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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Dec 07. 2019

습작

백서른번째

 ‘역시 불편해’


 나는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에 올라탔다. 일의 특성상 철도를 이용해 지방을 나다니는 일이 익숙해지기야 했다. 어떤 낯선 일들조차 3년이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돼버리니까. 그래도 서양인 체형에 맞춰 나왔다는 KTX 좌석만큼은 영 몸에 붙질 않았다.


 회사는 참 별 것도 아닌 일에 먼 곳까지 출장을 보내곤 했다. 멀리 가는 것도 일이라면서 특실은 허락해주는 법이 없었다. 하기야 내가 직접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시속 이삼백키로로 달리는 열차 좌석에 앉아 바깥풍경이나 지켜보는 건 일보다 휴식 쪽에 가깝다.


 그러나 무궁화호에 비해 정차역이 거의 없다시피 한 고속철도였다. 한번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창밖 풍경은 너무 빨리 스쳐가는 나머지 눈에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이따금 교외의 논밭이며 산간지역이 펼쳐졌다가도 뭐가 있나 보려고 치면 깜깜한 터널이며 철제 가림막으로 삽시간에 암전돼 버리는 것이다.


 부산에서 출발해 두 시간 여 만에 서울에 도착하는 열차를 여러 번 타다보면 두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대한민국에는 참 크고 작은 산이 많다는 것, 그리고 겨우 두 시간도 안 돼 국토를 가로지를 만큼 좁아터진 나라라는 것. 이렇게 좁은 땅덩어리에, 그보다 수천 배는 작을 서울이라는 도시에 오분지일이 넘는 사람이 모여 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하여간 그렇게 좁은 나라조차 수십 분 간격을 두고 휙휙 날씨가 바뀐다. 내가 출발하던 부산에서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대구를 지날 즈음에는 그냥 흐리고 습한 날씨가 됐다. 그런가하면 대전역 부근은 쾌청한 가운데 가끔 부는 바람이 쌀쌀하고, 경기도에 접어들자 별안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는 건 진절머리가 나도록 배운 내용이지만 그렇게 직접 보면서 지나가자니 실로 다이나믹해서 골치 아픈 나라같았다.


 그 무렵 나는 눈이 피곤해서 멍하니 철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KTX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다보면 눈앞의 모든 것들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데, 오직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이 그 사다리모양의 철길이었다. 열차는 철길이 있는 곳으로만 달리기 때문이다. 그건 열차뿐만 아니라 나도 그렇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다른 모든 승객들도 그럴 것이었다.


 다만 그 날은 철길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서,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고즈넉한 것이 기분이 묘했다. 지금쯤 서울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올해 성탄절에는 또 얼마만큼의 눈이 내릴까? 그런 별 볼일 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였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동안 창밖에는 제법 굵은 눈이 날리는 뒤로 새하얗게 뒤덮인 둔덕, 산과 그 앞으로 논밭과 비닐하우스들만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는데. 먼 곳을 지나는 낭만인지 타성인지 모를 것에 젖어서, 꾸벅꾸벅 졸려갈 쯤에 보였다.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빨갛게 뒤범벅된, 정체불명의 덩어리 같은 것이 순식간에 철길 위쪽을 스쳐지나갔다.


 돌연 등줄기가 싸늘해져서 눈을 번쩍 떴다. 나는 뒤늦게 고개를 꺾어 내가 본 게 무엇인지를 확인하려 했는데, 하필 그 때 열차는 긴 터널에 접어들어 모든 것이 캄캄해졌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아니지, 아닐 거야’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그건 분명히 무언가의 주검이었다. 얼마 안 된 죽음의 흔적이었다. 하얀 도화지 위에 검붉은 물감이 떨어진 것 같았다. 불과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사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난 살아오면서 그보다 더 잔인한 색을 본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종착역까지 사오십 분 안팎을 남긴 찻간이었다.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잠들어있었고, 눈뜨고 있는 사람들도 절반은 이어폰이며 헤드폰으로 귀를 감싼 채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해 창밖을 보고 있던 사람도 몇 명은 되는 모양이었다. 터널을 지나는 찻간은 조용히 웅성거리는 소리로 휩싸였다. 나는 그 덩어리가 사람이 아니기 만을 기도했다.


 그런 와중에 자동개폐식 문이 윙- 하고 열렸다. 수시로 인원을 확인하러 오는 승무원이었다. 승무원은 가능한 조용한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어 지나면서, 정해진 자리에 알맞은 만큼의 승객이 착석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내 자리는 중간 부근에 있었다. 나는 곧 기도를 바꿔 승무원이 내 곁을 지나가기 전에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랐다.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승무원이 지나 걸어온 곳에는 정적밖에 남지 않았다. 오히려 창백해진 내 얼굴이 그 비겁한 침묵을 깨트리고 말았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요?” 승무원은 내가 앉아있는 쪽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물었다. 사무적이고 사려 깊은 목소리였다.


 “아, 그게……” 나는 말을 더듬었다. 살다보면 말할 생각이 없어도 반드시 뭘 말해야하는 상황이 온다. 그게 정말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에 불과하더라도, 꼭 뭐라도 말을 꺼내야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냥 좀 추워서 그런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제가 히터 온도를 조금 높여드려도 괜찮을까요?” 승무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주시면 고맙죠” 나는 뭔가 꺾인 채 대답하고 말았다.


 승무원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다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걸어 다음 찻간으로 향했다.


 얼마지 않아 열차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날 포함해 ‘그 때 창밖을 보고 있던 사람’은 그 시간이 무던하게 길었을 것이다. 온갖 번잡스런 생각을 지나 최근 자신의 정신적 피로함이며 잠시나마 섬뜩한 환각이 보일 정도로 심해진 신경과민 따위를 인정해야 했을 테니까.


 ‘생각보다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 빨리 집에 가서 쉬어야지. 내일 연차를 쓰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서울역 플랫폼 위로 향했다. 널따란 로비가 펼쳐졌다. 수십 번은 와봤던 장소였는데 그날따라 유독 시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멋쩍은 마음에 몇 번 시선을 돌려보니, 매표소 앞쪽에서 십 수 명 쯤 되는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연착이 됐으면 언제 탈 수 있다고 얘기라도 해줘야할 거 아니야! 환불만 해주면 다야?” 정장차림의 중년 남자가 철도청 직원에게 따지고 들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뭐라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럼 상황을 빨리 파악을 하고 말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아이고,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큰 가방을 들고 있던 아주머니가 직원의 말허리를 잘랐다.


 소란은 내가 걸어 지나는 동안 계속 이어졌다. 로비에는 철도청 직원이 몇 명 더 있었지만, 굳이 그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눈치로 가만히 서있었다. 그 중 한 명에게 별 생각 없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 저 난리에요? 갑자기 열차가 연착됐나요?”


 “아, 예. 그런가봅니다” 직원이 대답했다.


 “아하, 무슨 일로요?”


 “듣기로는 사람이 죽었다던데요”


 “네? 죽었다고요? ……어쩌다가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기찻길에서 만신창이로 죽어 있었다던데요. 그것도 근처 주민이 신고를 했다고요. 관계자들은 사람은커녕 고라니 한 마리 치인 적이 없다는데. 참 희한한 일입니다. 그래도 뭐, 일단 빨리 수습을 해야겠죠”


 “……그러네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 대꾸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나는 그길로 집에 돌아갔다. 도착해 몸을 씻자마자 깊은 잠에 들었다. 일어나 시간을 보니 벌써 저녁때가 훨씬 넘어 있었다. 난 또 다시 별 생각 없이 TV전원을 켜고, 또 아무 느낌 없이 뉴스채널을 틀었다. 그러자 마침 속보가 있었다. 오십대 취객이 기찻길 위에 쓰러져 있다가, 지나가는 열차에 깔려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처참히 흩뿌려진 사체를 수습하는 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했다.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부검의는 ‘죽은 지 만 하루가 넘게 지났다’고 설명했다. 나는 황망히 TV를 끄고 거실 난방기를 작동시켰다. 완연한 겨울이었다.      

    

<해부학 개론>, 2019. 12



< 18년 12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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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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