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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Dec 05. 2019

습작

백스물아홉번째

 “다 틀렸어. 이젠 꿈도 희망도 없어” 남자는 양손아귀로 머리를 감싼 채 책상에 갖다 박았다. “신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확실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여자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면접 떨어진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력서 보내는 대로 다 붙을 거면 취준생들은 다 바보게? 아직 졸업도 못한 애가 엄살은”


 “아니. 신이 있다면 나한테 이럴 수 없어. 이번에는 꼭 붙어야했다니까. 이거 합격시키겠다고 엄마가 백일기도도 드리고, 헌금도 이백 만원이나 했는데. 어떻게 이걸 떨어졌다고 말씀을 드려? 며칠 전에 면접 잘 봐서 붙을 것 같다고 그랬는데”


 “그건 결과 나오기도 전에 설레발 친 니 잘못이지. 신이 어쩌고저쩌고 할 문제는 아니잖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과민반응하지? 종교 믿는 거 있어?”


 “없어” 여자는 딱 잘라 대답했다.


 “그럼 왜? 취업 못해서 좀 질질 짤 수도 있는 거잖아. 이번에 면접은 정말 느낌 좋았는데. 이건 신이 잘못한 거야. 돈을 이백씩이나 받아놓고……”


 “그 정도면 양반이지. 취업컨설팅 같은 거 알아보면 돈 몇 백은 그냥 나간다던데. 걔네가 뭐 취업 안 된다고 환불 같은 거 해주겠어? 똑같지 뭐.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운이 없…… 아니, 아니야. 이건 신인지 뭔지가 잘못한 거야. 신은 없고, 있다고 하면 책임감도 없고 아주 사악한 존재일 게 분명해. 그렇지 않으면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겠어? 모기랑 바퀴벌레 같은 건 왜 만들었겠냐고? 살인자나 아동성폭행범 같은 놈들한테 번개도 안 떨어트리고. 전쟁이랑 핵폭탄도 그냥 생기도록 방치해놨잖아. 차라리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백배천배 낫지 않을까? 우리가 볼 수 없는 우주에 그런 엿 같은 놈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이잖아. 네가 생각하는 선악이 신한테도 똑같이 적용되리란 법이 어딨어?”


 “대화가 점점 추상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은데” 남자는 짐짓 심각해진 얼굴로 말했다. “아니, 나는 뭐…… 신이 정말 잘못 됐다기 보단 있지. 지가 창조한 것들에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하는 생각인 거야. 까놓고 말해서. 본인이 싸지른 거에 책임은 져야하는 거 아니냐고. 광활한 우주며 태양계며 지구에 대한민국 같은 유사국가를 만들어놓고 말이야, 나처럼 졸업을 앞둔 선량한 대학생이 취업실패로 고통 받게 만드는 건 진짜 못돼 처먹었다고 밖에 할 수 없지 않냐? 어?”


 “……그렇긴 하지. 우리 입장에서는” 여자는 몸을 일으켜서 두꺼운 책들을 책상 한 쪽으로 몰아넣었다. “이제 슬슬 집에 갈까? 해지고 나서 집 가면 너무 추우니까”


 “그래, 나도 그냥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남자는 책상다리 옆에 기대 놓았던 가방을 챙겨들었다.     


-     


 평소 인적이 뜸하던 캠퍼스 후문이었다. 빠져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나있는 골목길에는 작은 백반집이 서너 곳쯤 있었다. 근처 건물의 미대생들이 곧잘 드나드는 한편, 정문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식당이며 포차들에 비해 장사가 잘 되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그날따라 골목 맨 앞쪽에 또래 대학생들 대여섯 명이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기에 사람들이 왜 모여 있지?” 여자는 어리둥절해서 말을 꺼냈다.


 “글쎄…… 저기가 웨이팅이 있을 정도는 아닌데”


 “한 번 가보자”


 “그래” 남자가 대답했다.


 자그마한 삼색 고양이였다. 캠퍼스 주위에 있는 동네에선 이상할 정도로 길고양이가 없었다. 지난 1년 동안은 그랬다. 마침 그 때 임기를 시작한 총장이 고양이를 질색한다는 증언이 나와서, 한동안 ‘총장이 사설용역을 시켜 캠퍼스 주위 길고양이들을 모두 죽였다더라’하는 소문이 나돈 적도 있었다.


 삼사년 전만 하더라도 많아서 골치를 썩었던 고양이들이 어느날 자취를 감춘 일은 학교로서도 학생들로서도 미스테리한 사건이었다. 그런 근거 없는 소문마저 설득력 있게 느껴질 정도로. 얼마나 그럴듯했는지 한 달쯤 지날 무렵 총장이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으며, 그런 이야기는 사실무근’이라고 직접 해명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그 고양이가 너무 애처롭고 귀엽고 생겨서인지는 몰라도, 가게 앞에 버려진 그 고양이는 후문 골목을 지나다니는 학생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애교가 엄청 많네. 이게 개냥이인가?” 고양이를 둘러싼 채 서있던 학생들이었다.


 “내가 보니까 사람 손을 좀 탔던 애 같아”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거 보면 뻔하지. 귀여워서 데려갔다가 갖다버린 거야”


 “너무해. 이렇게 어린 애를?”


 “그나저나 너무 귀엽다. 내가 데려다 키울까?”


 “너 자취방에 애완동물 키울 수 있어?”


 “아마 안 될 걸. 자취방 원룸은 애완동물 못 키우게 해, 웬만하면……”     


 십분 쯤 지나자 남자와 여자를 제외한 학생들은 모두 제 갈 길로 떠나버렸다. 그동안 여자는 멀리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한 마디 말도 없이 고양이와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안 키울 거면 만지지라도 말지” 마침내 여자가 입을 뗐다. “한 번 사람 손을 탄 애들은 길고양이로 돌아가기가 힘들어. 같은 고양이 무리에 못 들어가거든. 몸에 사람 냄새가 배면……”


 “그렇구나. 나도 몰랐네 그건” 남자가 대꾸했다.


 “어쩌겠어. 귀여우면 만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긴 하니까”


 “그렇게 보면 사람들도 참 무책임하네”


 “그러게”


 “하긴, 신이 그렇게 무책임하니까. 그런 놈한테 만들어진 인간도 무책임할 수밖에 없는 거 같기도 하고”


 “흠……” 여자는 계속해서 고양이의 눈을 응시했다. 쭈그려 앉은 자세가 결리지도 않는 모양새였다. “근데 있잖아. 신이라는 게 꼭 인간이랑 비슷할 필요도 없는 거잖아”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어쩌면 신이라는 건 고양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뭐라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전지전능한 고양이가 우주를 창조했을 지도 모른다고”


 “앞으로는 개소리를 조심해서 해야겠다. 이렇게 전염성이 강한 줄은 몰랐어. 미안해” 남자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투였다. 


 “아니, 농담이 아니라, 생각을 좀 해봐. 신이 고양이라면 이해가 확 되지 않아? 전지전능한데 딱 하나만 모르는 거야. 고양이가 모르는 건 자기가 고양이라는 사실밖에 없잖아. 우주도 그냥 심심해서 만든 거고, 인간도 그냥 되는대로 만들어놨다가 까먹어버린 거지. 자기가 우주를 창조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지 오래일 걸? 그러니까 기도고 나발이고 들어줄 리가 없는 거지. 어때, 그럴듯하지?”


 “……” 남자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너무 하네. 괜히 생각해서 말해줬더니”


 “넌 생각을 이상하게 해”


 “아, 됐어. 집에나 가자” 여자는 덜컥 일어나서 말했다. 뾰루퉁한 본새였다.


 “그래도 조금 위로는 됐어”


 “입에 발린 말 하지마”


 “아니, 정말이야” 남자가 말했다. “이왕 못 돼 처먹은 신이면 고양이처럼 귀엽기라도 해야지. 그럼……”


 “잘 지내. 안녕” 여자는 고양이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심경을 알 수 없는 고양이의 두 눈. 그 안으로 언덕진 골목과 그 너머로 넘어가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해질녘 바람은 한층 더 차가워질 준비를, 첨탑의 십자가들은 검붉게 타오를 준비를 각각 마쳤다. 부드러운 삼색 털이 살결과 함께 파르르 떨렸다.           


<CAT HOLIC>, 2019. 12




<삼색이>






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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