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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Dec 13. 2019

습작

백서른두번째

 “아직도 그 여자가 많이 밉나요?” 의사는 낮게 깐 목소리로 나직이 물었다.


 “네. 계속 미워요” 단발머리 여자가 대답했다. 말하는 가운데 양쪽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용서할 수가 없어요.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그 눈빛이 잊히지가 않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어떻게 자기 자식이 반죽음이 돼 가는데…… 제정신이 아닌 여자죠”


 “왜 그 여자가 너무 밉죠? 당신을 때린 건 의붓아버지인데……”


 “아버지라고 하지마세요. 저는 아버지 같은 거 없으니까요. 설령 있다고 해도 그 남자는 아니에요. 절대로” 여자는 딱 잘라 말했다.


 “그래요. 그럼, 그 남자보다 그 여자가 더 미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왕따 당해본 적 있으세요?” 


 “……네?” 의사는 잘 못 들었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따돌림당해본 적 있으시냐고요. 학창시절에요” 여자가 거듭 질문했다. 


 “아, 음, 저는 없는 것 같은데요. 사실 어울려다니는 경우도 거의 없었죠. 매일같이 공부만 했으니까요”


 “저는 있어요”


 “네” 의사는 여자의 이전 진료기록을 두어 장 제쳐 훑었다. 삼 개월 전 진행했던 심리검사 결과에 <학력 : 고등학교 중퇴(검정고시), 중학생 시절 극심한 따돌림으로 인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음> 이라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저를 대놓고 괴롭히는 애들이 밉죠. 누구나 그래요. 그런데 꽤 오랫동안 시간이 지나고나면…… 그러니까, 그렇게 쭉, 계속 지나다보면……”


 “네. 지나다보면”


 “다른 애들이 더 미워지곤 해요. 내가 괴롭힘 당하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으면서 아무 것도 안 했던 애들. 솔직히 걔들이 더 미웠어요. 내심 제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겼을 테니까. 그러면서 직접 손이나 입을 더럽히기는 싫은 거죠. 그러니까 폭력을 ‘허락’해준 거에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생각할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여자는 다소 뻐기는 투로 덧붙였다. “명백한 문제에요. 선생님. 가해가 잘못이라면, 마음껏 가해하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잘못인 거 아닌가요? 그런 것들을 가까운 발치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침묵하는 게, 그러면서도 나중에 가선 모든 미움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우려 드는 게 더 역겹지 않나요, 선생님?”


 “그래서 말씀하시는 거는 환자분 어…… 아니, 그 여자가 환자분께는 그런 존재였다는 건가요? 일방적인 폭력을 용인해주는, 그런 존재요?”


 “그보다 더했으면 더 했죠. 그 여자한테 한 번은 제가 그랬거든요.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지켜보기만 할 수가 있냐고, 엄마로서 하는 게 뭐냐고. 어디 가서 딸 있는 엄마라고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그랬죠.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뭐라던가요?”


 “비겁하고 못된 년이라고 그랬어요. 맞는 건 아빠한테 처맞았는데 왜 엄마한테 따지고 자빠졌냐면서. 제 뺨을 양쪽으로 서너 번은 후려쳤죠”


 “상처가 많이 됐겠어요”


 “아빠에 비하면 별로 아프지도 않았어요” 여자는 자못 태연한 듯이 말했다.


 “그랬나요?” 의사는 슬픈 표정으로 대꾸했다. ‘상처’라는 말을 단번에 물리적 아픔으로 이해해버리는 여자의 습관이 애처로웠다.


 “저는 아직도 용서가 안 돼요. 어떻게 피 한 방울 안 섞인 그 남자 편을 들 수가 있어요?”


 “그 여자 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수는 있습니다. 아무렴 힘으로 남자분을 말리지도 못 했을 거고. 괜히 끼어들었다 일만 더 크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고 판단할 수도 있죠”


 “선생님도 결국 그 여자 편을 드시네요”


 “제 삼 자의 관점에서 봤을 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거죠”


 “그야 그런 경험이 없으시니까요. 학문으로 공부하는 것과 직접 당해본 거는 완전히 달라요”


 “……” 의사는 말이 없었다. 잠자코 앉아 여자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눈을 피해 아래로 깔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데에는 약을 처방해주실 수 없다는 건가요?”


 “네. 항우울제는 있지만요.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약 같은 건 없죠. 저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짜증나네요”


 “답답하신 것도 이해합니다” 의사는 깍지 낀 손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뭐, 기억을 절제하는 수술 같은 거라도 있나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요?”


 “간단합니다. 직접 찾아가서 말씀하세요”


 “……누굴 찾아가는데요?”


 “그 여자 분께 찾아가서 말씀하세요. 지금 제게 말했던 거 전부요. 그럼 한결 나아지실 겁니다”


 “아니, 여태까지 뭘 들으신 거에요? 저는 그 여자 코빼기도 보기 싫다니까요? 그렇게 심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을 직접 만나라니요? 약은 안 주더라도 그런 말은……”


 “사람 관계는 약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가족이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직접 대화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 일로 불면증도 겪고 계시고, 어쩌다 잠들면 그 여자가 나와서 너무 고통스러운 상태인데, 그런 걸 해결할 수 있는 약은 없습니다. 수면유도제라고 해서 꿈을 안 꾸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괜히 왔네요, 그럼”


 “네. 가야할 곳은 따로 있으시니까” 의사는 뜸들이지 않고 받아쳤다. 


 “아, 됐다고요” 여자는 대답과 함께 불쑥 일어나서, 진료실을 박차고 나갔다. 




 정말 지긋지긋한 동네였다. 서울에서 열차로 왕복하는 데만 네 시간이 걸리는 간이역에서,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삼십분 넘게 달리다보면 겨우 그 집의 담벼락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은 야속하게 푸르렀다. 때때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밤비에 흠뻑 젖은 흙냄새가 자욱이 번졌다. 단발머리 여자는 걸치고 있던 코트 허리를 조인 다음, 크게 숨을 들이 쉬고 말했다.


 “저기요? 누구 있나요?”


 “……왔니?” 그 여자네 집이었다. “그래, 밥은 먹었고?”




<그 여자네 집>, 2019. 12





<그 여자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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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  Mukdolee

Painting  |  M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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