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세상에 미워할 게 부모님 뿐이라서
"요즘 청년은 어른 공경할 줄을 모른다니까" 할아버지는 내가 양보한 자리에 몸을 내려놓기 무섭게 말을 꺼냈다. 버스는 만원이었다. "하여간 고맙네. 자네처럼 자세가 된 젊은이가 잘 돼야 하는데"
"아, 아닙니다" 나는 당황했다. 마침 버스는 사람을 한가득 채우고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정차해 있었다. 창밖에는 날이 맑은 한편 버스 내부는 도서관처럼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런 가운데 할아버지는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어 들면서, 어디 광고라도 하듯이 큰 소리로 날 칭찬하셨던 것이다. 백발의 노인 치고 목소리가 얼마나 걸걸하고 컸는지 버스 맨 뒷자리에 앉은 사람도 들었을 성 싶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할아버지는 날 보지도 않고 말씀하셨다. 난 황급히 읽던 책을 꺼내 들었으나 '웃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무시하고 책을 읽어도 될 일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져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내가 요 지팡이 짚고 여기 중간까지 오는데, 아무도 자리를 안 비켜줬단 말이야. 자네는 딱 보자마자 일어섰고. 이게 참 얄궂다니까……"
"아…… 하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젊은이들, 이런 거 보고 본 좀 받으라고. 학교에서 공부만 하면 뭐하나. 선생들이 인성교육도 시켜야 선생이지. 이건 뭐……" 할아버지는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때 그 버스 안의 다른 '젊은이들'이 날 어떻게 여겼을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속으로 불쌍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혼자 착한 척한다고 느꼈을까? 음. 난 그냥 노약자석이라 비켜준 것뿐이었는데…….
때때로 나는 기성세대가 우리 젊은 세대들을 '어른들을 존경할 줄 모르는 놈들' '기본적인 예의가 없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식들' 쯤으로 확정해놓은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뭐, 예의라는 게 사람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것이긴 하지만…… 가끔은 기본적인 기대치 자체가 너무 낮아서, 내 입장에선 정말 별 것도 아닌 것에 놀라는 어른들이 씁쓸할 때도 있다.
몇 달 전, 뜻하지 않게 백화점에 갔다가 화장실을 들렀을 때였다. 백화점에 있는 화장실은 하나같이 넓고 고급스럽지만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때도 남자화장실은 나 혼자 쓰고 있었다. 전구색 불빛이 켜진 내부 천장에는 자그마한 스피커 같은 게 있어서, 모차르트인지 뭔지가 들릴 듯 말 듯 흘러나왔다. 나는 느긋하게 볼 일을 마치고 나오다가, 때마침 청소하러 들어오신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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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해당 브런치북 연재분이 <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3화 이후의 전문은 보여지지 않으며, 중간에 책 구매 링크로 전환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도 오픈해놓고 싶지만, 제 글을 믿고 투자해준 출판사,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책으로 구매해 책장에 꽂아놓으실 독자분들께 저 나름의 예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머지 내용은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책에 실린 것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글로서 온라인 버전에 비해 훨씬 깔끔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즐겁게 쓴 글을 여러분 또한 즐겁게 읽고, 또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찾아뵐 수 있다면
저로선 더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