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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Oct 20. 2019

습작

백열여덟번째

오후에 일어나 장을 보고

어묵 잔뜩 넣은 떡볶이 끓여주던 당신

잔뜩 취해 돌아온 새벽녘

물건을 던지고 책장을 무너트리던 당신     


이젠 기억도 안 나요

얼마나 고민하곤 했었는지

당신은 나쁜 사람일리 없지만

또 당신은 착한 사람일리도 없죠     


용서라니요?

한때 날 밀치고

밟아 짓이겼던 당신

이제와 뒤늦게 용서라니요     


아니 사실 용서라는 것은

자격도 필요도 없었죠

단지 이해할 뿐예요

한때 구름 같았던 당신     


멀리와 보니 단 한 명

슬퍼빠진 사람이었단 걸

매일 나약하고 서글픈 마음으로

빗방울 떨어트리곤 했었다는 걸     


살다보면 어떤 슬픔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요

뼈가 붙고 살이 아물어

언젠가 웃으며 걷게 되더라도     


몹쓸 흉터 떨리는 손가락은

어찌할 방도가 없겠죠

그저 생각할 뿐예요

안주 하나 없이 소주를 마시던 당신     


시고 오래된 김치 대신

세상 떠다니는 슬픔 한 점 집어 삼키며

삶보다 덜 쓴 술잔 따라 올리는

지금의 나라면 함께 슬퍼할 수도 있었을까요…….     



<어머니>, 2018. 11     





<구름같았던>



-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심소은' 님이 값을 미리 치러 주신 덕분에 이 글과 그림을 작업하고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그림이 걸린 방에는 방향제가 필요없다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작업도 후원하고, 당신만의 공간에 멋진 그림도 한 점 걸어두세요.  


아래 링크에서 다음 작업을 미리 후원해주시면, 이 작업을 더 오랫동안 지속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http://bit.ly/2MeKV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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