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의 확률』
요즘같이 영상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책을, 더구나 장편소설을 찾아읽는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는 나도 알고 있다.
영상은 판단할 필요가 없다. 영상에서 이미 모든 것이 판단돼 나오기 때문이다. 배경이 되는 세계나 무언가의 생김새, 이야기의 흐름과 그걸 바라보는 관점까지도 미리 준비해놓는다. 영화로 보는 해리포터에서 도비나 해그리드의 생김새를 상상할 필요가 없듯이, 사람들은 영상을 볼 때만큼은 '번거롭게 생각하는 일'에서 대부분 벗어날 수 있다. 하물며 콘텐츠에 대한 평가조차 댓글 몇 개를 훑어보는 것으로 대체 가능하다.
반면 글은 너무도 고리타분한 콘텐츠다. 글로 쓰인 것 이외의 모든 부분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굳이 묘사되지 않은 부분을 독자가 채워넣고, 주인공의 표정과 분위기 따위에 일일이 창의력을 발휘해야만 그 즐거움을 십분 만끽할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이야기들은 정해진 입장이라고는 없이 불쑥 던져놓기만 한다. 어떤 사고회로를 통해 어떤 감정을 끄집어낼지마저 읽는 사람의 몫이 된다. 이렇듯 불친절한 글에 눈길이 가지 않고, 모든 걸 완성해 가져다주는 영상에 한결 흥미가 생기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원래부터 사람은 복잡한 것보다 단순명료한 것을, 까다로운 것보다 쉽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동물이므로.
그러나 나는 지나친 단순함, 반복되는 자극에 그만큼 쉽게 피곤해하는 것 역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창조에 관한 욕구가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유무형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제삼자의 이야기로부터 내 삶의 단면을 찾아 맞춘다.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그저 '누군가가 잘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정말이지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쓴 글, 소설 따위가 유튜브 영상보다 훨씬 재미있는 콘텐츠일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 뭇 영상들에 비해 수준이 높고, 한층 고매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무엇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기실 그런 말들은 거짓말일 뿐 아니라 오만방자하기까지 하다.
다만 당신이 그 총천연색의 영상들 사이에서조차 미묘한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이고, 그래서 매일 같이 굶주린 사람처럼 새로운 콘텐츠들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 느리고 시대착오적인 글 뭉텅이가 부분적인 해답이 돼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뻔한 인생, 자명한 이야기 가운데서 '내가 어떤 걸 원하며 사는지'를 자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려면 돈주고 산 소설을 읽고, 혼자 생각해야한다. 읽기를 싫어하는 몇몇에게는 상상만 해도 정말 귀찮고 짜증스러운 일이겠지만... 믿어주길 바란다. 우리 인생에 중요한 어떤 것들은 겉보기에 너무도 복잡하고 수고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막상 해보기 전에는 그 필요성조차 미리 깨닫기 어렵다.
적어도 내 생각에 당신은 난독증일리가 없다. 이 긴 글을 마지막 대목까지 읽어내려왔다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동안 당신은 취향에 맞지 않는 글, 유달리 불친절한 글들을 만나며 어려워했을 뿐이다.
너무 늦지 않았다면. 부디 지금이라도 글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줘보라고 말하고 싶다. 글이란 건 당신 생각보다 재밌는 콘텐츠다. 또 아주 가끔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당신의 그런 기회가 글에게, 또 내가 쓴 소설에게 주어진다면, 그래서 글이라는 '낡았지만 새로운 세계'를 다시금 안내할 수 있다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선 그만한 영광도 달리 없을 것이다. 장담한다.