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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Oct 22. 2019

습작

백열아홉번째

 “어때, 여기 양념꼬막 괜찮지?” 친구가 물었다.      


 “어, 완전 술안주인데” 내가 대답했다.      


 “그치? 내가 여기 처음 온 게 작년 이맘때쯤이었거든. 그때는……”     


 친구는 그 양념꼬막집이 제 집 앞마당이라도 되는 것처럼 으쓱거렸다. 밉살스러운 표정도 오랜만에 보니 퍽 그리운 면이 있었다.      


 양철로 된 원형 테이블 위로 빈 소주병이 쌓여갔다. 금요일 밤은 자정으로 치달았다. 아직 이르다면 이른 시간대였다. 술자리 중간쯤 해서 나는 화장실을 한 번 다녀왔고, 습관처럼 마른세수하는 시늉을 했다. 눈두덩을 과장스럽게 올려 떴다.      


 불그스름한 얼굴 뒤로 포차의 풍경이 흐릿했다. 한층 더 시끌벅적해진 사람들의 말소리,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귓전에 울려 먹먹했다. 그 와중에도 친구는 계속해서 말을 잇고 있었다.     


 “……라고, 글쎄, 그 옷에 국물 좀 튀었다고 나한테 그렇게 화낼 일이냐고. 여자들 하나같이 그렇다니까. 안 그래? 아흔아홉 가지 잘해줘도 한 가지 못하면 성질이나 버럭 내고. 아주 지 멋대로야, 아주…… 야야, 너 듣고 있냐? 내 말 듣고 있어?”     


 “어, 어…… 니 여자 친구 얘기 아냐?” 나는 뒤늦게 목이 잠겼다는 걸 알았다. “흠, 흐흠, 아, 아…… 목에 뭐가 자꾸 걸리네. 흠……”     


 “넌 그때 걔 아직도 만나? 그 현대미술전공한다던”     


 “오래전에 헤어졌어”     


 “그래? 얼마나 됐는데?” 친구는 질문을 끝마치기 무섭게 잔을 들이켰다.      


 “한 이 년쯤 됐나”     


 “지금 만나는 다른 사람은 없고?”     


 “없어”     


 “연애할 생각이 없냐, 넌?” 

    

 “응. 없어”     


 “왜?”     


 “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에이, 그건 핑계야. 너도 알잖아?”     


 “핑계라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하기야 보는 사람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래? 난 그냥……” 친구는 당황한 눈치였다.      


 “아냐, 화 난 거 아니야. 미안” 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굳이 미안할 것 까진 없었는데. “사실은 어머니 때문에 그래”     


 “어머니가 왜?”     


 “위랑 폐가 안 좋아지셔서. 얼마 전에도 각혈을 하셨거든”     


 “아……”      


 “다행히 아직은 그렇게 심한 건 아니고. 재활 계속하고 큰 수술 몇 번 하면 된대. 그래서 회사는 그만둘 형편도 아니고. 가족이 나뿐인데 평일만 해도 간병인 인건비도 만만찮고. 뭐, 그런 상황이야……” 나는 중얼거리듯이 말을 끝맺었다.     


 “듣고 보니까 오히려 내가 미안하네”     


 “아냐. 알았으면 그렇게 얘길 안 했겠지”     


 “그거야 당연하지. 요즘 상태는 좀 어떠신데? 좋아지고 있어?”     


 “의사는 그렇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어. 밥을 거의 못 드시거든. 그나마 먹는 것도 반나절 안 돼서 다 토해내시고”     


 “그렇구나”     


 “나야 주말에나 옆에 있으니까 할 만한 편이야. 나보단 간병인 분이 고생이겠지. 수시로 토 올린 거 닦아주고, 피도 받아주고 그래야 하니까”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뭘. 니가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자, 한 잔 하자. 우울한 얘기 그만하고” 친구가 소주병을 기울여 내밀었다.     


 그러나 나는 잔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턱을 괸 자세로, 다소간 넋이 나간 얼굴로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아, 또 뭘 보고 있는 거야? 뭔데?” 곧 친구가 역정을 냈다. 그리고 내가 보던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지저분한 차림의 아주머니였다. 척 봐도 낡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키가 무척 작았다. 멀리서 어림잡더라도 백오십이 안 돼 보였다. 차라리 가까이 있었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지 모른다. 끽해야 가을에 접어든 지금 시기에 싸구려 목도리며 떡볶이 코트를 걸친 채 뒤뚱뒤뚱 돌아다니는 모습이 어떤 면에선 추하기까지 했다.      


 “아, 난 저런 거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친구가 불쑥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게 사장님도 저런 거 인정사정 봐주면 안 된다니까. 한 번 봐주기 시작하면 계속 온다고. 저렇게 인정에 호소하는 거 불편해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뭘” 나는 슬쩍 잔을 내밀어 술을 받았다.     


 “그건 그런데. 꼭 저런 걸로 먹고살아야 할 필요가 있느냔 말이야. 내 얘기는. 세상에 다른 일도 얼마나 많은데? 난 주말마다 저러는 사람들이랑, 길 돌아다니면서 찹쌀떡 파는 할아버지랑, 지하철에서 허리띠 같은 거 파는 아줌마들이 제일 이해 안 되더라. 하필이면 왜 그런 거냐고. 안 사면 왠지 나쁜 사람 되는 것 같잖아, 내가”     


 “그건 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안 사서 나쁜 사람 되는 게 어딨어. 마음이 동하면 사고, 아니면 안 사는 거지”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고. 그냥. 불편해 나는. 불편하다니까”     


 “자, 자. 알았어. 짠 하고 마시자. 괜히 딴 데 봤네, 내가. 죽을죄를 졌어, 아주……” 나는 어린애 달래듯 말하면서 잔을 부딪었다. 소주 모금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무섭게 알코올향이 치고 올라왔다. 얼굴표면이 달아올랐다. 거울을 보면 지금쯤 김을 모락모락 뿜고 있을 듯했다.      


 아주머니가 우리 테이블에 도착하기까진 오 분이 더 걸렸다. 앞선 단체손님들에게 영업을 하다가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탓이다. 주위 모 회사의 과장인지 뭔지가 “나는 그딴 거 안 사니까 얼른 꺼지라니까!” 하고 고함을 한 번 치더니, 그다음엔 아예 일어나서 삿대질과 폭언을 퍼부었다. 젊을 때 노력하지 않아서 아줌씨가 그렇게 된 거라느니, 그깟 천 쪼가리를 오천 원 씩이나 받아 처먹는 게 제대로 된 발상 같냐느니. 주위 직원들의 만류에도 “너희도 똑바로 일 안 하면 저렇게 되는 거라니까? 나이 처먹고 돌봐주는 아들 한 명 없이 저렇게 살다 가는 거라고……” 같은 말을 쉬지도 않고 늘어놓았다. 아주머니는 그러는 동안에도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었던 건지, 아니면 상황 파악이 안 됐던 건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정말로 바보인 줄 알았을 것이다.     


 “아유, 안녕하세요…… 총각들도 좋은 시간들 보내고 계시죠?” 아주머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앉은 테이블 옆구리에 서서 말했다.      


 “아…… 아, 네. 좋아요. 저희는”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이. 아닙니다. 저흰 됐어요. 그러니까 가세요. 죄송합니다” 친구가 휙휙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내게는 ‘왜 인사를 받아줬느냐’는 원망 가득한 눈빛을 쏴대면서.      


 “아니, 아니에요. 뭐 파시는 데요? 저한테 한 번 보여주세요” 나는 친구의 안색은 아랑곳 않고, 꼴에 의젓하게 말하려 애쓰는 중이었다. 불현듯 ‘값싼 연민’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이미 저지른 일은 어쩔 수 없다.     


 “아유, 고마워. 총각……” 아주머니는 느닷없이 감사인사를 하곤, 뒤돌아 끌고 온 배낭 모양의 수레를 뒤적거렸다. 당최 뭐가 고맙다는 걸까? 나는 보겠다고만 했지 아무것도 사지 않았는데. 봤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안 산다고 하면 어쩌시려고. 먼저부터 감사인사 따위를 하시는 걸까, 하고 속으로 되뇌고 있을 무렵 다시금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 “이걸로 말할 것 같으면, 간단히 말하면 면으로 만든 손수건인데요…… 면을 아주 참 고운 걸 써가지고. 땀도 잘 닦이고요, 무늬도 보시면 온갖 색깔 꽃이 아주 화사한 것이…… 그래서……”     


 “아, 씨……” 친구는 더 이상 듣고 있기 힘들다는 듯 스스로 머리를 헝클어 보였다.      


 “아, 그만하세요. 됐어요. 이제” 나 역시 더 들을 자신이 없는 건 피차일반이었다. 빤히 바라보는 아주머니를 앞에 두고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하나 사면 얼마죠?”     


 “하나에 오천 원, 세 개 사면 만 원이에요”     


 “돈이 지금 이것밖에 없어서요. 다 줄 수 있나요?” 나는 오만 원 권 한 장을 꺼내 아주머니께 드렸다. 당장 가지고 있는 현금이라곤 그것뿐이었다.     


 “아, 몇 개 드리면 될까? 제가 지금 잔돈이……”    

 

 “잔돈은 됐어요. 그냥 그만큼 주세요. 마침 제가 손수건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서. 오만 원이면 계산이…… 열다섯 개 주시면 될 것 같은데”     


 “아우…… 고마워라. 총각이 마침 필요하다니까 잘 됐네. 잘 왔어. 어디 보자, 이게 한 묶음에 서른 개 들이인데…… 총각, 잠깐만 기다려봐요. 내가 열다섯 개 확실하게 세서 드릴게”     


 “야, 야. 진짜 사게?” 친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는 거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아주머니는 똑같은 꽃무늬의 손수건을 정확히 열다섯 장, 테이블 위에 고이 올려놓았다. 하나같이 네모난 투명 비닐로 포장해놓은 것이었다. 가게를 나갈 땐 내 쪽으로만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셨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에 덩달아 머리를 수그렸다.      


 “야, 기부한 놈이 인사는 왜 하냐?” 마지막 잔을 비운 친구는 투덜대는 투로 말했다.      


 “돈 주고 물건 산 건데 기부는 무슨…… 그리고 인사하는 게 뭐 어때서”     


 “이번엔 너가 당한 거야. 저런 아줌마들 얼마나 약삭빠른지 아냐? 좀 하다 보면 얼굴만 딱 봐도 누가 호구인지 알아챈다고”     


 “내가 호구처럼 생겼다고?”     


 “얼굴은 아니어도 행동을 호구처럼 하잖아. 그냥 보면 각이 나온다니까”     


 “아, 젠장”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슬슬 집에 가자. 내일도 아침부터 병원 가야 되거든…… 아. 이거 하나 가질래? 마침 많이 갖고 있어서”     


 “지랄. 그딴 건 줘도 안 가져” 친구는 정말이지 싫다는 눈치였다.     


 “왜. 오천 원, 아니. 하나에 삼천삼백삼십삼 원짜리 치곤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냐? 무늬가 약간 그거 닮았는데. 그 뭐냐…… 그, 무슨 영국 브랜드 있었는데”     


 “딱 봐도 짝퉁이잖아……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안 그래도 속 더부룩해가지고, 금방이라도 올라올 거 같으니까” 친구는 입을 막고 연신 트림을 하며 말했다. 확실히 주량이 대단치 않은 놈치곤 그날따라 무리를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무리했을 줄은 몰랐다. 걸어서 십 분쯤 안 되는 거리에 전철역이 있었는데, 친구는 그중 오 분도 채 안 되는 지점에서 전봇대에 머리를 박았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에 주황색 가로등만 하나 매달린 것이 국산 느와르 영화에 자주 나오는 장면 같았다.      


 “으어, 으어어억…… 컥컥……”     


 친구는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다만 안쓰러운 마음에 곁에서 등을 두들겨줬더니, 이윽고 본격적인 토악질을 시작하는 것이다. 형형색색의 토사물이 척, 척, 소리를 내면서 아스팔트에 퍼질러졌다.      

 “으, 설마!” 나는 기겁했다.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학창 시절에도 좀처럼 속내를 알기 어려웠던 친구였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먹었던 소주와 양념꼬막은 물론 반찬으로 나온 뚝배기계란찜이며 오뎅탕까지 모두 꺼내 보였다. 나로선 가까스로 색과 형체를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 더 고역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친구는 전봇대 밑으로 모든 걸 쏟아내고 죽어버렸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죽은 건 아니었지만,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선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바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겐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었다.      


 “야, 야. 정신 차려. 야!” 나는 친구의 뺨을 몇 번이나 때리며 소리쳤다. 그중 두 세대는 정말 온 힘을 다해 후려갈겼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자신이 토해낸 피조물에 범벅이 된 채 의식불명이 된 친구의 모습. 난 살면서 위생이라는 것을 우정과 비교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아, 진짜 드러워 죽겠네” 콜택시기사님은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며 말했다. “뭐 닦을만한 거 없어요? 이거 그대로 태우면 시트 다 더러워져서 못 태워. 좀 닦아서 태워야지”     


 “아, 있어요. 손수건이 좀 많아서” 나는 가방에서 새 손수건을 몇 개 꺼내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손수건으로 친구의 옷에 묻은 토사물을 쓸어 닦았다.      


 “냄새는 이게 뭐야? 대체 뭘 먹었길래 이런 냄새가 나지?”      


 “아, 술을 평소보다 많이 마셔서 그런가 봐요”     


 “이 양반이, 내가 술주정뱅이 하루 이틀 태워보나. 이런 냄새 아무한테서나 안 나요. 술 먹는다고 다 이런 냄새 안 난다니까? 어우, 세상에. 이런 냄새가 다 있나. 내 참 드러워 가지고……”     


 “아하하……” 계속된 불평에도 나는 멋쩍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택시기사의 말이 다 맞았다. 나조차 술기운에 반쯤 마비된 후각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향기로운 토사물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건 실로 대단한 악취였다.      


 “근데 무슨 손수건을 그렇게 많이 들고 다니나? 다 큰 청년이” 쓰러진 친구를 택시 뒷좌석에 겨우 태운 다음, 택시기사가 물었다.      


 “아, 뭐 사정이 있어서……”     


 “무늬도 보니까 꽤 비싼 것 같던데. 명품 아냐?”     


 “뭐, 비슷합니다”     


 “그래요. 친구 잘 데려다주고 연락 줄 테니까. 조심히 들어가시고. 이 사람 이거 참 좋은 친구 뒀네. 나중에 술 사라고 해요. 꼭”     


 “이제 술은 됐고 밥이나 사달라고 하려고요”      


 “하하하……”     


 택시는 너털웃음과 함께 출발해서, 이내 큰 도로 오른쪽으로 꺾어 사라졌다. 취기는 한바탕 난리를 치는 동안 증발한 모양이었다.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러 방금 썼던 빨간색 손수건을 활짝 펼쳐 들었다. 손수건 무늬는 온갖 색깔의 꽃으로 화사한 가운데, 곳곳에 묻은 토사물이 제법 예술적이었다. 나는 결국 웃고 말았다.               


      

<역류>, 2019. 10




<호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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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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