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메일 한 통 못 받은 바보들을 위해
이번 해 12월은 바쁜 한 달이었다. 그림작가와의 첫 번째 기획전 <Where is THE LIGHT?> 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사흘간 못 잤던 잠에 빠져 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비로소 생각이 나버린 것이다. 나는 한 달 전에 '브런치북'이라는 프로젝트에 지원했었다.
<90년대에 태어난 게 잘못은 아닌데> 라는 건방진 제목으로 쓴 10만자 분량의 수필집이었다. 마감도 끝났겠다 해서 평소에 관심있던 소재로 마구 끄적거린 것 치곤 성과도 그럴듯 했다. 열여덟편 가운데 하나는 비상한 관심을 받은 나머지 카카오톡 메인에 뜨기도 했다. 이때 출판사 몇 곳에서 '글이 너무 좋은데 출판할 생각은 없느냐' 하는 메일을 보내왔을 때도 '브런치북에 낼 심산이라 지금으로선 논외입니다' 하고 답신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느덧 12월 말이다. 며칠 뒤 30일이 최종수상작 발표일이다. '발표일 이전에 작가와 사전 연락을 취한 다음 최종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공지로 미뤄보건대, 지금쯤 수상작들의 윤곽은 드러났을 것이다. 메일은 커녕 인앱 알람 한 번 받지 못한 나로선 낙선이 확실시 된 셈이다. 그래도 30일 이전에는 모르는 것 아니냐고? 아니다. 만약 수상확률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최소한 일주일 전까지 노티 한 번은 왔어야 했다. 발표까지 사나흘 남은 시점까지 수상작을 추리지 못했다면 그것도 거대한 행정상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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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웃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나는 글을 써서 밥을 벌어먹는 입장치고 무슨 공모전에 지원해 수상해본 경험이 없다. 중고등학생 시절 교내 백일장에서 몇 번 쯤 상장을 받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학교 대표로 나갔던 시도 백일장에서 낙선했고, 모의논술에서 금상이네 우수상이네 하는 종이쪼가리를 두어번 받았지만 정작 대입논술에서는 예비번호조차 받지 못했다. 티내지 않으려 안간힘도 써봤지만 상처는 상처였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어디에다 글을 써서 지원하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가 됐다. 제삼자 입장에선 어이가 없을 것이다. 당초 터무니없는 확률에 사활을 걸어놓곤, 패착이 확실시 되니 그 때 돼서야 상처니 트라우마니 운운하는 모습이 말이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에 내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일 수도 있고, 순전히 운이 안 좋았던 것일 수도 있는데. 막말로 글을 아무리 잘쓴다 한들 모든 대회에서 입선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 이미 나온 결과에 불만을 표시할만큼 대단한 글을 쓰는 입장도 아니다.
다만 이런 종류의 낙선에는 으레 비참함 이상의 패배감이 있다. 떨어진 건 둘 째 쳐도, 떨어진 이유가 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글 관련 공모전이 가지는 태생적 잔혹성이다. 이미 수상한 작품에 이런저런 낯 뜨거운 수식을 붙일 수 있듯이, 떨어진 글뭉텅이에다 수천가지 패배의 이유를 뽑아내기란 너무나 쉬운일이다. 그렇게 영문도 모를 패배를 한 번 겪고 나면, 한동안 내가 쓰는 글은 문장은 커녕 단어 하나하나가 무너져 내려 휘청거린다. 그래서 나는 스무살 남짓한 나이에 덜컥 깨달아버렸다. 지원하지 않으면 떨어질 일도 없다는 것을. 바라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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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내게 '제 7회 브런치북 공모전' 지원이란 정말이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 이쯤이면 자신을 갖고 한 번 해볼만 해' 하고 스스로를 속였다.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게 목표였는데, 이제는 뭐가 부끄러운지조차 알 수 없게 돼버렸다. 성공과 달리 실패에는 '시도한 것' 보다 더 뚜렷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도전했던 사실이 비참해지는 것만큼 우울할 때도 딱히 없다.
한편, 실패로부터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거대한 패배는 다음 도전에 대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상금은 못 탈 지언정 자신감은 잃지 말아야 한다. <노인과 바다>에서 헤밍웨이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므로 패배자들은 패배를 인정하는 대신 납득되지 않는 성공을 깎아내려야 한다. 세상 쿨한 척 당선작들을 칭찬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척 같은 거, 난 죽어도 하고 싶지 않다. 같은 대회에서 나 말고 다른 놈이 상금을 타가는데 분하지도 않고 부들대지도 않는다면 나한테는 그게 더 이상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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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투수 노릇을 꽤 오랫동안 해왔다. 중고등학교 동네팀부터 대학 동아리, 그리고 지금의 사회인 야구팀까지... 몇 년간 마운드에서 공을 던져대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마운드 위에 선 투수는 오만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겸손한 것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타자와의 승부에서 겸손하기 시작하면 어느덧 공 하나 제대로 뿌리지 못하는 전력외 선수가 된다.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의 투수이건 간에, 승부에 들어가면 일단은 타자를 세상 줫밥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다 장외홈런을 두들겨 맞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와... 저 허접한 자세로 내 공을 넘기네... 백퍼 부정배트다 저건'
그래야 다음 공을 던질 수 있다. 다음 타석에서 한 번 더 승부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패배에 순간에서는 밑도끝도없이 추하고 졸렬해질 수밖에 없다. 나 말고 대신 던져줄 투수가 아무도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내겐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누구도 나 대신 문장 한 줄, 문단 하나 대신 써주지 않는다. 누가 대신 완성해준다 한들 그게 내 글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못 받은 상은 다 멍청한 상이고, 날 뽑지 않은 에디터는 모두 자격미달이라고. 등신같은 출판사들. 날 제쳐놓고 무슨 개떡같은 글들을 뽑았든 간에 싸그리 망하길 바란다. 바보같이 대박 베스트셀러 될 거라고 마구 뽑아냈다가, 1쇄가 다 팔리긴 커녕 마케팅 비용도 회수못할 만큼 처참하게 말아먹길 바란다. 그래서 '설마 내 안목이 잘못 된 걸까?'하는 신뢰도 높은 걱정 고민을 겪으며 고통받길 바란다. 대놓고 찌질하긴 해도. 난 당장에 실패하는 것보다 다음 글쓰기 앞에서 주저하게 되는 게 훨씬, 훨씬 두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