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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Oct 30. 2019

습작

백스물두번째

 “이제는 제법 초겨울 느낌이 나는데” 남자가 자켓 앞쪽 단추를 여미며 말했다. “산에는 벌써 낙엽이 지고 있다나 봐. 아마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눈송이 몇 개는 있을 걸”


 “……” 여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주위 나무들은 벌써부터 껍질이 벗겨져 앙상했다. 싸늘한 바람이 좌우로 불며 무언가 뒤척이는 소리를 냈다. 


 “마지막으로 널 본 게 보름 전이었나? 그때까진 매미가 울고 있었어. 딱 한 마리쯤 남아 있었던 것 같은데……” 


 “……” 여자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네가 말했잖아. 벌레는 싫지만 가장 늦게까지 우는 매미는 잡아보고 싶다고. 누굴 기다려서 그렇게 오랫동안, 가을바람이 불어 닥치는 데도 계속 울어대는지 궁금하다고 그랬지. 너무 로맨틱하다고” 남자는 계속해서 바람소리를 들었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기분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느낀 건, 너랑 내가 참 다른 사람이라는 거야. 나는 가장 마지막까지 우는 매미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거든. 반대로 보면 가장 마지막까지 짝을 찾지 못한 놈인 거잖아. 그렇게 오지도 않을 암컷을 기다리다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게 걔의 운명이니까. 그럴 거면 차라리 울지 않고 가만히 있다 가도 될 텐데. 그치? 그걸 뭐 로맨틱하다고 할 순 없는 거잖아”


 “……” 여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가 헤어졌다고 해도 그렇지. 대답한 번 안 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야? 그래도 학창 시절부터 칠 년을 넘게 만났는데. 사람 말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가 못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얼굴 근육이 뻑뻑하게 움직였다. 가뜩이나 춥고 건조한 날씨였다. “됐어. 원래도 내가 더 말을 자주 했었으니까. 이제 와서 얘기해봐야 의미도 없겠지”


 “……” 여자는 미동 한 번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하여튼, 이제 너 찾아오는 것도 마지막이야. 헤어진 지도 꽤 됐잖아. 이제는 각자 갈 길 가야지……” 남자는 그렁그렁한 눈을 훔쳐 닦았다. 긴팔 소매가 조금 젖었다. “전여자친구 찾아와서 찌질하게 우는 것도 이젠 그만할래.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잖아. 네가 말한 대로, 애들처럼 어리광 부릴 때는 한참 지났거든”


 “……” 아직도 여자는 대답할 기미가 없었다.


 “그냥,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했어. 가장 늦게까지 우는 매미는 확실히 불쌍해. 근데 그건 끝까지 짝을 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짝을 너무 일찍 만났기 때문일 거야. 어른이 다 되기도 전에 만났는데, 그 짝이 땅속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거지. 그럼 그 매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는 것 밖에 없는 거야. 나랑 같이 있기로 했던 그 애가 나타날 때까지.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우는 거라고.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도 지나고,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까지 울다가, 그렇게 수명을 다하고 땅에 떨어져 죽는 거야. 비극이라면 이쪽이 좀 더 슬프지?”


 “……”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알겠어. 이제 그만 갈게…… 잘 있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 잘 지내고, 늘 행복해야 해. 바람이 차니까 감기 조심하고” 남자는 곧 돌아갈 채비를 하듯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안녕. 영원히”     


 “자, 가자” 남자는 언덕 중턱으로부터 내려오면서 말했다. 주말인데도 추모공원 주차장은 차 몇 대 없이 한산했다. 


 “응. 잘 다녀왔어?” 아래서 기다리던 아내가 대답했다. 그동안 아이는 꽃 몇 송이를 따다 놀고 있었다.


 “응”


 “이제 정말 다시는 안 올 거야?” 아내가 재차 물었다. “난 정말 괜찮은데”


 “나도 그래야지” 말하는 동시에 남자가 자동차 문을 열어젖혔다. 아내는 말없이 아이를 향해 손짓했다.


 가족이 올라탄 차는 이내 공원을 빠져나가 경기도 외곽의 국도로 향했다. 조금씩 속도를 높이는 차체 뒤로 흐려지는 공원의 풍경이, 그 위로 “맴, 매앰―” 하는 최후의 울음소리가 구슬피 흐드러졌다.       

   


<앵콜요청금지>, 2019. 10



<앵콜요청금지>




 '지재진' 님이 값을 미리 치러 주신 덕분에 이 글과 그림을 작업하고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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