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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Oct 23. 2019

습작

백스무번째

 “어학원이 뭐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대표가 물었다. 뒤따라 정적이 흘렀다. 회의실에는 직원들이 스무 명도 넘게 있었지만, 세로로 쭉 뻗은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아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하는 일이라곤 그저 맨 앞섶의 어학원 대표, 그리고 그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마주 서있는 강남지점 학원장을 응시하는 것뿐이었다. “대답해. 여기가 뭐하는 곳이야?”


 “어학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원장이 대답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세요. 구체적으로” 


 “어학실력 향상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고품질의 외국어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아,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아!” 대표는 돌연 큰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이 답답해 죽겠다는 양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제기랄. 이따위니까 학생도 줄고, 매출도 줄고, 이 빌어먹을 놈의 학원이 망해가고 있는 거라고요. 이봐요, 원장님. 다시 한번 말해줄래요? 내가 어이가 없어서. 어학실력 향상을 희망하는…… 뭐? 지금 나랑 농담 따먹기 하자는 겁니까? 웃기려고 하는 소리죠?”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한 게 아니라― 제가 그런 말 듣자고 이런 얘길 하는 것 같아요? 정말 그래?”


 “아닙니다”


 “아니면, 뭐?” 젊은 대표는 이제 노골적으로 시비를 거는 투였다. 삼촌뻘 되는 학원장을 직원들 앞에 세워두고, 보란 듯이 창피를 주고 있었다. 영업실적이 시원찮을 때마다 이따금 비상소집이며 긴급회의가 있긴 했지만, 이런 상황이야 원장에게도 학원의 직원들에게도 생경하기 짝이 없었다.


 “……”


 “할 말 없어요? 원장님?”


 “……죄송합니다”


 “아…… 진짜, 짜증 나게……” 대표는 눈을 반뜩 치켜뜨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한숨을 몇 번이나 쉬어대는지 조금 더 가면 밟고 서있던 이십 층짜리 건물도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제가 어제 어디 갔다 왔는지 압니까, 여러분? 어디 갔다 왔는지 알아요?”


  대표는 양 쪽 허리춤에 손을 괸 자세로, 회의실에 둘러앉은 모든 직원들을 눈으로 쭉 훑으며 말했다. 물론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가 어제 이사회에 갔다 왔습니다. 이사회가 뭔지 알아요? 아, 하긴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 하여간 그 건물이 요 근처에요. 저어기 분당선 타는 데 있잖아요? 하. 강남역 오번 출군가 칠 번 출군가 거기. 그쪽 대로에 있는 건물 십팔 층에서 이사회를 했다 이 말입니다. 하아, 십팔 층이라고요. 이런 씨발……” 대표는 말을 이어가는 중간중간에도 숨을 쉬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호흡곤란으로 죽기라도 할 것처럼 숨을 마시고 내쉬었다. “거기서 이사들한테 무슨 말을 들었느냐. 뻔할 뻔자겠죠? 무슨 말을 들었겠어요. 영업이익이 개판이다, 지금 학원들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느냐, 매출 규모 추이가 심상치 않은데 대책이 있냐, 뭐 그런 얘기 아니었겠습니까? 원래 이사회라는 게 그런 자리거든요. 회사가 성과를 못 내면…… 이사들이 경영자한테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직원들은 여전히 아무 말들이 없었다. 


 “진짜 우리가 최선을 다해 가지고 이따위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 저도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이사회한테 당당하게 여러분을 변호하겠죠. 여러분이랑 저는 같은 팀이잖아요. 안 그래요? 안 그렇습니까?” 대표는 회의실 공간을 빙 둘러 걸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더라고, 내가. 정말 양심이 있으면, 경영자로서 책임회피는 하면 안 되잖아. 우리가 마케팅을 개떡같이 한 걸 이사들도 알고 나도 알고 여기 직원도 알고 요 주변 다른 어학원 학생들까지 다 알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뭐라고 해? 무슨 말을 하냐고, 거기서! 하, 하하…… 여기 구 층 강의실 복도 있죠. 거기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길에 뭐라고 적혀 있어요? 나도 처음 봤어. 누가 붙여놨는지 모르겠는데 참 좋은 말이더라고. 뭐라고 적혀 있는 줄 알아요?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적혀있습니다. 참. 우리 학생들, 그거 보고 자극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근데 우리는 뭡니까? 그런 말에 책임질 자신 있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나요, 우리? 그 씨발 것의 ‘질 좋은 영여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어떤 개짓거리를 했습니까? 뭘 하긴 했나요? 내가 여기 회의실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고. 일말의 기대를 했어. 진짜 원장 하나라도 정신머리를 딱 잡고 있길 바랐는데. 그게 정말 아주 엄청난 기대였나 봐요. 내가 미쳤지, 미쳤어”


 대표가 회의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열변을 토하는 중에도 원장은 허리를 구부린 그 자세 그대로였다.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발 지금부터 잘 들어요. 응? 리슨 투 미, 플리이-즈, 오케이?” 대표가 양 손바닥을 직원들에게 펼쳐 보였다. “잘 봐봐. 우린 회사야.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있는 거지. 목마른 사람한테 마실 거주는 대가로 돈 받고, 아픈 사람 치료해주고 돈 받고, 뭘 하든 간에 회사는 돈을 벌어야 회사야. 응? 그럼 우리는 뭘 파느냐. 어학원은 뭘 팔아야 할까? 저기 저 원장님처럼 프리미엄 영어 교육서비스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여기 더 있어요? 혹시 있으면 손들어 봐 봐. 정말로. 부끄러워하지 말고. 어서”


 손을 드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자 대표는 조롱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다행이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원장님 말고 더 없어가지고. 참. 원장님이 참 교육자셔. 안 그래요? 그렇게 참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으면 임용고시 쳐서 공교육으로 가셨어야지. 아니면 학위 따 가지고 교수질이나 하든가. 왜 강남에 있는 이류 어학원 같은 데나 와서 원장이라고 으스대고 다니는 겁니까? 아주 기본적인 사업 법칙도 모르는데. 사업의 기본이 뭘까요? 수요와 공급 아닙니까?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고, 그게 맞아떨어져서 매출이 발생하죠? 그러면 우리 고객들은 뭘 원할까? 질 좋은 영어교육?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어학실력? 이거야말로 진짜 좆까는 소리라고……”


 직원들은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순간 회의실은 너무 조용해서 바람 부는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들어봐…… 잘 들어! 지금 중요한 얘기 하니까. 걔들은 정말 영어를 잘하게 되는 걸 원하는 게 아니야. 우리도 영어실력을 파는 게 절대 아니지. 우리가 파는 건 기분이야. 자기가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 영어가 조금이나마 늘고 있다는 착각, 그런 것들을 파는 거라고. 좀 생각을 해봐. 정말 우리가 제공하는 영어교육이라는 게 효과가 있다, 국민의 어학실력 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러면 어학원은 한 이십 년 지나서 싹 다 망해야 됩니다. 왜? 그쯤 되면 개나 소나 영어를 줄줄 할 텐데 누가 어학원을 다니겠냐고…… 기본적으로 교육 사업이라는 건 다이어트랑 시장구조가 아주 비슷해요. 아니,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똑같아. 완전히. 여러분 보는 다이어트 시장 어떻습니까? 여기 강남에도 개 비싼 헬스장 있잖아. 한 달에 오십만 원 백만 원 하는데. 전국의 헬스장, 다이어트 식품, 닭가슴살 요리, 단백질 보충제, 사람들 살 빼기 좋게 이런 게 싹 다 갖춰져 있는데, 길거리 나가봐요. 여기 강남역 앞에 지나가는 사람들 보라고. 예쁘고 잘생긴 사람도 있긴 하지만 개 뚱뚱하고 못생긴 새끼들 천지야. 정말 혁신적인 다이어트 시스템이라는 게 있고 그랬으면 누가 그렇게 돼지처럼 하고 다니겠냐고? 뚱뚱하고 싶어서 뚱뚱한 인간 어딨어요? 자기 몸매 만족한다는 인간들 몇 번 봤는데, 뒤로는 몇 백짜리 살 빼는 약 처먹고 지방 흡입하고 헬스장 끊어서 피티 받고 개지랄들을 다 하더라고. 그런데 안 빠져! 왜? 처먹는 건 포기 못하겠는데 뚱뚱한 건 싫으니까! 그래도 열등감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돈을 거기다 팍팍 쓰는 거야…… 다이어트 사업하는 사람들 아주 귀신입니다. 돈 버는 귀신. 거기 맞춰서 마케팅 딱 하고 필요할 것 같은 물건 딱 내놔서 귀신같이 팔아치워. 그 사람들 실제로 살이 빠지냐 안 빠지냐 같은 거 참새 눈곱만큼도 신경 안 쓰는 양반들이야. 교육 사업이라고 뭐가 다르냐? 참내…… 뭐가 다르겠습니까? 기본적으로 하나도 안 다르다고. 정말로 점수가 안 오른들 뭐 어쩌겠어? 본인이 열심히 하면 오르고, 안 하면 안 오르는 거야. 헬스장 6개월 끊어도 운동 안 하면 말짱 도루묵이지. 헬스장 회원이 헬스장한테 따지는 거 봤어? 여기 등록했는데 왜 나는 복근이 안 생기냐고 따지는 거 봤냐고. 안 따져. 못 따지지.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건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 다른 모든 게 갖춰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어떻게 보면 어학원은 미래보단 현재를 생각하는 친구들을 위해 있는 거지. 정말 영어를 배우고 싶을까? 정말 취업이 간절할까? 글쎄? 당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으니까 하는 거 아닐까요? 학원이라도 다녀야 아무것도 안 하는 한량, 백수 취급은 안 당하니까. 노력은 하기 싫지만 노력 안 하는 사람이 되는 건 더 싫거든. 요즘 청춘들이라는 게 그래. 모든 결정을 부모님 그리고 남들 시선에 보여질 거 일일이 신경 써가면서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공부하는 것 같은 기분을 팔 수밖에 없는 거지” 대표는 생수병을 집어 들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제가 말하는 거 듣고 참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되도록 안 그랬음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뭐? 극단적이라서 뭐? 사업이란 게 원래 그래요. 극단적이라고. 사람들이 원하는 걸 죽어라 파서 극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니까. 우리가 뭐 거짓말했습니까? 아니면 사기를 쳤습니까? 여러분 알잖아요? 열두 달 짜리 클래스 끊어놓고 세 달도 안 돼서 그만두는 인간들이 반절이야. 완강하면 학원비도 다 돌려준다고, 추첨 통해서 어학연수도 보내주겠다고, 별별 지랄을 다해도 완강하는 학생이 이십 프로도 안 돼. 걔네 점수 개판 나고 취직 못하고 그게 우리 잘못입니까? 서비스는 멀쩡한데 고객한테 의지가 없는 건데. 우리가 거기까지 책임져줘야 돼? 하긴 어디 노량진에 있는 학원에는 그런데도 있다던데. 하루 이십사 시간 애들 가둬놓고 공부 하나 안 하나 감시하고 그런데. 근데 우리는 그런 건 안 하잖아요? 하기도 싫어. 그런 건 비인간적이니까. 절대 안 하지…… 아휴. 말하는 것도 지친다, 지쳐. 그래서 결론이 뭘까요?”


 직원들은 아직도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대답이 필요한 말도 아니었다. 대표는 재차 머리를 쓸어 넘기고 한숨을 쉬었다.  


 “일단 팔라는 거야! 일단 팔아! 어떻게든 팔아! 어떤 수를 써서든지 결제를 시켜!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끝이야! 알겠습니까? 일 년이든 십 년 치든 미리 결제만 시키면 된다고. 미리 결제만 하면 다 줄 수 있지. 뭘 못줘? 뭐가 아까워서 못 줘? 다 주라니까? 다 줘버려! 에어팟도 주고, 태블릿도 주고, 노트북도 주고, 하여간 젊은 애들 환장하는 거 다 줘버리라고. 뭔 상관이야? 어차피 수강료에 다 포함돼있는데. 상조랑 똑같아. 우린 손해 볼 거 없어. 십 원짜리 하나라도 이익이 된다, 싶으면 무조건 하라고. 아예 롤렉스까지 주더라도 백 년 치 수강료를 미리 받으면 된다…… 이런 발상이 필요하다고. 응? 알겠습니까? 알겠어요? 여러분?”


 “예, 대표님” 모든 직원들이 대답했다. 


 “원장님도 알겠어요? 이제?” 대표가 물었다. 


 “예, 대표님” 원장이 대답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한 회의가 끝났다. 회의실에서 직원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왔다. 하나같이 표정은 굳어 있었고, 말 한마디 없이 부서로 돌아가 야근할 채비를 했다.      


 강남역 주변으로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십일 번 출구는 바삐 지나다니는 사람과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가을이 깊어 골목골목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 닥치는 한편, 이곳저곳에 가린 노을이 흐리멍덩했다. 

 높다란 어학원 건물들이 옥상에서부터 환히 빛났다. 저녁이 되자 이삼십 대 쯤의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돌아가는 전철과 광역버스들은 항상 그랬듯 만원이었다. 떠나온 강남대로에는 오늘도 꿈 대신 간판들이 반짝거렸다.           



<Why so serious……>, 2019. 10





<강남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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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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