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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Oct 25. 2019

습작

백스물한번째


"치료하던 환자가 죽은 경우가 있나요?"     


남자가 말했다. 나무로 된 진료실 출입문 너머에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새 들어왔다. 의사는 무표정하게 남자를 응시했다.     


"글쎄요,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예약을 해놓고 영영 안 오는 분들은 꽤 있죠. 전출이라든지, 불의의 사고라든지, 뭐 어떤 일이 있었을 거라 생각은 했는데, 돌아가셔서 못온다, 그렇게는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네요"     


의사는 진지하게 답변했다. 이 상황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남자도 알고 있었다.     


"그렇군요. 하긴 무슨 일이 있겠거니 하지, 죽어서 못 오는 거라 생각하진 않으니까요"     


"네. 아무래도"     


"그런데 결국 똑같지 않나요. 결과론적으로... 그러니까, 영영 못 본다는 점에서는 죽음이나 전출이나 똑같잖아요. 선생님께는요"     


남자는 말을 뱉자마자 자신에게서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또, 당혹감 어린 표정과 제스처들이 이어졌다. 덕분에 의사는 남자에게 어떤 불쾌감도 없이 대화를 지속할 수 있었다. 양쪽 모두에게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네요. 어떤 측면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환자는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온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뭘요. 그냥 의견을 제시하신 건데요"     


"네. 사실 막을 수 있는 영역도 아니죠..."     


"네?"     


"아닙니다"     


남자는 문장 단위로 중얼거렸다. 다만 그 중얼거림은 정신질환자에게 찾아볼 수 있는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신자가 예배당이나 성당에 홀로 앉아 기도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의사에게는 이런 안정감이 되려 불길하게 느껴졌다.     


"나아질 겁니다. 일시적인 현상이에요. 물론 지금껏 고생해오셨겠지만은... 누구나 인생에서 방황하는 시기를 겪는 법이고, 환자분께서 의지만 있으시다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이 원래 그런 거구요..."  

   

의사는 말을 끝내고 급히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의사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얼굴로부터 당황한 기색이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반드시? 환자를 진료하면서 이런 단어를 쓴 적이 있었던가? 한 번 쯤은 쓴 적이 있겠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무렴, 일상적인 어휘니까... 투약량을 늘리도록 할까,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도 없을테니까, 의사는 약하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겠죠.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이건 그냥 병이고, 약을 먹으면 낫는다구요. 그냥 약이 좀 맞지않거나, 양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자가 말했다.     


"어, 음, 네... 그렇게 말했었죠, 네..."     


얼떨떨한 답변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둘러대는 투는 아니었다. 남자는 의사가 몹시 사려깊은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병리적 해결을 넘어 자신이 겪어온 문제에 진정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이었다. 의사가 하루 수십 명이 넘는 환자를 응대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남자는 의사의 보기드문 진정성을 '사려깊음'외의 어떤 적절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일단, 약의 종류를 바꾸진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약 중에서 가장 부작용이 덜한 약이니까요. 효과도 확실하구요. 말씀하신대로 투약량만 늘려봤는데... 이번에는 일주일만 드셔보시고, 경과를 보도록 하죠. 다음 주에 꼭 내원하시고..."     


"다음 주요?"     


"네"     


"좀 빠르네요. 투약량만 늘리는 건데..."   

  

"그래야 안 잊어버리지 않을까요? 주기를 한 달로 했더니 영영 잊어버리신듯 해서"     


켁, 켁, 의사가 말을 끝내자마자 헛기침을 비슷하게 했다. 목이 메인 것처럼 보였다.     


"알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했어요. 늘..."     


"네, 이제 슬슬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구요"     


"하하, 벌써 시월인데요. 추워지는 건 어쩔 수 없죠. 낙엽도 지고..."     


"그렇죠. 또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이고요"     


"흠, 추운 건 싫은데... 좀 따뜻한 곳에 가볼까해요. 여기 겨울은 유독 추워서"     


"좋죠. 멀리 안 가고 딱 제주도만 가도 따뜻하더라구요. 가서 기분도 전환하시고..."     


남자는 빙긋 웃더니 이내 뒤돌아나갔다. 의사는 자리에 앉아 늘어난 투약량을 재차 확인했다. 다음 환자를 부르기까지는 삼 분 정도가 더 걸렸다.     


의사가 이 대화를 떠올린 것은 정확히 일주일 뒤였다. 간호사는 남자가 사흘 전에 이미 예약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사유는 전출이었다.     


<예후>, 2018. 10





<몬탁의 바다>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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