네 말이 맞았어. 간절하게 바랐거든. 정말 편안히 가셨어. 활짝 웃으시면서.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니까”     


 윤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돌아온 상주와 다영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을 뿐이다. 


         

<Fly Me to the Moon>, 2019. 10




<Fly Me to the Moon>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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